[ZOOM IN] 아수라 시대, 위기의식을 잃은 야당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6-08-21 1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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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무척 더웠고 비는 잘 오지 않았다.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없어 답답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덩달아 시원한 구석이 없다. 더위 탓이기도 하지만 무기력이 밀려오고, 가끔은 헛웃음이 나온다. 속울음은 가시지 않는 채 말이다.

뉴스를 켜면 더 답답하다. 4류 정치의 실상이 뉴스인 듯 뉴스가 아닌 뉴스 같은 이야기가 '가짜 뉴스'와 뒤섞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다. 무엇이 주장인지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뉴스를 보면서도 오히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역설적인 시대,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리는 말이 아니다.

나는 꽉 막힌 시국에서 어떤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이 시대를 바라보며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語調)로 말을 해야 하는지는 늘 생각해 왔다.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겪은 일들에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려다가도 말의 뜻을 저버릴 것 같아 미덥지 못하고 오히려 말의 뜻을 훼손할 것 같아 머뭇거려진다. 글을 쓰다가도 이런 쓰나 마나 한 걸 뭐 하러 쓰는가 싶어 그만두고 싶어지고, 그 내용이 어수선하겠지만 지금 시국이 나로서는 절박해서 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거창한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활을 통과해 나온 사소한 행동 하나가 정의로 연결되고, 말과 행동 사이에 거짓이 없는 세상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일도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뭐든 작더라도 단단해야 한다. 걸러지지 않은 욕망과 계산이 그대로 인간과 세계 사이의 직접성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행동은 더 작고 단단해야 한다. 걸러지지 않은 욕망과 계산이 그대로 통과해 행동을 보는 일은 민망하다. 정치적 프레임이 빚어내는 행위를 보는 일은 괴롭고, 프레임을 향해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은 괴롭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예감과 성찰이 없는 말을 듣는 일은 매우 난감하다.

언어가 무너지면 정치도 무너진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명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소통 불가능한 집단들이 주류를 이루며 이해 불가한 말과 행동의 창궐이다. 정치의 과정은 국민 삶에 기여하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여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공동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을 완성해 가고 있다. 욕망과 당파성으로 무장한 입들이 여러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무기화된 언어를 발포해 상대 진지를 폭격하고 있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보다 공격하기 위한 언어를 쏟아낸다.

여러 이익집단, 당파집단, 욕망의 집단이 내지르는 고함, 욕설, 저주, 분노, 거짓말이 허공에서 부딪쳐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백색소음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이 소음 속에서는 주파수가 뒤엉키고 언어는 파괴되었다. 쭉쟁이가 된 구호의 껍데기들이 바람에 날려 다니니 주변 풍경이 온통 회색이다.

언어의 의미 내용은 구분 안 되니 개념을 지칭하는 바는 모호하다. 모든 메시지는 수취인이 불분명해져 있다. 정치의 언어는 파도 소리나 TV의 노이즈 현상처럼 해독 불가한 무의미로 뒤덮여 버렸다. 구성원 서로간에 인간 사이가 단절되고 소외가 심화 되는 사태이고, 정치는 공허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려되는 것이 야당의 형태다.

제1야당이 자중지란에 빠져 야당의 정체성을 잃은 모습에서 국민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정서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삶을 도모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가치가 발아하고, 그 조직의 관계망에서 공익에 긴장하며 공공성이 이어진다. 내가 지금 우려하는 것은 정서 공유의 코드가 없다는 것이다. 썩 어울리지 않는 생각들이 마치 여름 화단에 제멋대로 피어난 꽃과 야생풀처럼 뒤엉켜 있다. 이게 야당 내면의 진짜 모습이고, 동지애가 결핍된 국민의힘 현주소다.

정상적 정당이라면 이런 현실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 자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야당은 당내 싸움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좋은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제1야당의 자멸은 보수 세력에겐 불행이지만 국가적으로도 불행하다.

세상이 바뀌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절체절명의 정치환경에도 국힘당은 쇄신은커녕 의원 각자도생으로 시류를 거스르고 있다. 의원의 행동이 당은 망해도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심과 보수세력이야 어떻게 되든 이 광풍만 넘기면 된다는 기회주의적 사고가 당 전체에 깔려 있다. 특히 정치에 경험이 많은 TK 다선의 중진의원일수록 어물 쩡 커턴 뒤로 몸을 감추며 존재감을 지우고 있다.

좀비 정당이라는 수식어 말하듯 국힘당은 온갖 불명예를 다 뒤집어쓰고도 위기의식조차 없는 한심한 당이다. 지금 국민당에 '좀비'라는 단어는 일시적 용어가 아닌 하나의 경구로 자리매김 되었다. 국힘당 의원들은 이 단어가 왜 그들에게 수식어가 되어야 하는지 그걸 모른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ㆍ유대가 사라졌다. 좀비 표현하는 현실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지지율 추락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 아니다. 국민이 오랜 시간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 결과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남 탓하며 쇄신을 미룰 것인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탓 정치만 하다 날 새울 것인가.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수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생색내기를 좋아했던 중진들은 다들 어디 갔는가. 당이 위기의 순간에 존재감을 지우는 정치인, 어려울 때 침묵하고, 안전해진 뒤에 목소리를 내는 정치가 과연 보수의 가치와 어울리는가.

이것은 단순한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제1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결국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도 약해진다.

아, 어찌하면 좋은가. 공동체나 국가가 무너지는 내부 분열은 외부 충격이 극에 달했을 때 발생하지 않는다. 단합해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다가 잠시 숨 돌리는 작은 틈이 생길 때 비로소 내부 총질도 할 수 있다. 외부 위기는 여전하고 심지어 더 큰 위기가 예견되어도 숨 고를 시간만 있으면 내부를 견제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정치인의 속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침보다 더 많은 존망의 이유가 그 잠깐 사이에 발생한 내부 분열 때문이며, 그래서 이러한 내부 분열은 공동체와 국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대가 보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보수도 시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다. 보수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특정 정당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인 제1야당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수라 시대를 살다 간 선현들이 이 어수선한 시대를 향해 한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대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할 것 첫 번째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 자신이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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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이종석님 2026-08-21 11:17:53
최회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4류정치 착각도 아니고현실이며. 국힘모두 물가리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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