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아가씨
김다온
힘을 풀어야 비로소 엉기는
한 덩어리 반죽/ 툭툭 뜯는다
도시로 건너온 동백아가씨는
노랫가락을 읊조리며
연탄불 앞에서 수제비를 끓인다
조각나는 것들마다 왜 이리 슬픈지
엄마의 등을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을
어린 자식들이 있어
뜯어진 속을 감추느라
흥얼거림이 두고 온 고향의 외로움이
펄펄 끓어오른다
비 오는 점심상 위 수제비
뜨거운 한 입
쏟아지려는 마음을 닦으며
밀밭이 만든 바람의 길을
후루룩 들어 올린다
자식들에게 건더기를 주기 위해 가루가 된
내 엄마/ 노랫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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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이 시에서는 ‘연탄불’, ‘펄펄 끓어오른다’, ‘뜨거운’ 등 끓음의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열기는 단순히 음식의 가열을 넘어서 도시로 건너온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끓고 있는 표현이다. 이처럼 수제비를 빚는 행위는 어머니의 삶을 빚는 반죽의 은유로 읽힌다. 고향이란 거리와 상관없이 그리운 정서가 깃든 곳. ‘흥얼거림이 두고 온/ 고향의 외로움이 펄펄 끓어오른다’라고 노래한 화자는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 그리움을 수제비가 끓는 모습으로 대신하고 있다. 마음 깊이 묻어둔 첫사랑처럼.
‘어린 자식들이 있어/ 뜯어진 속을 감추느라/ 흥얼거림이 두고 온 고향의 외로움’은 타향에 둥지를 튼 외로움의 노래이자, 자식에게 보일 수 없는 속울음과 같은 것. 흥얼거림이 어머니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견디는 방식이었다면 결구의 노랫가락은 화자가 어머니의 그리움을 불러오는 울림일 것이다. 사랑과 희생, 사라짐. 그리고 다시 ‘동백 아가씨’로 호명되는 애틋함의 정서를 담고 있는 시. 김다온 시인이 지칭하는 「동백 아가씨」의 정한은 시적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넓은 의미로 고국과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애환이 담긴 삶의 노래일 것이다.
‘비 오는 점심상 위 수제비’라는 소박한 풍경 속에서 그리움의 밀도를 응축하는 시. 뜨거운 서정을 풀어낸 동백 아가씨의 ‘노랫소리’는 아무런 수식 없이 결구를 맺는다. 이 청각적 울림은 어머니의 그리움이 화자로 이어지며 계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어머니는 부재 속 현존하는 존재이며, 닫히지 않는 여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루’의 해체가 사라짐이 아닌 ‘노랫소리’로 되살리는 역설적 미학이 담긴 시. ‘노래를 불러서 시름을 풀었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라면 나도 불러 보리라’ 신흠의 시조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흥얼거림과’, ‘노랫가락’ 한 소절씩 있지 않을까. 김다온 시인의 소리 없이 끓는 뜨거운 시처럼 노래로 갈증을 풀어보는 일, 한고비를 건너는 힘이 되지 않을까. 맺힌 그리움 부드러워지고 그 자리 동백이 필지도 모르는 일이니.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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