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절에 다녀와서

문화/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6-08-28 13: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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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느끼면서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다닌 지도 15년쯤 되었다. 교회에서는 성경에 쓰인 말씀을 믿으라고 한다. 때로는 이해하기보다 먼저 믿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어느 날 무슨 연유인지 어쩌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마지막 날, 불가의 큰 어른이라는 주지 노스님께서 법문하셨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어려웠다. 그 뜻을 며칠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절을 찾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노스님을 다시 뵙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스님은 주름 깊은 얼굴로 나를 맞으며 웃으셨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웃음은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방 한쪽에는 난초와 괴석이 어우러진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난초는 줄기를 바위틈 사이로 내려 여러 포기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그림 밖으로 줄기를 뻗어 나올 듯, 연약함 속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본래 난초는 깊은 산속 음지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홀로 자란다. 초록의 줄기와 그윽한 향을 지닌 고아한 식물이다.

그런데 노스님은 난초 그림 아래 큰 물동이를 하나 놓아두셨다. 물동이에는 물이 가득했다.

“스님, 웬 물입니까?”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난초가 시들어 보일 때 물을 주지.”

그 말은 단순한 난초 이야기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것은 시들 때가 있고, 시들 때에는 물을 받아야 다시 살아난다는 말처럼 들렸다.

노스님은 차도 한 잔 내주셨다. 차 맛이 흐리고 멀어 아득했다. 나는 무심코 말했다.

“스님, 차 맛이 짙게 건더기를 좀 더 넣어 주세요.”

노스님이 웃으셨다.

“건더기가 아니다. 씹어 먹는 게 아니야.”

그제야 나는 차를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넣어 맛을 진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그 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스님은 새벽마다 일어나 예불을 드리셨다. 그날도 선방과 법당이 떨어져 있어 함께 법당으로 가는데, 나는 플래시를 켰다.

“노스님, 어두운데요.”

그러자 노스님은 말씀하셨다.

“불을 꺼. 새벽 어스름이 좋지 않으냐. 불을 꺼야 동트는 여명을 볼 수 있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일일신(日日新)을 느끼는 거지.”

노스님은 공부가 깊고 도력이 높은 분이었지만 어려운 불교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오히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눈에 힘을 빼라. 마음을 내려놓아라. 그러고 다니다가는 괜한 시비에 얽힌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살면서 나는 무엇이든 똑똑히 보려고 눈에 힘을 주었고, 내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에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움켜쥐는 힘이 아니라 조금씩 놓는 힘인지도 모른다.

선방을 나오는 자리에서 노스님은 잘 가라는 말 대신 노래를 불러주셨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도 나는 오래도록 그 노래를 생각했다. 벌과 나비는 꽃을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꽃이 어디 있는지 따지지 않고, 꽃을 만나면 그 향을 받아들인다.

사물을 들여다볼 때 마주 보는 거울의 허상이 깨어지고 그 자리에 말씀이 피어날 때가 있다. 말은 설명한다고 모두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은 받아들일 때 비로소 논리로는 알 수 없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한다.

절에 다녀와 나는 깨달음 한 줌을 얻었다.

이제 나는 내가 교회를 다니며 종교를 믿는 것인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지 굳이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믿고 있다.

어쩌면 믿음이란 눈에 힘을 빼고, 마음을 내려놓은 자리에 조용히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 8월, 종교와 신앙의 차이를 생각하며 느낌을 쓰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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