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박성현
단내 나도록 생강을 씹었다 코끝을 시퍼렇게 물들이는 칼바람이 묻어 있었다 이번 고비만 넘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내 몸은 항상 난바다였다 숨을 내뱉는 것조차 멀고 가팔랐다 생강을 씹다 말고 쓴맛 저편에는 어느 계절이 흐르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내 몸을 비켜서 봄이 다녀갔을지도 몰랐다 봄은 내 몸 근처에서 한가롭게 머물다 나를 잊은 채 길을 재촉했을 것이다 바람이 또 불어와 내 코를 움켜쥐었다 생강을 씹으면서 유월에는 허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흰죽조차 넘기지 못하는 너무나 헐렁한 몸이 한껏 부풀린 욕심이었다 내게 없는 걸 갖고 싶은 마음도 죄일까 단내 나도록 생강을 씹으며 바람에게 고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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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속 노란 절임 배추가 쌓입니다. 마당에는 작년 옮겨 심은 노란 산국이 웃고 담장 밖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지나가고요. 그녀는 서툰 칼질로 생강 껍질을 벗기고 물에 헹구며 다시 손질을 이어갑니다. 알싸한 향이 퍼지는 마당 “단내 나도록 생강을 씹었다”라는 시인의 시구절이 나비 날갯짓으로 아른댑니다. 이어 생강 향을 묻힌 날갯짓이 “어쩌면 내 몸을 비켜서 봄이 다녀갔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펼쳐놓습니다. 봄을 서운해하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생강 껍질을 벗깁니다. 비켜 간 봄의 내력을 칼질하다 엄지에 피가 솟습니다. 정성껏 다듬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굽은 손가락처럼 만져질 뿐 생강은 생강일 뿐입니다. “생강을 씹다 말고 쓴맛 저편에는 어느 계절이 흐르고 있을까”라고 자문했을 시인의 눈빛이 빛났을 가을! ‘달빛소리 수목원’의 가을은 금목서 향이 만발한다고 했던가요. 시인은 자신을 비켜간 봄을 찾아 떠나고, 떠난 자리 『그 언덕의 여름, 바깥의 저녁』 앞에 우리를 세워두었지요. 만지고 볼 수 없는 저녁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 시인의 시들이 남은 자리를 위로합니다. 책을 펼치면 금목서 향이 짙은 가을, 그를 보내고 생강을 씹어 봅니다. 단내가 나도록 씹습니다. 알싸한 향은 젖어가고 배추는 속절없이 쌓여 갑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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