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헌법 10조 행복추구권의 유감

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1-02-15 17: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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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신축년,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를 말하려면 틀림없이 행복, 건강, 희망. 3가지일 것이다. 그 중에도 이번 새해에는 유독 '행복'한 삶이 대세다. 코로나 펜더믹 때문에 지친 탓일까?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며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행복과 절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은 커다란 돋보기를 우리들에게 들이 됐다. 평소 소홀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리고 싶은 행복한 삶은 우선 신체가 건강해야 된다는 걸 일깨워줬다. 그런데 건강은 육체적 건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건강이 육체적 건강보다 훨씬 중요하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작은 것에도 만족하기에 행복한 삶을 누린다. 우리는 정신적 건강의 가치가 부족한 사람이 권력이나 부를 거머쥘 때는 대게는 불행해지는 것을 종종 본다.

모든 것을 다 갖춘(권력, 부, 지위,) 명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삶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내면의 공허함으로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삶을 보자. 자신, 가족, 동생 모두가 욕심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기심이라는 욕심은 채워도 끝이 없기에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 따라서 행복의 척도는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 필수조건인 건강에는 관심 없이 행복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성공을 목표로 행복을 수단으로 삼는다면 설사 목표를 이룬다 해도 별로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 물론 성공과 행복은 관계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성공한 사람은 대체로 행복하며, 행복한 사람은 대게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에 관한 최신 연구들은 적어도 경제적 성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트린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행복은 각자 '주관적 안녕감'이랄 수 있는데 이것은 직업, 소득 소속 집단 등에 대한 인지적 평가(삶의 만족도)와 유쾌(또는 불유쾌)한 정서 상태를 합한 값이다. 즉, 행복은 감정과 인지의 복합적인 상태인 것이다.

부와 경제가 행복과는 무관하다. 행복은 소득의 절댓값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사람이 5천만 원을 받는 사람보다 갑절 더 행복한 사회는 지구상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최빈국인 부탄은 국민의 행복지수가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증된다. 그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살더라도 '최소의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이것은 행복지수란 말 자체가 난센스이면서 동시에 행복은 부, 경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균 소득은 몇백 배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가 증가한 소득만큼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나아졌다 해도 행복감은 그만큼 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이 가졌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역설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연구결과는 돈이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를 채워 준 뒤에는 행복을 더 이상 증가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행복에 관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지만 행복지수는 최저 수준이다. 국민은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 중 가장 큰 원인과 책임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권력을 정권 연장과 자기네 편들만 행복하면 된다는 내 편 우선주의에 관심이 있고 국민 행복에는 소홀하다.

이 정권 들어 시행된 정책은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에 도구로 사용되어 자산ㆍ소득ㆍ교육의 불균형이 극도로 심해졌고, 불신, 불만, 불안의 3불(不)사회로 이어졌다. 즉 사회적 환경을 대안이 아닌 원인이 된 사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정ㆍ정의가 내 편에만 통용되는 세상이다. 신기득권과 고인 물이 삶의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무색하기 그지없다.

약자에게만 가혹한 승자독식 구조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부의 세습이 공고한 사회에 자신의 한계를 느낀 체념으로 '못 올라갈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현실적 상황에 젊은 세대는 절망하고 있다. 이 어려운 환경을 희망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정치다. 그런데 정치인이 공동체의 절망은 외면하고 내 편만 행복하면 된다는 갈등의 정치가 사회 전체를 우울하게 만든다. 행복한 나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함께 나누는 것이지 나만을 위한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함께 잘사는 행복한 사회란 가치와 규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가 존중되는 사회다. 자본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더 이상 권력이라는 허상 때문에 삶의 의미와 내면의 진리, 사회의 공동선과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포기되지 않는 사회다. 정치 지도자들은 왜 행복한 사회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가.


아무리 권력이 중요해도 정치가, 경제가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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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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