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㉑] 벚꽃 반쯤 떨어지고

문화 / 이은화 작가 / 2025-04-17 17: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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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반쯤 떨어지고
시인 황인숙

벚꽃 반쯤 떨어지고


황인숙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 평론) 우리는 엘리베이터나 거리에서 사람들의 뒷모습을 자주 봅니다. 뒷모습은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어 마음 편할 때가 있지요. 회사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얘길 나누며 표정과 언어를 살피는 일,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저 역시 얘기를 나누다 돌아서서 휴, 큰 숨 내쉰 적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의 뒷모습을 관심 깊게 본 적이 있던가, 자문해 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를 읽으며 ‘뒷모습’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 한 차례 내린 비를 ‘한 소절’의 비가 내린다고 표현한 시인은 한 폭의 영상 안에 여인의 뒷모습을 앉혀 놓고 있어요.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심장’이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시어로 비유한 시인은 꽃의 소멸을 발랄한 분위기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소멸의 이미지를 통통 튀는 리듬감으로 바꾸는 시인의 감각이 놀라운 시. 리듬의 어원은 ‘흐른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황인숙 시인에게서 뗄 수 없는 단어지요. 이 리듬은 페이소스 감정을 발랄함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특질에 가깝거든요. 여인의 지친 잠과 벚꽃 흩날리는 봄날의 배경은 마치 사연이 담긴 한 장의 타로를 보는 것 같아요. ‘환하게 열린’ 봄을 틀어막은 채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든 여인. 어쩌면 우리 뒷모습에도 고단함과 쓸쓸함이 담길 수 있겠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의 뒷모습은 어떨까요, 통통 튀는 빗방울이거나 까르르 굴러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라면 좋겠어요. 보는 사람마다 마음 가벼워지고 걷는 걸음에 리듬을 실어줄 수 있는 뒷모습. 뒷모습은 경직된 표정을 갖는 앞모습보다 더 솔직하고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남장여자 시코쿠』의 황병승 시인은 「커밍아웃」에서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자신의 진실은 뒤통수에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앞모습과 뒷모습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커밍아웃」의 시행처럼 어쩌면 우리의 진실은 이미지 만들기에 가까운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있지 않을까요. 오늘부터는 거울에 뒷모습도 비춰볼 일이에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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