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법에 갇혀 질식하는 자유민주주의

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1-03-13 2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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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법이 필요하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나와 다른 이들의 흠과 허물, 잘못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뭔가 '불경한 주장'으로 들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법을 제정하는 목적이 정권의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행동과 흠, 허물을 단죄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질서와 가치기반을 위해서보다, 지배계층의 통치를 위한 편리성보다, 오히려 피지배계층의 기본권을 우선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일은 독한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을까. 더더욱 오랫동안 정치권과 국민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국가와 사회 수준에서 올바른 법질서가 뿌리를 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얼마나 정권과 정치권이 법질서를 확고하게 뿌리 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손쉬운 길은 법과 제도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제정되었고 국민의 기본권을 잘 보장하고 있느냐에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정권만 잡으면 법 제정에 관한, 여ㆍ야 가릴 것 없이 일란성 쌍둥이다. 과거 부당한 국가권력의 남용에 저항하고 시민의 자율성을 북돋우기 위해 싸워왔다 자부하는 민주당도 권력을 잡으니 과거 여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것이 조금도 없다. 지금 여당의 형태는 과거 여당(새누리당)이 그랬던 것처럼 법과 제도를 국민과 약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통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법을 제정하고 있다.

입법부는 무슨 사건만 터지면 먼저 부실한 법안이라도 급조해 발의해 놓고 추후에 문제를 수정하면 된다는 입법 선정주의 사고(思考)가 문제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여당이 통치에 걸림돌이 되면 무슨 법이든 일단 통과시켜 놓고 나중에 위헌 판결이 나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의 걸림돌을 처벌중심으로 생각하며 법 제정하는 것이 딱 그 짝이다. 사회 근간의 제도인 법을 즉흥, 졸속으로 양산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라니 국민이라는 것을 입법부는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알면서도 강행한다는 것인가. 국민은 헛갈린다.

압도적인 180석의 국회의원, 팬덤의 적극적 지지까지 더한 거대 여당은 못하는게 없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으면 법부터 만들고 있다. 서민 생활과 집결되는 민생법안은 뒷전이고 정권적 명운이 걸린 법이 우선이다. 18개 상임위ㆍ특위 위원장 독식을 무기로 부동산 3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경찰청법과 국가정보원법, 대북전단금지법 등을 모두 처리했고, 선거를 위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도 입법 처리했다. 많은 의원은 헌정사에 '가덕도 특별법' 같은 막장 법률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작성하였기에 법으로 갖춰야 할 모든 여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졸속이란 말조차 쓸 수 없는 막장 법이다.

언론 개혁을 하자면서 언론에 대한 법을 만드는 발상도 문제다. 민주당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언론 규제 법안을 제출했다. 언론과 표현의 영역이라도 형사법 처벌로 안 되니 민사적 징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언론에 관한 법을 입법 처리하려 한다. 민ㆍ형사 이중징벌에 3배 배상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이 입맛에 맞지 않는 비판 언론사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귀착될 악법이 될 것이 뻔히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이란 국민의 의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을 제정하는 주체는 목적 수단 합리성에 주의해야 한다. 새로이 제정되는 법의 목적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해치지는 않을지 미리 살펴야 하며 제도의 적합성도 고려해야 한다. 새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법리와 실천이 명실상부한지, 입법된 법안이 기존 체제와 어떻게 잘 조화가 되는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정부ㆍ여당은 법을, 말 안듣는 놈 혼내주는 회초리쯤으로 생각하고 마구 휘두르고, 정치적 지배의 도구나 기득권 옹호 장치로 오용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날 정치군인들의 집권으로 빚어진 가치의 혼동으로, 목적과 수단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힘으로 밀어부쳐 성취했던 폐단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폐습을 청산 한다는 여당이 구시대적 구태의 사고에서 못 벗고 폐습을 계승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정의를 앞세우며 다수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더 많은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국민은 여당 맘대로 입법 ㅡ독재하라고 지난 총선에서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게 아니다. 국익을 우선하고 국민이 살기 좋도록 정치하라는 주문이었다. 승자들이 맘대로 세상을 주무르고 전리품을 독식하는 입법우선 정치는 멈춰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런 저런 이유로 만든 법으로 자유민주주의 최고의 헌법적 가치가 법에 갇혀 질식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은 숨이 막히고 입이 닫혀 답답하기만 하다. 숨통을 틔우려면 자유민주주의 역사를 멈춰 세워서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 세상사 민심은 거슬러서도, 법에 가두어서도 안 된다.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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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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