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 임완택 기자]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1주기 ‘운명이다’(1)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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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 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 유시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이 책을 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더 나오겠지만, 출생에서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 전체를 기록한 ‘자서전’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과 돌베개가 함께 ‘노무현 사후 자서전’을 펴냈다.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시간 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대북 송금’ 특검 사건 관련 배경 등 처음 공개되는 이야기들이 많고 또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서거 직전까지 삶 전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에 대한 고인의 솔직한 심경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고인의 모든 자필, 구술 기록물들을 살펴 일대기로 정리하고, 빈틈은 유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공식 기록 등을 통해 보완했다. 또 고인이 남긴 여러 기록들 중 퇴임 후 서거 직전의 미완성 회고록 노트를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하는 작업도 거쳤다.
<일요주간>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연재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최근 PD수첩 ‘스폰서 검사’ 보도 이후 사회적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검찰개혁과 관련된 내용 중 일부를 먼저 게재한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독립 또는 중립화와 관련하여 국가정보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검찰조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회’(민변)가 국민의 정부 개혁 과제를 제안했는데, 그 첫 번째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민변이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 주된 이유가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내 검찰의 정치적 독립 요구를 외면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검찰 개혁 실패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검찰 인사 개혁안을 준비했다. 그런데 당시 검찰 수뇌부가 사실을 왜곡하면서 인사 개혁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을 부추겼다. 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공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9일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평검사들과 토론했다.
검사들의 인사에 대한 오해와 불만을 해소하는 것과 함께, 젊은 검사들이 정치적 독립의 충정을 토로하면 공감을 표시하고 필요한 약속을 하려고 했다. 검사들이 미리 모여 준비를 해서 나온다고 들었다. 토론을 시작하자 검사들이 처음부터 인사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를 했다.
그런데 다른 검사가 또 인사 문제를 제기하서 다시 마무리를 하고 나면 또 다른 검사가 또 제기하고 해서, 그래서 결국 인사 이야기에서 뱅뱅 돌다가 토론이 끝나고 말았다. 대표로 토론에 나오면서 대통령 앞이라고 주눅 들지 말고 인사 문제를 제대로 충언하라는 주문을 받은 모양인데, 결국 돌아가면서 준비해 온 말만 되풀이했던 것이다.
무척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검사들이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을 온 국민에게 보여 줌으로써, 적어도 내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악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하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여.야 비협조로 ‘공수처’ 물거품
검찰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 두 가지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하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수사권을 주는 것이었다. 고위공직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수사를 하여 검찰에 이첩해 기소하게 하고, 만약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정신청을 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공수처가 수사 대상으로 삼는 고위공직자에는 검사들도 포함된다.
두 법안 모두 열심히 공을 들였지만,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협조해 주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반대했다. 검찰은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해 국회에 로비를 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라 그런지, 행정자치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이 미적미적 심의를 미루었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것이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도 공수처 설치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면,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했어야 옳았다.
검찰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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