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네 죄를 고 하여라

문화 / 박지영 / 2012-01-16 11: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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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산처럼/저자 심재우/1만 8천 원


[일요주간 = 박지영 기자]『네 죄를 고하여라』는 범죄와 형벌을 둘러싼 조선의 법률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심재우 교수가 기획한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법률에 대한 기초 정보를 상세하게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져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잡고 있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례를 현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의미를 조명해본다.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해온 칼럼 <죄와 벌의 사회사>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부정적 편견을 걷어내고서 객관적 시각에서 재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 법률 및 형벌제도 등에 대한 기초 정보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져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바로 잡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형구 중 하나인 곤장에 대한 내용을 하나의 장으로 구성했다거나, 조선시대 고문 방법 등을 두 개의 장에 걸쳐 서술한 것은 이에 대한 오해가 광범위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딱딱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역사서에 대한 일반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라도 낯선 전문용어와 잡한 서술로 씌어졌다면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힘들 것이다.


저자는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을 기본법으로 채택한 조선의 법률체계가 나름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능지처사와 같은 몇몇 잔인한 육형(肉刑)으로 인해 그 의미가 평가되어 왔음을 지적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형장
전통시대 동서양에서 형벌은 권력사의 중요한 정치적 행사이자 불경스러운 백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기능했다. 이 때문에 형벌을 통해 가능한 최대의 통치 효과를 기대한 권력자는 새롭고도 기이한 고문도구와 형구를 개발하고 사용했다. 우리가 전근대사회의 처벌을 상상 할 때 잔혹한 광경을 떠올리는 것은 바로 형벌이 갖는 이 같은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편견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전통사회의 형벌이 서양에 비해 훨씬 잔혹했고, 법이 체계적이지 않거나 미개했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전근대사회 동서양 모두가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환으로써 비슷한 수준의 형벌체계를 갖추었는데 동양의 법률만이 미개한 듯이 비하되고 있는 것은 19세기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오형(五刑)으로 구분되는 형벌의 유래와 집행, 기상천외한 방식의 갖가지 고문, 죄를 짓고 죄를 벌하는 자가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좇다보면 조선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무엇보다도 영화나 TV 역사드라마의 장면 중에서 우리가 통념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형벌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보고 있어 흥미롭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했다고 목에 칼을 차고 옥살이한 춘향이, 볏짚으로 만든 가짜 옹고집과 송사를 벌이다 패하여 곤장을 맞은 진짜 옹고집, 그리고 쌀값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 김부자 대신 곤장 30대를 맞으려 한 흥부. 조선시대 소설이나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이 받았던 형벌은 과연 실제로도 가능했을까. 춘향의 목에 씌운 칼은 적어도 영조 때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여성에게 사용이 금지된 형구였고, 곤장은 뼈를 추스르지 못할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해서 군법을 집행할 때만 사용했을 뿐 일개 고을 수령은 사용 권한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형벌과 법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역사소설이나 사극 등을 통한 형벌의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고 있다.


사약, 임금이 내려주는 약
조선시대에 중죄인을 처단하기 위한 사형 집행 방식으로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교형, 참형, 능지처사형 등 세 가지일 뿐 사약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약이 공식적인 형벌이 아니었던 것이다.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약은 임금이 내리는 약이다. 나라에 큰 죄를 지어 역어야할 죄인이라도 왕실 가족이거나 지체 높은 고위 관리인 경우 임금은 이들을 죽이는 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었으며 이때 사용한 것이 사약인 것이다. ‘예기(禮記)’에 ‘사가살 불가욕’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선비를 죽일 수 는 있어도 욕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들의 염치와 의리를 존중해주라는 뜻이다.


양반 관리나 왕실 가족들은 죽더라도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그나마 명예롭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약을 받는 다는 것은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고 일반 사형수들처럼 저잣거리와 같은 공개된 장소가 아닌 거주지에서 조용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교적 명분론과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에서는 어찌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사약의 재료를 비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는 비상과 부자를 조제한 것일 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독에 몸에 퍼지려면 비상이 사약의 핵심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샤를 달레가 사약 성분을 비소라고 언급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비상은 비소덩어리를 흙가마에 올려놓고 그 위에 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채 태우면 비소 증기가 위로 올라가 솥 안쪽에 붙게 되는데 이것을 떼어내면 비상이 된다. 비상은 만드는 동안 연기에 노출된 초목이 모두 죽어버릴 정도로 독이 강하다. 사람 또한 연기를 흡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조선시대의 ‘무원록’에 따르면 비상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은 만 하루가 지나면 온몸에 작은 포진이 발생하고 몸의 색깔도 청흑색으로 변하며, 눈동자와 혀가 터져나오고, 입술이 파열된다. 또 두 귀가 부터서 커질 뿐만 아니라 복부가 팽창하고 항문이 부어 벌어지는 등 맹독으로 인해 온몸이 상한 처참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묘사로 볼 때 사약을 마신 사람들이 TV속 드라마에서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죽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법보다 무서운 마을법
‘대명률’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도 공식적인 일정한 범위 안에서 사적인 처별을 인정했다. 국가권력이 사적인 복수를 금지했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범한 노비와 자손에게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주인과 부모의 처벌을 완전히 막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보다 많이 관습적인 혹은 사적인 처벌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멍석말이, 조선시대에 마을의 관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접인 영향을 주었다.


백성의 교화와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16세기에 처음 시행되기 시작한 향약은 지방사회의 유력자, 즉 양산 사족들의 자치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율곡이이가 시행한 향약은 아예 체벌을 공식화하여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매로 다스리기도 했다. 지금처럼 행정력이 나라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했던 당시 사회에서 마을 법은 무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때론 가혹하게 때론 너그럽게...
이 책은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과 형벌의 현장을 구석구석 추적한다. 낙형, 자자형, 주리틀기, 능지처사 같이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갖가지 형벌과 고문 등, 그리고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시관이나 망나니가 된 사형수, 정절이라는 이름 아래 자살을 강요받은 여성들의 삶 등을 살피며, 조선의 법과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다, 그동안 조선의 법률문화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탓에 갖가지 오해와 편견 속에 가려져 있었다.


춘향의 목에 칼을 씌운 변사또의 행태는 합법적이었는지. 양반이라고 함부로 백성들에게 매를 들 수 있었는지. 당시의 사건사고가 담긴 수사보고서, 형사판례집 등을 토대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한 바 없는 조선시대 죄와 절의 사회화를 본격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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