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극도 고통’ 무어라 표현할 수 없어 ..
[일요주간=소정현 기자] 갖은 조롱과 채찍 속에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고 잔인하게 처형을 당한 그 고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그 처절했던 수난의 행적과 이에 따른 의학적 증거를 살펴본다.
◇ 예수님! 전무후무 큰 고난을 당하시다
최후의 만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그 곳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밤새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아셨기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피할 길이 없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마가복음 14:34)
땀이 ‘핏방울’이 됐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이라고 불리는 상태이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 성분이 분출된다. 그 결과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유입된다. 그리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서 나오는 것이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태형(笞刑)을 가했다. 로마의 태형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형벌로 알려진다.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채찍은 많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쇠 구슬(살을 멍들게 했고, 찢어진 근육조직을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하다.)이 박혀 있었다.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나 멍이 생겼고, 채찍질을 계속하면 상처 난 곳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또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그것은 살을 찢는 역할을 했다.)들이 박혀 있었기에 채찍질을 하면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갔다. 특히 등이 심하게 찢겨져 나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척추의 일부가 드러나기까지 했다. 채찍질은 어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에 있는 등과 엉덩이 그리고 정강이까지 계속된다. 정말 끔찍한 형벌이다.
로마의 태형을 연구한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의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과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죽었다. 사망하지 않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진다. 저혈량성 쇼크란 어떤 사람이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한다.
증세로는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 올리지 못함, 혈압저하로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 신장에 남아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의 역할 중지, 몸에서 액체를 요구하기에 극심한 갈증을 느낀다.
◇ 극심한 스트레스 ‘땀이 핏방울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평들보를 지고 갈보리 언덕으로 비틀거리면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님은 이미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있었다. 결국 예수님은 넘어지셨고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라고 명령했다.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마태복음 27:32)
예수님은 처형장에 도착해 눕혀진 후에 십자가의 가로 들보(Cross bar)위로 팔을 뻗친 상태에서 못 박혔다. 이 가로 들보는 ‘패티볼룸’(patibulum)이라 불렸고, 십자가의 수직 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직 기둥은 땅에 고정되어 있고 가로 들보는 땅에 놓인 체 예수를 못 박았다. 이어 가로 들보는 수직기둥에 올려져 고정되었다.
로마 군인들은 7인치에서 5인치 정도 되는, 끝이 가늘고 뾰족한 대못(약 18Cm의 대못,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요하난 벤하콜’의 십자가 처형 당시 발견)을 사용해서 손목에 박았다. 일반적으로 손바닥에 못을 박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손목에 못을 박아야 손이 단단하게 고정된다. 만약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다. 손목도 손바닥에 속했다. 1968년 예루살렘의 기밧트 하미브타르 발굴에서 1세기경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유골함 속에는 요하난 벤하콜이라는 20대 남자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이 유골 중에는 매우 굵고 커다란 쇠못이 박혀있는 발뒤꿈치 뼈가 발견되었다.
이 못에 붙은 나뭇조각들을 살펴본 결과 못이 나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의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려져 있었고, 십자가 자체는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못은 발등이 아니라,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으며, 아카시아 나뭇조각이 죄수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유골함 속에는 부러진 정강이뼈도 있었다. 이 뼈는 죄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살아 있는 죄수를 절명시키기 위해서 큰 나무망치로 쳐서 부러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손바닥이 아닌 손목 위 두 개의 팔뼈 사이에 큰못을 친 흔적이 발견되었다.
못이 손목에 박힐 때의 고통은 펜치로 척골(팔굽뼈) 신경을 잡고 비틀어서 뭉갤 때의 고통과 비슷하다.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야했다. 그 단어가 바로 ‘고문하다’(excruciating)란 말이다. 문자적으로 ‘excruciating’은 ‘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출현시켰을까?
그런 다음에 가로 들보를 들어 올려서 수직 기둥에 부착시켰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혔다. 또 다시 발에 있는 신경이 완전히 으깨졌고 손목에 못이 박혔을 때와 동일한 고통이 격렬하게 찾아왔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팔이 늘어난다. 아마 6인치 정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양 어깨가 탈골된다. 이는 구약성경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시편 22:14절) 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 손바닥 아닌 손목에 못 박히고
일단 희생자가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리게 되면 질식하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질식하게 되는 이유는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격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근육이 잠시 동안 이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발에 박혀 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이 찌른다. 결국에는 못이 발 근육에 붙어 있는 뼈를 고정시키게 된다.
간신히 숨을 내쉰 후에는 세웠던 발을 내리고서 잠시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숨을 내쉬기 위해 발을 세워야 하고 동시에 십자가의 거친 나뭇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된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 호흡 산독증(酸毒症)에 빠지게 된다. 산독증이 수반되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되며, 죽음에 임박한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한복음 19:28)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한 모금 드린다.
예수님께서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을 때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그리고 심장이 정지되면서 돌아가셨다.
로마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확인했다. 성경의 묘사로 볼 때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사이였을 것이다. 창은 오른쪽 폐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래서 창을 뺄 때 물처럼 보이는 액체-심낭삼출(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가죽 막에 물이 차는 경우) 및 늑막삼출(폐와 흉벽을 구분하는 막인 늑막의 층 사이에 액체가 축척됨)-가 분출되었다.
요한이 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 다음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한복음 19:34) 이 요한의 설명은 현대의 의사들이 예상하는 바와 일치하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요한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의 다리를 군인들이 부러뜨렸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요한복음 19:32) 로마 군인들은 안식일과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죽이기 위해 희생자의 다리뼈 아래 부분을 부러뜨렸다. 그렇게 되면 희생자는 발을 들어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 그래서 몇 분 안에 호흡 산독증 때문에 죽게 된다.
상술하자면 이렇다. 죄수들을 급히 죽이기를 원하거나 고통을 멈추게 하려 할 때에는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무릎아래를 곤봉(나무망치)으로 타격하였다.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유는 죄수가 몸을 위로 밀어 올려서 가슴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급속한 숨막힘이나 관상동맥무력이 따르게 되어 사망의 문턱에 신속 진입하게 한다.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9:33) 또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창을 사용했다. 로마 군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고 실제로 사람을 잘 죽였다. 또한 그들은 사람이 죽었는지를 신속 정확하게 판단했다. 만약 죄수가 탈출하면 책임 맡던 군인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많은 피를 흘렸기에 이미 저혈당량 쇼크 상태에 있었다. 사람이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는 척 하는 일이 불가능하듯이, 예수님은 죽은 체 할 수가 없었다.
결론인즉, 십자가형은 사형수의 몸을 90도 비틀어 나무에 묶고,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팔목과 복숭아 뼈 바로 아래에 쇠못을 박아 처형하는 극형이며, 사형수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준다. 이 때, 나무망치로 쳐서 무릎 뼈를 부러뜨리게 되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게 되고, 결국 숨이 막혀 죽게 된다.
<다음은 의학박사 트루먼 데이비스(Truman Davis)의 진술이다>.
팔에 힘이 빠지고, 근육에 엄청난 경련이 일어나면서, 깊고, 가혹하고, 지근거리는 고통이 따르게 되고, 이 고통이 근육을 굳게 만듭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몸이 팔에 매달려 있게 되면, 가슴근육이 마비되고, 늑간근육이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공기가 폐로 유입은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뿜어내 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짧은 숨을 쉬어보려고 몸을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한 사투를 하셨습니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류에 쌓이게 되고, 경련이 부분적으로 진정을 시킵니다. 격한 경련으로 몸을 위로 밀어 올려, 숨을 내뿜고, 생명을 주는 산소를 마시게 됩니다. 이 상태로 매달려 있다 보면, 뇌와 가슴에 피가 공급되지 않기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몸의 윗부분으로 피가 돌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쓴 의사 리히터의 논문을 보면,
부자연스러운 자세나 육체적인 긴장은 모든 동작에 고통을 준다. 못이 박혀진 손 부분은 신경이 예민하고 몹시 아픔을 느끼기 쉬운 곳이었으므로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못의 상처와 채찍에 맞은 자국은 곧 염증을 일으키고 몸이 썩어 들어가는 괴저 현상까지 일으켰다.
신체의 위치가 피의 순환을 방해하고 고통을 일으켰으며, 육체의 긴장은 죽음 자체보다도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십자가의 고뇌는 최악의 고뇌요 그것은 순간순간 괴로움이 증가하는 긴 고통이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형벌은 즉시로 타는 듯한 갈증을 사형수에게 덧붙였다.
요체인즉, 예수님은 더 극심하게 돌아가셨다. 태형으로 인해 물과 피를 많이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얼마 되지 않아 돌아 가셨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피는 죽어서 다 흘리시고 다리는 꺾이지 않으셨다. 완전히 죽으셨기 때문이다. (SOURCE : 의학박사 트루먼 데이비스(Truman Davis), 알렉산더 메드럴 박사(Alexander Methe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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