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울고 넘는 ‘박달재 고개’를 아시나요

문화 / 노정금 / 2012-07-22 14: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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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과 금봉의 못다한 사랑이 머무는 박달재 고개

[일요주간=노정금 기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란 단어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가슴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우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제천시 봉양읍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산 박달재 고개를 아는가.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발고 가소~~~~~~~
박달재 하늘 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 돌부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 길아~~”


故반야월 선생님의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의 일부분이다. 박달과 금봉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나는 박달을 향한 금봉의 마음을 담은 가사인 듯하다.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의 사랑이야기는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에 이르렀을 때 해가 저물어 하룻밤을 묵은 집에 사는 여인 금봉이라는 처녀를 보면서 시작된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스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이들은 서로 첫눈에 반한 것.

박달은 싫증나지 않은 금봉의 모습에 이튿날 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그리고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곤 한양으로 길을 떠난다. 이들의 사랑은 애틋했다.

한양길에 오른 박달은 금봉의 생각으로 나날을 보내고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고 한다. 박달은 낙방을 한다. 금봉을 볼 낮이 없어 그녀에게 가지 못한다. 하지만 금봉은 박달의 장원급제만을 빌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박달과 금봉
오로지 박달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금봉은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에서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 놓아 울며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을 본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쫒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고갯마루에서 금봉을 와락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도내 최초로 조성된 제천시 백운면 박달재자연휴양림이 3년6개월의 휴년제를 끝내고 오는 7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개장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150년내외의 소나무와 잡목이 공존하는 울창한 숲이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르고 있고 특히 깍아지지른 경은사(도덕암) 절벽에 자라는 소나무의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고결함을 느끼게 한다.

숙박 신청은 홈페이지(http://www.cbhuyang.go.kr/bakdaijae)를 통해 가능하며, 기타 궁금한 사항은 산림공원과 박달재휴양림(☏641-4815)으로 문의하면 된다.







박달재 고개

박달재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는 여러 조각상들이 박달과 금봉의 마음을 기르는 몇 몇 조각상들이 있다.




박달재 고개에는 휴게소와 함께 운치있는 볼 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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