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앞으로 다가올 위협이나 위험을 미리 예측할 때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이상이나 바라던 소망이 현실에서 크게 어긋나도 우울을 경험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 감원바람이 불 낌새가 보이면 불안해지고, 더 이상 승진이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채 명예퇴직으로 물러나게 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게 좋은 예이다. 그래서 흔히 불안은 미래형의 감정이고 우울은 이미 일이 일어난 후에 생기는 과거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불안과 우울을 별개의 감정으로 느끼지 않고 이를 동시에 체험한다. 감정 표현도 불안과 우울을 구분해서 하지는 않는다. 이는 주변의 사건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연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 우울증은 울적한 느낌이 기분상의 문제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개인이나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슬프고 우울한 기분,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불면, 식욕감퇴, 피곤함, 성욕감퇴, 의욕저하, 집중력 감소, 기억력저하 등이 주증상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려는 경향 때문에 두통 소화불량 만성통증 등의 신체증상도 나타난다.
우리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정신없이 경제성장에 치중했다. 이 때문에 흔히 ‘거품’이라고 표현되는 허구들이 사회에 많이 존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한 거품들이 여기저기서 꺼지기 시작하면서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비롯한 여러 위협을 내가 직접 당하거나 혹은 당하지는 않아도 목격하며 살아왔고, 또한 살고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건설현장의 부실공사, 잦은 안전사고, 정부·기업은 물론 학원에까지 만연한 부정부패, 서민과 중소상공인과의 상생을 포기한 듯한 확장만 일삼는 일부 대기업, 모럴 해저드에 빠진 금융기관의 부실, 유럽발 금융위기까지, 갖가지 사회문제들이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주변에는 이미 명예퇴직, 감원 등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된 많은 사람들이 집단우울에 시달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한 처지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고, 너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의 절망과 우울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회적인 문제 말고도 특히 문화적으로 여성들은 가정적 문제로 인한 우울증을 많이 호소한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15%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여성은 사회문화적으로 남성과는 다른 역할이 주어져 심리적으로 취약하다 보니 우울증 발병률이 남성의 1.5~2.5배 정도로 높다. 주부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나 동양문화권에서는 고부간의 갈등, 가족의 질병, 남편의 실직, 자녀의 학업문제, 결혼이나 사별 등 가족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다. 동양사회에서는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분위기, 자식들이 성장해 독립함에 따라 찾아오는 공허감, 활동적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남편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주요 원인이다.
이같은 두려움과 우울의 감정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한마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가능하면 위협적인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10대 폭주족들은 심야에 오토바이 폭음을 내면서 거리를 질주한다. 그들은 침체된 감정이 자기네들 삶과 하등 관계없는 것으로 격리시키고, 신나게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라의 처지야 어떻게 되든 나만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식으로 공익성에는 무감각한 사람도 많다.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으면 발병률이 5배이상 높다. 이는 가계연구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염색체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우울증에서 가장 주의해할 점은 자살 가능성이다. 우울증 환자는 무력감, 분노와 공격의 감정, 죄책감과 망상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기 쉽다.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 확대돼 가족이나 평소 사랑했던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 주부우울증 환자가 자녀를 죽인 뒤 투신자살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좋은 예이다.
선진국에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인격발달 측면에서도 지능지수(IQ)보다는 감정지수(EQ)를 중요시한다. 우리 사회에서 추락자살같은 충동적 행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세련된 대인관계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정을 술로 잊거나 ‘배짱’이나 ‘신바람’으로 둔갑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의 감정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감정이입이라는 지성적인 과정을 가르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벼운 우울증은 자신의 힘든 점을 누구에겐가 툭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치유될 수 있다. 빨리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할수록 건강한 미래가 찾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리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며, 적절히 치료하면 쉽게 치유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울증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숨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더욱 치료를 어렵게 만들며, 일단 우울증이나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상담을 통해 치료전략을 잘 상의하여 여러 가지 치료법 중 가장 환자에게 적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극복할 수 있다라는 환자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가족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할 것이며, 이에 주변에서 치료를 도우려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주위 사람들이 우울증도 병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하고, 단순히 성격이 여리거나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무시하지 말고 환자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네가 마음하나 잘못 먹어서’ 등으로 발병의 원인을 환자의 탓으로 돌리거나 환자를 비난하지 않으며, 환자의 자존심을 키워주고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한다. ‘여행을 해보라’ ‘이렇게 마음을 먹어라’ 등 환자에게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해 봐야 자존심에 상처만 줄 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아직은 많지 않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울증 예방법
1) 작은 일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다.
2) 스트레스의 원인을 파악한다.
3)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의 반응을 분석한다.
4) 회피하기보다는 해결하고자 한다.
5)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
6) 생활환경에 변화를 주도록 해 본다.
7)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8) 선택과 포기를 분명히 한다.
9) 신체적 건강에 유의한다.
10)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자기만의 규칙에서 벗어난다.
11) 항상 대화를 하는 생활습관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