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엘리자벳’, 오스트리아 황실의 역사가 뮤지컬로 재탄생되다

문화 / 박경찬 문화 칼럼니스트 / 2013-08-21 13: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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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박경찬 문화 칼럼니스트] 뮤지컬 <엘리자벳>은 국내에서 익숙지 않은 역사 속 인물이지만 <황태자 루돌프>의 어머니라고 설명하면 뮤지컬 팬들을 흥분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모자(母子)의 각각의 삶이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올라갈 정도이니 그들의 인생이 참으로 우여곡절(迂餘曲折) 아니었겠는가. 아니, 어쩌면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혼란(混亂)의 시간이었을지도.

엘리자벳의 일생을 뮤지컬로 재탄생 시킨 극작가 미하엘 쿤체는 어린 시절 외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진 엘리자벳이 처음 ‘죽음’과 만나게 되고, ‘죽음’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죽음(Tod)’이라는 판타지적 캐릭터를 추가해 이 둘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황후를 그림자처럼 맴돌던 ‘죽음’과 이 ‘죽음’을 동경했던 황후의 이야기는 실베스터 르베이의 음악과 버무려져 ‘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재와 ‘죽음과의 춤’으로 형상화시켰다.

언니 헬레네와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맞선에 들러리로 나갔다가 오스트리아의 황후로 낙점된 뒤 그녀의 삶은 점점 어두워진다. 왕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지만 왕궁에서의 엄격한 질서와 규율적인 삶에 엘리자벳은 질식해 버릴 것 같다.

시어머니 소피가 아이의 양육권마저 빼앗고 남편마저 외도를 하자 그녀는 기나긴 유랑을 떠난다. 미모에만 집착하며 정신이 쇠약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무너져내리는 제국(오스트리아)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아들마저 잃고 절망한 그녀는 마침내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의 칼에 쓰러지며 죽음과 입맞춤한다.

<엘리자벳>은 입체영상과 2중 회전무대, 3개의 리프트 및 11미터에 달하는 브릿지 등을 이용해 유럽왕실의 모습과 죽음으로 통하는 관문을 표현했다.

화려한 무대 효과 외에 다양한 안무도 큰 볼거리다. 48여 명의 출연 배우들이 기품 있고 절도 있는 동작들로 클래식하고도 우아한 장면을 연출해 냈다. 황실의 무도회, 결혼식 등에서 ‘죽음’의 등장 씬 에서는 6명의 전문 무용수로 이루어진 ‘죽음의 천사들’이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채워주기에 부족함 없는 무대를 보여준다.

다만 스토리는 조금 아쉽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사랑이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왕실과 시댁에 시달리는 며느리의 모습과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엘리자벳의 모습이 더 독보인다. 뿐만 아니라 전개가 치밀하지 못해 흥미로운 이야기의 배열과 빠른 무대 체인지에도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인간은 영원히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군. 구속에서만 자유를 갈망할 뿐' 이라는 극중 대사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소피의 간섭과 궁전의 엄한 법도, 아들의 죽음 등으로 무겁게 그녀의 어깨에 멍에로 내려앉는다. 그래서 죽음의 유혹에도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엘리자벳의 모습은 관객의 연민을 유발한다.

엘리자벳은 3시간 동안 46곡의 노래로 무대를 꽉 채운다. 화려한 세트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를 대거 캐스팅하며 캐스트별로 골라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배우들의 각기 다른 매력만큼이나 어떤 배우의 공연을 골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난다는 건 이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오는 9월 7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170분. 만 7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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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찬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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