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화려함으로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다”

문화 / 이희은 칼럼니스트 / 2013-11-12 10: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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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피아니스트 백건우, 북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 @예술통신
[일요주간=이희은 칼럼니스트] 동유럽의 보석 체코 공화국에는 체스키크룸로프(CeskyKrumlov)라는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이 마을은, 중세 동유럽의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수백 년간 원상태에 가깝게 보존해 온 역사 그 자체이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마을의 언저리로 유유히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낀 절벽 위에는 7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7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래 체코의 대표 음악축제로 자리 잡아 매년 이어져오고 있는 체스키크룸로프 국제 음악축제(CeskyKrumlov nternational Music Festival)가 열렸다.

미샤마이스키, 블라디미르아쉬케나지, 플라시도도밍고 등 세계의 거장들이 거쳐 간 이 축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초청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축제의 절정에 이른 지난 8월 2일 체스키크룸로프 고성의 승마 학교였던 Riding Hall에는 백건우와 체코를 대표하는 북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1746년에 지어진 Riding Hall은 당시 황제가 기거하던 별장의 디자인을 본떠서 지은 것으로, 빈 로코코 양식에 체코 전통 양식을 덧입혀 고유의 스타일로 새롭게 재창조해 낸 건물이다.

한 여름 밤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Riding Hall의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명성은 유럽에서도 여전했다.

필자의 옆에 자리한 관객 중 한명인 야쿱파벨(56)은 폴란드에서 백건우의 연주를 보러 올 정도로 백건우의 팬이라며 훌륭한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명불허전. 그의 손이 잔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1악장 1주제의 장엄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순간 숨 막힐 듯 한 긴장감에 가슴이 벅찼다.

무심한 듯 건반 위를 흐르는 그의 손가락은 완벽에 가까운 절제로 시작하여 두 번째 주제를 지나며 점점 대담해졌다.

압도적인 화려함과 마치 피아노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주로 장내 모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은 물론이고 카덴자에 이르러 만개한 감성은 관객들의 눈물을 끌어내기에 충분하였다.

2악장에서 나타난 오케스트라와 교감 또한 완성도 있는 음악적 경지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곧바로 이어진 3악장은 절정에 이른 백건우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y)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야성적이고 정교한 테크닉과 로맨티시즘이 공존하여 어우러진 연주는 진정 라흐마니노프가 지향했던 이상이 무엇인가를 감히 상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모든 관객의 각인된 그 감동은 라흐마니노프가 호로비츠를 만났을 때의 감격과 비슷하였으리라 짐작하여 본다.

경이로운 대곡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아니 끝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평생에 다시없을 대가의 연주에 감사를 표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짐은 그가 한국이 낳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확신의 증거였으리라.

같이 호흡을 맞춘 캐나다 출신의 지휘자 찰스올리비에리-먼로(Charles Olivieri-Munroe)는 “최고의 거장과 함께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며 극찬하였고 관객 중 하나인 요나스크바필(42)은 “호로비츠가 살아 돌아온 듯 한 착각을 느꼈다”며 양 엄지를 세웠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0세에 첫 리사이틀, 13세에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로지나레빈(Rosina Lhevinne)을, 런던에서 일로나카보스(Ilona Kabos), 이탈리아에서 귀도아고스틴(Guido Agostin)과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를 사사했다.

1972년 뉴욕 앨리스툴리(Alice Tully)홀에서 라벨 전곡 연주 및 카네기홀(Carnegie)홀에서 제임스콘론(James Conlon)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함으로써 뉴욕에 데뷔했다.

1974년 런던 위그모어(Wigmore)홀에서 3차례 독주, 1975년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독주회를 하면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로열앨버트홀에서의 프롬스Last Night, 세계적인 유명 오케스트라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Saint-Petersburg Philharmonic), 런던 심포니(London Symphony), BBC 심포니, 파리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Orchestre National de France), 베를린 심포니(Berlin Symphony),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Hungarian National Symphony), 오슬로 필하모닉(Oslo Philharmonic), RAI 이탈리아 오케스트라, 바르샤바 필하모닉(Warsaw Philharmonic),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Russian National Orchestra), 모스크바 필하모닉(Moscow Philharmonic), 차이나 필하모닉(China Philharmonic), 상하이 필하모닉(Shanghai Philharmonic), 뉴재팬 필하모닉(New Japan Philharmonic), 요미우리 심포니(Yomiuri Symphony), 교토 필하모닉(Kyoto Philharmonic), 이스라엘 필하모닉(Israel Philharmonic)과 협연, 지휘자 주빈 메타, 유리 테미르카노프, 파보예르비, 엘리아후인발, 펜데레츠키, 드미트리키타옌코, 이반피셔, 블라디미르유로프스키, 미하일플레트네프, 로린 마젤, 네빌마리너 경 등과 협연하였다.

백건우는 유니버셜 전속으로 바흐-부조니, 포레(디아파송 금상 수상), 쇼팽 협주곡 전곡, 브람스 협주곡 1번, 브람스 인터메치, 베토벤 소나타 전곡 32곡을 녹음했다.

@예술통신

▲ 피아니스트 백건우@예술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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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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