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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시상식. 탕웨이싱(왼쪽)과 이세돌(오른쪽) |
[일요주간=백대현 프로 8단] 탕웨이싱,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
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중국의 탕웨이싱이 한국의 이세돌에게 2-0으로 승리를 거두며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올해 세계대회 개인전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마지막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에 대한 우승의 갈망이 컸다. 무엇보다도 결승에 진출한 이세돌은 세계대회 통산 16회 우승을 차지한 베테랑이고 탕웨이싱은 아직은 신예이기에 결승전은 한국의 우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중국의 탕웨이싱은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신예의 큰 장점인 패기와 자신감이 넘쳤고, 경험은 적지만 실력만큼은 정상급 기사들에 비해 밀리는 것이 없었다.
이세돌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중국의 신예 강자라는 점에 알게 모르게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삼성화재배는 한국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부분이었기에 부담은 과중됐을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살인적인 대국 스케줄을 소화하며 쉼 없이 달려왔기에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패배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결승 1국을 보면 후반 막판에 이세돌의 집중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승 1국에서 이세돌은 초반 출발이 좋지 않았다. 초반부터 철저한 실리 작전을 펼쳤지만 탕웨이싱의 두터움이 더 위력적인 느낌이었다. 중반전 좌변 전투에서 이세돌은 다시 한 번 실리를 벌어들이며 강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좌하에서 중앙으로 흘러나온 백 대마가 약해져서 형세는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세돌의 반격이 시작된다. 이세돌은 자신의 돌이 차단되는 것을 일부러 허용하며 좌하귀 쪽을 먼저 살려두었고, 중앙 백돌의 타개에 승부를 걸어간다.
형세를 낙관한 탕웨이싱의 느슨한 행마를 기회삼아 이세돌은 중앙에서 큰 이득을 챙기며 대국 후반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이세돌 바둑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역전 스토리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 흐름에서 이세돌이 승리를 거의 놓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체력의 부담 때문이었을까? 이세돌은 후반에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몇 차례 놓쳤다. 그 이후에도 치열한 반집의 싸움이 이어졌다. 평범하게 가면 이세돌이 반집을 남기는 상황. 그러나 탕웨이싱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에서 이기는 길을 발견한다. 중앙에서 승부패를 하는 과정에서 탕웨이싱의 묘수가 등장한 것이다.
결과는 탕웨이싱의 흑 반집승이었다. 이세돌은 대국이 끝나고 자신이 도저히 질 수 없는 바둑이었다며 대국 후반을 위주로 복기를 이어 가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약 이세돌이 1국에서 승리했다면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세돌은 1국에서 아쉽게 패하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은 2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2국의 초반은 평범하게 진행됐다. 그래도 흑의 선착의 효가 살아 있는 진행이다. 하지만 중반에 이세돌이 우변 공격에서 특별한 성과를 보지 못하며 역전의 흐름이 된다.
이번에도 문제는 후반에 나타난다. 이세돌은 하변에 멋진 치중수를 바탕으로 천금 같은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바로 역전이 가능했던 이 상황을 이세돌은 허무하게 놓치고 만다. 끝내기 단계에서 이세돌은 약간 불리한 형세를 좁히기 위해 좌 중앙의 패를 강하게 버텼고, 이 과정에서 이세돌이 다시 손해를 보며 집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결국 탕웨이싱의 백 불계승. 이세돌의 2-0 완봉패였다. 우승을 차지한 탕웨이싱은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감을 얻었다”며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고, 탕웨이싱의 우승으로 2013년에 펼쳐진 메이저 세계대회를 천하통일한 중국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 바둑계 성장에 한축을 담당했던 마샤오춘은 자신의 블로그에 “결국 한국을 넘어섰다. 2013년은 중국 바둑계가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한해이다”라며 중국 바둑의 위상을 높인 후배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이세돌이 준우승에 머물며 18년 만에 세계대회 무관이 됐다. 한국은 1988년 세계대회가 창설된 이후 총 122차례 중 68회를 우승했고(여자대회 제외),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한 차례 이상 17년간 우승을 이어오며 최강의 칭호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중국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올해 결국 중국에게 제대로 치명상을 입게 됐다. 2013년에 벌어진 메이저 세계대회 개인전(바이링배, LG배, 응씨배, 춘란배, 몽백합배, 삼성화재배)에서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이제 한국 바둑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세돌을 비롯한 정상급 기사들이 더욱 분전해주고 나현, 이동훈, 신민준, 신진서 등 유망한 신예 기사들의 노력이 이어진다면 다시 중국 바둑을 넘어서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중국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지만 그래도 한국은 늘 소수 정예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오지 않았는가? 아픔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는 한국바둑이 되길 기대한다.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중앙일보와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주최하고, (재)한국기원이 주관하며, 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가 후원한다. 총상금규모는 8억 원, 제한시간은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이다. 우승자인 탕웨이싱은 3억 원의 우승상금을 획득했다.
2013 삼성화재배 결승 1국
백: 이세돌 흑: 탕웨이싱
결과: 304수 흑 반집승
스토리가 있는 대국, 삼성화재배 결승 1국을 함께 살펴보자.
초반은 흑을 잡은 탕웨이싱의 선착의 효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중반에 이세돌은 좌변에서 특유의 버티기로 좌상귀에 큰 실리를 챙긴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좌하귀에서 중앙으로 연결되어 있는 백 대마가 일순간 엷어진다.
탕웨이싱이 1도 흑△로 연결하며 백 대마를 압박하는 시점. 이세돌의 멋진 맥점이 등장한다. 백 1이 멋진 수. 백 한 점을 미끼로 모양을 정비하겠다는 뜻이다. 2도 흑 1로 잡아준다면 백 2, 4로 안형이 풍부해진다. 이것은 이세돌의 의도. 탕웨이싱은 3도 흑 1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백 4가 이세돌 특유의 버팀 수. 중앙이 차단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지만 단순하게 중앙을 연결해서는 형세가 여의치 않다는 뜻이다. 흑 5의 차단에 이세돌은 백 6의 맥점을 보여주며 백 18까지 좌하귀 백 대마를 먼저 살아둔다. 중앙 백 대마의 타개에 승부를 걸어가겠다는 이세돌식 승부호흡이다.
형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탕웨이싱은 중앙을 쉽게 정리한다. 4도는 탕웨이싱의 실수가 나오는 장면. 흑 1은 날카로운 급소. 백 2로 받아줄 때 흑 3, 5로 중앙을 잡아둔 것이 실착이다. 백 6으로 씌우는 승부수가 좋아서 바둑이 점점 어려워진다.
흑 3으로는 5도 흑 1로 뛰어두는 것이 평범하지만 좋은 수이다. 백의 응수에 따라 가와 나가 맞보기이다. 조금 더 진행된 시점에 탕웨이싱의 또 다른 실착이 등장한다. 중앙 흑을 살리는 과정에서 6도 흑 1로 밀어간 것이 실착이다. 탕웨이싱이 이 바둑을 졌다면 패착이 될 만한 실수였다.
이세돌은 백 2로 우변의 흑 대마를 위협하며 계속해서 백 6, 8로 중앙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이제는 역전무드. 흑 1로는 7도 흑 1로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백이 무리하게 잡으러 간다면 흑 13까지 반대로 백이 잡히는 모습이다.
8도는 마무리 과정. 흑 1의 비마 끝내기를 받지 않고 백 2로 늘어간 것이 정확한 끝내기다. 백이 상변은 깨졌지만 백 2, 6의 큰 자리를 차지해서 불만이 없다. 백 14로 중앙까지 정리되며 이제는 이세돌의 승리가 유력해졌다.
9도 흑 1로 건너붙이는 수가 탕웨이싱의 멋진 끝내기. 흑 A가 선수이나 이곳을 먼저 차단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흑 1로 건너붙이며 응수를 물어보는 것이 정확한 끝내기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세돌이 첫 번째 기회를 놓친다. 약간 당하는 느낌이지만 단순하게 10도 백 1, 3으로 받아주는 것이 가장 확실히 이기는 길이었다.
백 9까지 백이 1집반이나 최소 반집은 남기는 그림. 하지만 초읽기의 상황에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던 이세돌은 기세로 백 1로 치받는 수를 선택한다. 백 두점을 버려도 선수를 잡아서 괜찮다는 판단. 그러나 이것이 판단미스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백 11로 때려낸 것이 마지막 패착이다. 12도가 이기는 진행. 백 1은 지금이 정확한 타이밍이다. 흑 2로 받아줄 때 백 3으로 짚어가는 것이 중앙을 때리는 것보다 더 크다.
마지막에 백 11로 중앙을 패로 버티는 것을 막아서 백 반집승이 확정적이다. 실전도 여전히 미세한 상황. 탕웨이싱은 팻감이 많다고 판단하고 13도의 승부패를 결행한다.
14도는 탕웨이싱의 팻감의 묘수가 나오는 장면. 서로의 팻감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탕웨이싱은 흑 1로 붙이는 묘수를 발견한다. 백 2로 받아서 한집 손해. 하지만 좌상귀에 팻감이 많이 늘어나 중앙패를 최대한 버틸 수 있었다. 흑 15로 흑의 반집승이 확정됐다.
비록 역전의 기회를 주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반집을 이기는 길을 찾아내는 눈을 가진 탕웨이싱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 대국이다. 14도: 7, 13-△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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