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상황에서 안전·보안·보건 업무 및 서비스 노동 수행 열악한 환경
[일요주간=황경진 기자] 지난해 온 국민이 공분한 이른바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이 발생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받다가 승무원의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항공기를 회항시킨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항공승무원의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졌다.
이 사건은 항공승무원에 대한 인권침해는 물론 항공안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항공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참여연대 등은 항공승무원들의 노동인권 실태와 문제점을 살피고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항공승무원의 인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노동위원장이 사회를 맡았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을 비롯해 권수정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 전 지부장과 안진걸 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 등이 발제자로, 이종성 국토부 운항자격과 사무관과 이수연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인권 팀장, 강민주 공공운수 노조법률원, 이기일 항공정책연구소 소장 등은 토론자로 참여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종진 연구위원은 항공사 고용실태와 항공승무원의 감정노동에 관해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의 조직운영, 인사 불이익을 주는 인사관리평가 등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주제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대기업의 모 임원이 기대 서비스 불만을 이유로 객실 승무원을 폭행한 일명 ‘라면상무’ 사건과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직원을 폭행한 ‘백화점 모녀갑질’ 사건 등이 언론에 기사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됐다”며 “이렇듯 언론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일부 고객들의 불쾌한 언행으로 승무원들이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괴롭힘을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며 “특히 항공사 승무원들은 회사의 규정과 서비스 매뉴얼, 내부·외부 평가제도로 인해 자존감 상실은 물론이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항공승무원들은 개인이 치료를 직접 받거나 이직 혹은 퇴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항공기 기내 서비스와 인사고과가 반영된 평가가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과거 항공승무원의 감정노동을 처음으로 거론한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A. R. Hochschild)은 감정노동이란 항공기에 탑승한 고객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승무원의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해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이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그는 “각 회사별로 인사관리와 평가제도에 감정노동 서비스가 반영된다”며 “1년에 2회 진행되는 항공사 평가제도는 평가 영역 중 ‘서비스 만족도 평가’를 통해 감정노동을 강요한다”고 밝혔다.
또 흔히 국내 항공사와 일반 고객들은 기내 서비스와 승객지원을 핵심 업무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실 항공승무원 직무수행의 핵심 업무는 ①비상탈출 ②안전보안업무 ③승객지원 ④기내서비스 순”이라면서 “그 중 ‘안전’이 가장 우선시 돼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면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항공승무원은 서비스 제공과 판매를 주 업무로 맞춰져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항공승무원의 직무 수행과 일의 전반적인 업무 수행 과정이 모두 감정노동을 강요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국내 항공사의 가장 큰 문제는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권 침해 요소가 회사 규정과 매뉴얼 등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있다”면서 “예를 들어 고객에게 불쾌한 혹은 불편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승무원의 비행 정지나 벌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항공사들의 자사 규정에 따른 몸, 얼굴, 머리, 옷 등과 관련해 강제적인 표현과 행동 등을 규정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인사규정과 서비스 규정에 명시된 ‘과도한 신체의 자기결정 침해’와 ‘과도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심각한 인권 침해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감정노동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항공사 내부의 관료적 통제 시스템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 정부와 국회, 국토부, 노동부, 국가인권위 등 유관 기관이 개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항공승무원의 감정노동을 해소하기 위해 항공사 업무 규정과 직무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승무원 업무의 핵심 가치를 ‘서비스 중심에서 안전 중심’으로 업무 규정이 개편돼야한다”며 “더불어 승무원 서비스 매뉴얼과 지침에 명시된 과도한 감정노동 관리 규정(인사평가,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감정노동의 관리와 예방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법, 제도를 규정하고 가이드라인 지침과 직무 재설계 등을 통해 감정노동의 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후적 관리 차원에서는 “감정노동의 업무상 질병을 인정해주고 업무 공간과 시간을 재조정하며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을 운영해야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두 번째 발제자인 권수정 전 지부장이 승무원의 노동인권실태 전반의 사례를 소개하고 문제점을 발표했다.
권 전 지부장은 “‘항공업’이라는 특수 환경을 이유로 그동안 묵인되고 강요된 항공승무 노동현장의 실태와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제부터라도 노동자들이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야 나가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노동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해 지적했다. 현재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항공사 승무원의 근로시간에는 차이가 있다.
그는 “SHOW UP 시간은 비행기 출발시간 1시간 40분 전에서 2시간 30분전까지 유동적으로 규정돼있어 버스를 이용해서 항공기 도착 후 승무원들은 비행준비를 하고 비행출발 시간 50분 전 운항승무원과의 합동브리핑을 한다”면서 “하지만 실제 급여에 반영되는 시간은 승무시간이 아닌 PAY TIME으로 노동법상 8시간 이상의 노동에 대한 연장근무 수당도 변칙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승무원들의 산재신청률은 굉장히 낮다고 주장하면서 이것 또한 근무 평가지표를 통해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업적 평가 중 근태 항목에 사상병가에 대한 감점이 들어간다”며 “공상 포함 무병가시 할증점수를 주어 업무 중 발생한 재해에 대해서도 점수가 깎일까 우려해 신청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룹이나 팀으로 묶여있는 집단에 대한 평가에서도 개인의 이러한 병가점수가 연동돼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승무원들의 점수를 낮추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개인 휴가를 돌려 사용하거나 아예 치료받지 못하고 무리하게 비행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항공 승무원은 밀폐된 공간과 0.8기압이라는 불안정한 노동조건에서 근무하고 위험한 상황에 상시 노출되면서 안전·보안·보건 업무 및 서비스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항공 승무원에 대한 노동기본권은 더욱 엄중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게 권 전 지부장의 주장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땅콩회항’과 같은 수치스럽고도 탈법적인 사건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주장한 것과 같은 문제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실태 조사를 요청한다”고 주문했다.
뒤이어 안진걸 사무처장은 삼성, SK등과 같은 재벌 대기업의 ‘갑질’ 범죄와 노동권침해문제를 지적하면서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의 개혁과 노조 조직률 제고, 경영참여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민원인 및 노조간부를 실시간으로 미행하는 등 사찰했다”면서 이 같은 ‘갑질’범죄에 대한 사례를 열거했다.
이어 “이 사건들을 통해 재벌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지, 우리 국민들의 안전문제까지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며 “재벌 대기업들의 내제된 ‘갑질’과 반사회성이 사건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떨어진 최악의 대응을 거듭함으로서 온 국민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앞서 지난 2012년도 이재현 CJ그룹 회장 일행을 미행하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2014년엔 삼성SDI가 전·현직 노조원의 휴대전화를 불법복제해 약 1년간 위치추적을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당시 검찰은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쇼셜커머스 위메프의 채용갑질 사건을 보면 이슈화돼 결국 청년 노동자 11명이 모두 채용됐다”면서 “열악하고 비인격적인 처우에 고통 받고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이 재벌 대기업뿐만이 아니라 사용자 전반에 만연한 ‘갑질’에 분노해 자연스럽게 범국민적 연대를 통해 반인간-반노동의 시대에 저항한 것”이라고 평했다.
위메프는 채용한 인턴에게 현장 테스트를 강요하며 강도 높은 업무를 시키고 정직원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전원 불합격처리를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적 공분을 사자 결국 불합격처리한 노동자 11명을 다시 고용했다.
이에 대해 안 사무처장은 “지난 2012년을 시작으로 재벌 대기업으로부터 온갖 횡포를 당하던 중소상공인과 대리점·가맹점주들과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서로 연대해서 전국적인 범위에서 '을'살리기 운동에 돌입한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에 대해서 “이 역시 개인에 대한 단죄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돈과 권력이 있는 재벌 대기업 및 자본 집단이나 권력자 개인에 의한 노동자·시민들에 대한 노동권·인권침해 및 갑질이 확실히 근절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사무처장은 이처럼 재벌 대기업의 ‘갑질’범죄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 지적했다.
우선 그는 “우리나라 재벌체제가 그룹 전체가 망하기 전에는 총수일가의 지배권이 확고한 '왕국'형태를 띄기 때문에 지배권을 통해 그들의 지위가 제왕적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는 ▲재벌대기업 지배구조의 개혁 ▲사법처벌 강화 ▲노조 조직률 제고 및 노조 인정, 노동권 존중 ▲비정규직 사용하지 않기(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사외이사제도 개혁 ▲노동자 대표의 경영참가실현(감시·견제 이사) 등을 꼽았다.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자로 나선 이종성 국토부 운항자격과 사무관을 비롯해 이수연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인권 팀장, 강민주 공공운수 노조법률원 노무사, 이기일 항공정책연구소 소장 등이 발언을 이어갔다.
이수연 팀장은 김종진 연구위원이 제시한 항공사 승무원의 감정노동에 대한 개선과제 대해 동의하며 몇 가지를 덧붙였다.
이 팀장은 “일부 항공사들이 여성 승무원에게 치마만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치마복장의 경우 기내 비상상황 발생 시 고객서비스 제공과정에서 불편함이 있다”며 “이러한 성차별적 관행에 대해 인권위의 개선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행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경영진들의 인식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항공승무원들이 특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특성상 일반노동자들과는 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여 노동조합 등의 차원에서 승무원들이 겪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우선으로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민주 노무사 또한 승무원들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밝히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강 노무사는 “항공업계 사용자는 각종 정보에 대한 통제권이 강력한 상황에서 근로환경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근로자들의 진술내지 신고가 어렵고 관련 자료가 거의 미비하다”며 “오늘 제기된 문제를 시작으로 향후 이에 대한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실태조사가 이루어져 법적, 정책적 대응이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불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는 병가제도의 개선 및 산재신청 등 법적권리 행사가 보장되야한다”면서 “휴일 및 휴가제도가 법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법위반 소지가 있는 사례들에 대하여는 법적 절차 등을 통한 구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기일 소장은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에 대해 “족벌경영행태가 근본적인 원인이면서 대한항공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만 제약하고 기업의 상호출자나 지배구조문제, 경영자의 문제 등을 허용한 국가적, 법체계의 미흡과 사회적 관심 부족도도 원인”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최고경영자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이러한 재벌 대기업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은 항공안전과 정책에 관한 전문성과 책임감,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참된 리더십을 갖춘 책임전문경영인 시스템으로 경영혁신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