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외교 브레인’ 베테랑…對南정책의 총괄사령탑

정치 / 소정현 / 2015-11-23 12: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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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파워엘리트(3) 노동당 김양건 대남비서
8월 南北韓 긴장국면 북측 2인 대표 주목 끌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대남·외교 베테랑

[일요주간=소정현 기자] 북한의 무모한 목함 지뢰 도발과 이에 대한 응징과 맞대응 차원에서 우리 당국의 확성기 방송 재개에 따른 남북한 갈등이 최정점에 이르던 8월의 22일 남북한 최고위 대표회담은 파국의 열기를 잠재운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북측의 회담 사령탑으로 북한군 서열 1위인 황병서(67) 총정치국장과 우리나라 통일부 장관 격인 통일전선부장을 겸하면서 북한에서 대남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김양건(76) 노동당 대남비서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이끄는 핵심 실세인사들이다.

● 대남 정책 전반을 관장 ‘최고의 실세’
남북한은 치열한 진통 끝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등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시킨 8·25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그 첫 결실로서 지난 10월 20-26일 금강산에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값진 결실을 맛보았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체제구축의 선봉 격에서 그 영향력과 건재의 진가를 한층 발하고 있는 김양건 대남비서의 역량과 추후 행보에 한층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76세의 고령인 김양건(金養建, 1938년 4월 24일생) 대남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대남정책 뿐 아니라 대중국, 대일본 외교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김정은의 ‘외교 브레인’ 베테랑이다.

평안남도 출신의 김양건은 그간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며 오랫동안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왔다.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김양건 비서는 노동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 1970년대부터 당 국제부 지도원 과장을 지냈다. 이어 국제부 부부장과 김정일 정권 초기인 1997년 4월 당 국제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외교협회 부회장과 북·일우호친선협회장도 지냈다.

1990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에 이어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제84호 선거구), 2005년 7월 국방위원회 참사(대외사업 담당)를 맡다 2007년 5월 27일 국방위원회 참사에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전임하였다. 이때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도 겸하였다.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을 거쳐 2009년 8월 다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김양건 비서는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 방중 때 잇달아 수행하고 동년 9월에는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에 기용되면서 명실 공히 북한 최고의 '대남통'이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렸다. 김정일 체제 말기에는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의 이사장을 맡는 등 활동 폭을 넓혔다.

현재는 통일전선부장 그리고 대남 담당 비서로 맹활약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김정은이 챙기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는데 담당 종목이 축구이다. 일화로 2013년 12월에는 마식령스키장에서 김정은의 지시로 스키를 타다 다리에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지도자의 말에 전적 복종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2013년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외국 자본을 유치를 골자로 하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했다. 이어 후속조치로 동년 7월 국가경제개발위원회(경제개발위)라는 새로운 경제기구를 설립한다. 경제개발위 수장은 장관급으로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양국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동생이다. 또 한명의 수장은 김기석 위원장이다.

김양건 비서는 전문 외교관료 출신답게 조용하면서도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학자 스타일이다. 외교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성실하고 뛰어난 능력, 세련된 매너와 인품으로 과거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짧은 기간에 실세로 급부상한 김양건! 김정은 정권 들어서도 젊은 최고 권력자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면서 대남사업을 넘어 측근 실세로 자리잡았다.
당 대남비서 관할 통일전선부장 겸임 위력 막강
동생 김양국은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공동위원장

김정은 체제옹립과 조기구축에 결정적 수훈감
남북관계 교착국면에서도 외풍 없이 상승장구


● 대남정책의 무소불위 ‘최고 사령탑’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의 부장은 2007년부터 김양건이 맡고 있으며 다른 부서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가장 크며 대남공작의 핵심부서이다. 특히 당 작전부, 대외연락부, 통전부를 총괄하는 당대남비서 지위는 절대적이다.

우리나라 통일부의 카운터파트너 격인 북한의 통전부의 위상과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의 통일부는 행정부의 한 부서이지만 북한의 통전부는 다소 복합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동당 소속인 통전부의 부장(당 대남담당 비서 겸임)은 대남정책과 관련해 입안에서 집행까지 당과 내각(우리 식으로는 행정부)을 총괄하는 최고위 인사다. 한국의 통일부 장관은 행정부처의 장일뿐이고, 실제 권한이나 위상에서는 통전부장과 동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통전부장은 통일부 장관과 외교안보수석의 업무, 국정원장의 일부 업무까지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통전부장은 통일부 장관과 같은 급이라고 보다는 부총리 급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방문했을 때 상대는 임동원 국정원장이었다. 김양건 통전부장의 2007년 11월 한국 방문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공동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

북한은 공개적인 대남협상·교류 창구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로 일원화시켜 대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의 통전부는 수식어 없이 말한다면,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 격이다.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조선노동당 산하에 문화부가 창설되어 대남공작업무를 시작했다. 1983년에 문화부에서 지금의 통일전선부로 명칭을 변경한다.

북한에서 대남사업 부서를 속칭 ‘3호 청사’라 부르는데, 주축은 통전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이다. 작전부는 산하에 공작원 교육기관인 ‘김정일 정치군사대학’(舊 금성정치군사대학)’을 두고 있다. 대외연락부는 직접 남한에 공작원을 침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통일전선부는 비밀리에 대남공작업무를 하면서도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남북대화, 교류나 한국내 기업들의 대북사업도 공식 관리한다.

통전부 내에는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및 조국통일연구원 등이 있다. 해외담당과는 해외 반한(反韓)교포단체 육성 및 친한단체 와해공작을 수행한다. 또 조국통일연구원은 대남 심리전 및 대남관계 자료 분석을 담당한다.

통전부는 남북협상에서도 협상절차, 발언수위, 제스처 하나까지 모든 것을 사전에 철두철미 프로급으로 무장되어 있다. 또한 민간차원의 남북 대화나 교류에서도 통전부 요원들을 편성해 대남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도 같은 단체도 관리, 운영한다. 중국에 서버를 둔 대남비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도 통전부 소속이다.
통전부에서 제2부부장은 반드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이 겸직한다. 통전부 산하에는 각 연락소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당 통전부의 모든 기능들을 조평통이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합적 이유로 통전부 직원들은 조국평화통일서기국을 ‘어머니연락소’라고 부른다.

통전부의 외곽단체로는 1970년대부터 남한 내 반미민족해방 운동의 전위조직을 자임하고 있는 ‘반제민족민주전선’(舊 한국민족민주전선)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남·북·해외 민간통일운동’이라는 형식으로 1992년부터 활동해온 범민족통일운동연합(범민련) 북측본부와 범민족통일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북측본부가 있다. 대한민국의 특정 사회단체 관계자나 종교인의 방북에도 전담 주축 부서이다.

범민족대회,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도 통전부의 지시로 움직이는 단체다.

통전부엔 베테랑 대남전략가들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다. 그동안 김용순(2004년 9월 사망)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등 통전부 주요 인사들 모두는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다.

2004년까지 통전부 부장직은 공석이었다. 이전에는 임동옥 제1부부장 직제로 2005년부터 부장직제로 운영됐다. 당 조직부, 선전부, 국가보위부와 마찬가지로 중요 부서로 분류하고 부장직을 김정일이 대행하면서 제1부부장 직제로 직할 운영한 것이다.

● 김정은 시대에 강화되고 확장된 영향력
북한 매체들은 지난 8월 22일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 북측 대표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가 참석한 소식을 보도하며 김양건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소개한바 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가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 주요 인사 등을 결정하는 권력 기구다. 김정은 제1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3명이 맡고 있는 상무위원에 이어 위원, 후보위원 순으로 서열이 구성된다.

현재 북한 노동당 정치국 위원은 최룡해·최태복·강석주·김기남 당비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이다.

이는 김양건이 대남정책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김정일 시대 이상으로 권력의 최상 핵심부에 안착했음을 당당히 입증 과시한 셈이어서 추후 그의 행보가 한층 관심을 끌고 있다.

2014년 10월 4일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룡해 황병서’ 등 북한의 실세와 함께 참석하였다. 2009년 8월에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조문차 서울을 방문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그해 10월 김양건은 싱가포르에서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비밀 회동해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김양건 비서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북측 주역으로 당시 북측에서 회담에 유일하게 배석해 김정일 위원장을 단독 보좌했다. 김양건 부장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직전 최승철 부부장과 원동연 실장을 대동하고 9월 26일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의 정권교체 따른 남북기류가 급랭하면서 통전부가 크게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2008년 2월 북한 당국이 당시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을 구속하고 통전부 간부들에 대대적 숙청이 시작되자 김정일 정권을 향해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무기명의 편지들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편지의 내용은 한결같이 김양건을 즉각 복직시키지 않으면 엄청난 내용의 ‘블랙노트’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이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당혹한 김정일 정권은 간부들을 대거 숙청하면서도 정작 통전부장인 김양건에게는 아무 죄도 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까지 두 세대를 아우르며 평양 권력의 핵심으로 뜨고 있는 결정적 이유에는 김정은 시대 조기구축에 상당한 공로가 있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오히려 대남문제를 넘어서 김정은의 통치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역할에도 중추적 역할에도 적극적이다. 남북 관계가 수년째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남 문제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장이 해임이나 숙청 등 외풍을 맞지 않는 배경을 두고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 세운 공훈 때문이란 분석이다.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고군분투한 고영희를 도운 김양건 부부에 대해 김정은이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를 잘 보좌한 김양건의 부인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모’라고 부를 정도였다. 금년 8월 남북회담의 황병서도 고영희 쪽에 줄을 섰다. 두 사람 모두 김정은 정권 들어 특별히 부침을 겪지 않은 걸 두고도 동일한 분석이 나온다.

장성택 처형 직전인 2013년 11월 김정은과 백두산을 방문해 대책을 논의한, 김정은 체제의 신권력으로 꼽히는 이른바 ‘삼지연 8인방’에 김양건이 포함된 것은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입증한다.

당시 백두산 지역인 삼지연을 찾은 김정은 수행 그룹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황병서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과 함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전격 체포하고 재판을 거쳐 처형하는 과정을 사전에 기획하고 실행한 그룹에 김양건이 포함된 것이다.

앞으로 김정은 체제의 외교·안보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김양건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큰 돌출 변수의 복병만 없다면 북한의 대외적 국가원수 역을 맡고 있는 최고령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대신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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