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쟁] "말로만 듣던 북한 게릴라들을 직접 보고..."

정치 / 이 영 작가 / 2016-02-29 18: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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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20)
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20)

내 이름은 쎄리

9월 5일 새벽 01시 홋카이도 삿포로 동쪽 벌
새벽 01시 찬바람이 스산하게 문득문득 불어 왔다.
자위대 중앙야전병원 한쪽 끝으로 포로수용텐트가 별도로 격리되어있었다.
대부분 총상이나 포탄 파편에 잡히는 포로가 많다보니 병원 안에 설치한 것이다. 한밤에 정체불명의 괴한들 검은 무리가 AK소총을 쏘며 들이 닥쳤다. 이들 무리는 포로가 된 자신들의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서 별도의 삼단철조망으로 격리되어 있던 텐트에서 동료 특공대원 3명과 신문조사를 하던 신문관 2명을 포박한 후 신속히 현장을 이탈했다.
무리들은 큰길 쪽으로 소총을 난사하며 몰려 나왔다.
포로수용소 취재차 현장에서 밤샘 대기하던 닛폰통신 밴 차량을 덮쳤다.
이 차량에 탑승하여 담요를 덮어쓰고 잠을 청하려던 소나는 소스라치며 놀랐다. 어느 새 차량 운전수의 머리에 총구가 장전되면서 밴 차량은 전 속력으로 237번 산악 도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검은 무리들은 어디쯤인지 모를 민가가 드문드문 있는 곳에서 차를 버리고 포로와 인질을 대동하여 산으로 올랐다. 일부는 민가로 들어가서 쌀과 감자, 소금 등 먹을 것들을 닥치는 대로 배낭에 넣고 중년의 부부를 인질로 잡고 뒤를 따랐다.

1시간쯤 정신없이 뛰었다. 중년의 여성이 체력이 약해 따라오질 못하자 조장 고재팔 대위가 신차력을 쳐다보았다. 머뭇거리던 신차력은 중년 여인의 목덜미를 뒤에서 당겨 잡아챘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으로 돌아서며 신차력을 쳐다보았다. 차력은 눈을 돌렸다. 살려달라고 갈망하는 눈을 마주하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 들어 그녀의 오른쪽 목의 동맥을 끊었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서너번 발버둥하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자위대 신문관과 닛폰통신 마유미와 그 친구 소나는 공포에 떨었다. 자위대 신문관 하나가 숲속으로 갑자기 몸을 던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뒤따라 닛폰통신 마유미 기자가 뒤를 따랐다.
공격 2반장 김 상사의 AK소총이 불을 뿜었다. 다섯 발자국도 뛰지 못하고 그들은 여러 발의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신차력은 선두를 쫓아 있는 힘을 다해 산속으로 다시 뛰었다.
그렇게 그들은 4시간을 헐떡이며 2,000m가 넘는 토카치산을 넘어 계속 동북 산악지역으로 도주했다.
푸르스름한 새벽이 오는 시각까지 그들은 뛰고 또 뛰었다.

그날 새벽 포로로 잡혀있던 특공대 3명과 자위대 신문관 1명, 민간인 3명 등 모두 7명이 다이세쓰산 특공사령부로 호송됐다. 땀으로 범벅이 된 신차력과 박금철 중사는 비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시체처럼 죽은듯이 잠이 들었다가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신차력은 지난밤 중년 여인을 살해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건만 그 여인의 눈빛이 자꾸만 머릿속에 되살아나며 그를 괴롭혔다. 꿈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그의 어머니의 얼굴로 환영되어 끝없이 쫓아다녔다.
자위대 포로가 되었다 구출된 특공대원 3명에 대한 재조사가 사령부 보위부장에 의해 진행되었다. 누가 어디까지 무엇을 일본 신문관에게 이야기 했는지를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정치부로부터는 혁명 사상 검토를 받아야 했다. 왜 포로가 되었는지 자폭할 시간이 없었는지를 강도 높게 조사 받았다. 포로로 잡힌 자위대 신문관 1명과 잡혀온 민간인 인질은 모두 서로 다른 갱도에 분리 수감시켜 그들로부터 지역 정보 확인을 위한 신문이 김나라 중좌와 정치위원 오치열 대좌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소나는 어디쯤인지도 짐작할 수 없는 산속 지하 땅굴에 포박되어 갇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북한 게릴라들을 직접 보고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있는 토굴로 김나라와 오치열이 들어섰다.
“이 에미나이래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구만.”
오치열은 그녀의 얼굴과 몸을 위아래로 살피며 머리를 툭툭 치자 소나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 질렀다.
“아악 때리지 말아요. 말로 하시면 다 말씀드릴께요.”
“으잉 이거이 째포재일교포냐 우리 동포냐?”
정치위원 오대좌는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며 답했다.
“어 어, 그래요. 겁내지 말아요. 우리 조선인민군은 절대로 아녀자를 겁탈하거나 장난하지 않는다. 이건 그 옛날 수령님의 교시이기 때문에 법보다 우선하니 염려 마시라고.”
오 대좌는 점찮게 구슬리듯 소나에게 전했다.

“어디서 잡아왔다 했습니까?”
“포로수용소 큰길가에서 있던 차량 안에 있었다 합니다.”
“통역관 동무가 이 에미나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 한 번 물어보우.”
김나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했다
“당신의 이름과 직업이 뭔가?”
그녀는 질문에 한 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그들의 눈치만 살폈다.
“빨리 직업과 이름을 말해 보라.”
김나라 중좌가 다시 물었다.
“제 이름은 이소나, 대한민국 서울 타임스 기자입니다.”
“국적은 미국이구요.”
그녀는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두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이 동그래지면서 당황했다.
“미국 이름은 뭔가?”
오 대좌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 보았다.

“예, 제 미국 이름은 쎄리에요.”
“흠, 쎄리라. 무시기 강아지 이름 같은가?”
소나는 기분이 나쁜 듯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미국 국적을 소지한 남조선의 기자가 자신들의 인질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놀라웠다.
“이 에미나이래 남조선 기자라고 했지?”
“예, 정치위원 동무. 함께 듣지 않았습니까?”
오치열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시 물었다.
“그 차량은 왜 타고 있었는가?”
“북한 포로들 관련하여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려구요. 일본 친구 마유미를 따라왔어요.”
소나는 마유미를 말하다가는 전율하듯 공포에 떨었다.
“북해도엔 언제 들어왔소?”
“8월 14일에 왔어요.”
“무슨 일로?”
“동아시아 안보포럼 취재차 왔습니다.”
“그런데 와 돌아가지 않았소?”
“오사카 조선민족학교 취재하려다가 전쟁이 터져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기렇군, 남조선 기자 동무.”
그녀가 오치열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그녀의 질문이 오치열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기자 동무, 죽는 게 겁나오?”
오 대좌는 내려다보면서 대꾸했다.
“….”
“기자 동무도 죽는 게 겁나나 보우.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이 전쟁은 지금 남조선이 아니라 미제원쑤들과 일본 제국주의 놈들이지.”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 지 궁금했고, 정말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통역관 동무가 이 기자 동무를 신문하시오, 난 소장 동지와 이 기자 동무의 처리에 대해 중앙에 보고 하갔소.”
“예, 정치위원 동무.”
오치열은 그녀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김나라는 오치열이 나가자 그녀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물론 많이 불편하겠지만, 편하게 있도록 노력해 보시요.”
김나라의 배려에 그녀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그는 그녀의 기본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그녀는 그의 질문에 숨김없이 대답했다.

오늘도 신차력은 잠복호 은거지비트에서 박금철 중사와 함께 전방감시 임무를 교대로 하며 짬짬이 쉬고 있었다.
낮에는 비트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능선과 계곡 전방을 감시하지만 저녁에 야간 작전이 없을 때는 비트 밖으로 나와 바위틈에서 두 다리라도 쭉 뻗고 잠을 잤다. 말이 두 다리를 뻗는다고 했지만 너무 추워서 개처럼 웅크리고 자는 날이 더 많았다.
그것은 전술 위반행위였지만 비트 생활에 이젠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신차력은 지난번 있었던 웃기는 사건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느 날 경계반 오돌포 중사, 정확한 이름은 오덕구이다. 그는 급할 땐 1더하기 2하고 2더하기 1을 다르게 계산하여 폭약 산출을 못하는 돌 머리라 붙여진 별명이었다.
저녁 무렵 그가 살며시 비트로 찾아와서 신차력을 깨웠다. 잠깐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신차력은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신차력에게 용변을 급히 보고 오겠다고 대신 보초근무를 하라고 부탁하고는 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4km나 떨어진 노천 온천에 가서 혼자 목욕을 하고 돌아오다 순찰반장 박 대위에게 들켰다.

평소 후배들 주머니를 뒤져 산밤, 개암, 그리고 비상식량까지 빼앗아 가는 오돌포는 평소 후배들한테 뺏은 물건으로 정치부와 보위부 요원들에게 자주 상납한 결과 간신히 처벌을 면하고 살아날 수 있었다.
몇해 전 그는 남의 돼지를 훔쳐다 팔아 그 돈을 대장에게 상납하여 당증을 받았다. 북한도 돈이면 당증을 살 수 있었다. 신차력은 그것이 싫었다. 오돌포처럼 돈 주고 사는 당증이 아니라 혁명 과업을 완수해서 당원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정치위원 오대좌는 이소나 건을 총정치국본부로 보고했고 삼일 뒤 그 결과를 접수했다.
“사령관 동지 중앙의 결심은 의외로 왔습니다, 저 남조선 기자를 잘 활용하여 대일 대미 항쟁을 우리 조선민족의 단합의 원점이 되고 추후남조선 인민들에게 보도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입니다.”
정치위원은 유현철 사령관에게 전문을 보이며 설명했다. 유현철 소장은 골똘히 생각했다.
며칠 간 하루에 감자 두 개와 물 한 컵으로 끼니를 때운 이소나는 배가 몹시 고팠다. 물론 그녀만 그렇게 먹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든 대원들이 그렇게 먹고 버텨나가는지라 뭐라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배고픔을 달래며 움츠려 앉아 있을 즈음 108특공대의 사령관인 유현철 소장과 정치위원 오치열 대좌, 김나라 중좌, 고재팔 대위가 토굴로 들어왔다. 처음 대하는 유현철 소장은 사내다운 기상을 풍기고 있었다.
“기자 동무?”
유현철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남조선은 아직 우리 공화국의 혁명 투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소. 기자 동무의 생각은 어떠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전쟁의 공포를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공포는 그냥 공포일뿐이겠죠.”
유현철의 질문에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기래서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총참모장 동지께서는 기자 동무가 직접 항일무장투쟁 현장을 경험하여 남조선에 글로 보도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소.”
“지금부터 이 군관을 따라 현장에서 경험해보시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우리 민족이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 대국 놈들과 직접 투쟁하는것을 경험한 후 남조선에 전하란 말이지.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는 수령님의 주체사상과 함께 말이요.”
정치위원 오 대좌는 소나를 노려보며 강조했다.
“저는 주체사상이 뭔지 잘 몰라요.”
“이 에미나이를 그냥 콱.”
오 대좌가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자 유 소장이 만류하며 다시 말했다.
“주체사상이요.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님의 사상 말이지.”

소나는 그의 설명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직접 인민군 특공대와 함께 다니는 종군기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을 살려주겠다는 이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안심했다. 소나는 자신을 호송하러온 고재팔 대위를 소개받고 끌려가다시피 따라 나섰다. 고재팔의 억세고 거친 손이 그녀의 팔꿈치를 당기며 데리고 나갔다. 캄캄한 저녁 밤하늘이 더 캄캄하게 다가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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