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의 안쪽
서안나
꽃잎의 분홍이 춥다
입이 돌아가도록
물밑으로만
숨는 사랑아
그대가 없으니 내가 없다
고백하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고백은 분홍에 가깝다
꽃잎에서 꽃잎까지
분홍이 차오르는 시간
분홍은 연못을 일으켜 세우는 색
고백은 분홍의 높이에서 터진다
상처가 넘쳐도 수련은 넘치지 않는다
분홍의 안쪽
당신은 수련의 시작이라 읽고
나는 끝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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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우리의 자아는 상대의 부재로 인하여 지워질 때가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얼굴만 보일 때가 있거든요. 혼자 남은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과 함께요. 사랑은 때로 자신의 전부와 같아서 이별의 아픔은 나의 일부가 마비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요. “당신은 수련의 시작이라 읽고/ 나는 끝이라 읽는다” 같은 사랑, 서로 다른 생각. 이 시의 가장 아픈 지점이 바로 이곳인 것 같아요. 사랑이 품고 있는 쓸쓸함을 불러오거든요. 분홍의 안쪽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아프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그런 감정들이 머무는 곳 말이에요.
분홍을 쓰다듬어주고 싶은 저녁이에요. 그런데 사랑은 언제부터 분홍이었을까요. 연분홍 장미에서 시작되었을지 혹은 달아오른 볼의 홍조에서 물들었을지 모르겠어요. “상처가 넘쳐도 수련은 넘치지 않는다”라는 말, 분홍의 단단함이 읽힙니다. 이런 수련睡蓮의 힘은 이별을 분홍으로 물들이지요. 하지만 분홍에는 햇볕과 그늘이 깃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 미묘한 온도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아픔을 견디며 또다시 사랑을 품게 되는 거겠죠.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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