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고 영
그제는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피기를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피는 꽃은 없었다 성급한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성급하지 않았다 질서를 아는 꽃이 미워져서 어제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을 보기를 기원했지만 하루 만에 민낯을 보여주는 꽃은 없었다 아쉬운 건 나 자신일 뿐, 꽂은 아쉬울 게 없었다 섭리를 아는 꽃이 싫어져서 오늘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되기를 나는 또 물끄러미 기다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거리에서 꽃은, 너무 멀리 살아있다
한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
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
![]() |
▲ 이은화 작가 |
기다림과 상실을 반복하며 바라보던 꽃은 마지막 연에서 ‘한 사람을 가슴에’ 묻은 뒤 ‘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소중한 사람을 보내지 못한 화자의 마음이 ‘꽃’이라는 형상으로 되살아나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이 시와 닮은 귀한 인연이 있습니다. 스물에 부녀의 연을 맺은 아버지는 제게 친부를 여읜 부재의 자리를 메워 주셨지요.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는 ‘어쩌면 네 얼굴 보는 일이 오늘이 마지막 될지 모르겠다.’라는 말씀으로 저를 울리고는 했습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 동안, 늦게 얻은 딸 덕분에 노년의 쓸쓸함을 견딜 수 있었다는 아버지.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이 시의 ‘꽃이 되어 돌아왔다’라는 행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제, 그제, 오늘이라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수선화를 심던 화자처럼, 우리에게도 소중한 인연이 있겠지요. 이처럼 소중한 이와의 추억이 환한 달처럼 곁에 머물며 다정하게 자기 이름 불러줄 때,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피어있을까요. 헤어짐이란 회자정리 거자필반으로는 위로되지 않는 인연입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