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철원 논설위원 |
강서구 유권자들이 야당 공천자에게 가(可)표를 던진 것을 정확히 따져보면 강서구의 발전에 대한 합리적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더욱 막연하고 일시적인 감정적 반응으로 간주하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비록 강서구가 전국 226곳 기초지자체 중 한 곳이라며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또 현 정권 정책에 대한 감정적 불만이라 하여도 그것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한 느낌도 어떤 때 많은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선거에 대한 하나의 총체적인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이 중요해진 것이 바로 오늘의 정치 환경의 현실이다. 강서구민의 선택은 정부의 정책이 이것으로부터 크게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정부의 정책과 삶의 느낌의 사이에, 특히 그 정책이 과감한 미래 지향적일 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삶과 정책의 일치가 있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세력으로 확연히 갈린 우리 체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현재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일단 흔들어놓는 것처럼 보이기 쉬운 것이 미래 지향의 정책이다. 극한적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 오늘의 삶의 현실을 흔들어놓는 일상은 대부분 사람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기에 때로는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일상에서 강서구민은 재선거하지 않아도 되는 선거를 여당 출신 구청장의 귀책 사유로 국민의 혈세를 선거 비용으로 써 가며 재선거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의 심판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상당 정도로 일상적 삶의 긍정을 가져왔고 그것을 정치 이슈들에 관한 판단의 중요한 준거가 되게 했다. 많은 사람에게는 보존할 만한 일상생활이 있고 그것의 확장을 향한 욕구가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그간의 현 정권의 정치와 정책이 대체로 국민의 일상적 삶의 신장(伸張)에 관계된 것이라기보다 이데올르기적이고 지난 정권의 잘못을 끄집어내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할 수 있다. 이것은 내용에서 그렇고 정치적 접근의 방법이나 홍보의 수사에서도 그러했다. 윤석열 정부가 그 정책적 방향의 핵심에 놓고자 했던 각종 과거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지나친 이념 논쟁은 국민의 삶과 아무 상관 없이 일상에서 동떨어진 정책으로 보여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이념 논쟁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이, 국가 정체성에 관한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도 맞지만, 오락가락 당국자들의 정치적 스타일만으로도 국가와 국민 삶의 과제들은 그 심각성을 잃었고 과거사 뒤집기를 위한 언어의 놀이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념의 논쟁 속에 불어진 정성율 공원 문제나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 문제도 군불만 질렀지 결론은 용두사미가 되어 가고 있다. 아무리 사실에 근거했으면서도 그것을 전체적 일관성 속에서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또 시대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이 현실 이탈을 가져온다.
보궐선거에서 여당에 크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첫 번째가 야당은 똘똘 뭉쳤고 여당은 분열했다. 집행부는 공천을 놓고 우왕좌왕했다. 무공천으로 가닥을 잡다가 갑자기 공천하면서 집권당답지 못한 행동을 보여 준 것과 쫓아낸 전직 당대표와의 불화는 두고두고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가 정권의 인사 문제다. 주요 자리는 전직 검사나 영남 사람과 동창회 사람으로 채워졌고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여 국가가 '노인정'으로 변하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세 번째가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에게는 미래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기 방향은 대일 관계 외교 복원과 한ㆍ미ㆍ일 공조를 회복하며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로 국가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그런데 카르텔 아젠다에서 우리 사회 실질적 카르텔에 큰 바윗덩어리인 법조 카르텔에는 침묵하며 정권의 칼과 돈 앞에 힘 못 쓰는 작은 카르텔 타파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뭐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일방적 정치, 야당과의 대화가 단절된 불통의 정치. 이러한 많은 문제가 유권자의 마음에 작용했을 것이란 것도 패인에 원인이라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의 어려움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있고, 정치란 다수 국민의 삶의 운명을 거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니만큼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책의 의도보다 오히려 결과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정책으로 올바른 정치를 한다 해서 그것이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받는 게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 선거는 종종 이변이란 단어로 표시되면서 늘 상 모순이 선거판에서 일어났다. 보궐선거 후 대통령의 지지도 여론 조사에서 5%나 떨어졌다. 현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 정책 의미에 대한 종합적 이해, 정책의 현실적 조정 등을 집행하는 방식이 전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삶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에 힘을 쓴 탓이다. 지나간 시대 이데올로기의 어설픈 단편들로 갈팡질팡한 느낌을 준 것이다.
정권 초기 3대 국정개혁 간판을 내걸고 힘차게 출발했지만, 저잣거리 간판은 가려졌고 쓸데없는 비방 현수막만 바람에 출렁인다. 대통령과 여당은 다수 야당의 국회 장악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 생각에서 떨쳐 나와야 한다. 차라리 국민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좋은 정책을 올바르게 펴려고 하니 국민의 지지를 보내 달라는 진정성 있는 행동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여당은 더 이상 여의도에 머물지 말고 과감히 민생의 바다로 뛰어들어 그곳에서 물결과 함께 출렁이며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쳐라. 이것이 보궐선거가 주는 교훈이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