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꿈틀’…정치적 구호보다 조건과 능력이 핵심
안보는 국가 존립의 근거…진영논리 아닌 국익의 관점에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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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훈 편집인 |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이 심상치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고, 미국의 대북·동맹정책에도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구체적으로 57기라고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날 가능성도 거론했다. 한미연합훈련은 미국의 축소 지시에 따라 당초 11일 일정에서 5일로 단축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5년 만에 한국을 찾아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된 상황에서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어느 하나만으로도 예의주시해야 할 변화들이 한꺼번에 겹쳐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 안보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아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흔들림 없는 대비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9일 백악관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강력한 핵무기 57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북한을 국제법적 의미에서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 역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핵전력을 구축했다는 현실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지난 8월 20일 국회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보통 80~120개 정도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는 제한적이며 국내 연구기관 등의 추정치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7기냐 80~120기냐를 놓고 숫자에 매달리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상대로 대한민국이 어떤 억제력과 방위태세를 갖출 것인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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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가 조기 종료되는 2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 일대에서 한미 장병들이 연합 도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newsis) |
◇ 김정은-트럼프 회동 가능성…외교와 억제력은 별개 사항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식 정상외교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적대적’이라고 규정하고 축소를 지시했다.
대화의 문이 열리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 긴장을 낮추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면 외교적 노력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외교와 억제력은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다. 협상은 힘이 뒷받침될 때 실효성을 갖는다.
군사훈련 역시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한미연합훈련의 본질은 북한을 침공하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유사시 한미 양국 군의 지휘·통신·작전 능력을 검증하고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전쟁을 억제하는 데 있다.
이번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은 당초 8월 17일부터 27일까지 11일간 예정됐지만 미국의 축소 지시에 따라 21일 조기 종료됐다. 야외기동훈련도 대폭 줄었고, 당초 예정됐던 일부 반격 연습도 실시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훈련 축소가 연합방위태세의 실질적인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북한의 반응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축소 이후에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역시 한미연합훈련을 비판했다. 훈련을 줄인다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전시작전통제권은 ‘안보주권’…정치적 구호는 금물
이런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전작권은 단순한 군사 지휘체계의 문제가 아니다. 유사시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어떻게 지휘하고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와 직결된 안보주권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으로 우리 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향해야 할 목표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강한 한국군과 굳건한 한미동맹은 함께 갈 수 있다. 오히려 한국군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한미동맹은 더욱 대등하고 견고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작권 전환을 정치적 구호로 다뤄서는 안 된다.
특정 정부의 임기 내 성과나 정치적 상징으로 서둘러 추진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인가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국군의 능력, 한미 연합지휘체계, 정보·감시·정찰(ISR) 능력, 지휘통제체계, 미군 증원전력의 안정적인 운용과 확장억제의 실효성 등 실질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전작권 전환의 목표 역시 ‘미군 없이 싸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군이 주도하고 한미동맹이 함께 싸울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연합방위체계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국방에는 속도보다 조건이 중요하다. 특히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전작권 전환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의 확장억제와 한미 연합방위태세가 빈틈없이 작동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중국의 움직임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8월 19~20일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2021년 9월 이후 약 5년 만의 양자 방한이다. 왕 부장은 한중 외교장관회담 등을 통해 한중관계와 한반도 정세, 지역 및 국제 문제 등을 논의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웃이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외교에서 우호와 경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 협력하는 것과 대한민국의 안보를 중국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먼저 책임지고, 외교는 그 위에서 펼쳐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국가의 안보’여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합리적인 안보관이다.
보수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대결이 아니다. 평화를 위해 필요한 억제력을 확보하고, 동맹을 지키면서 우리의 자주적 역량을 키우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두되 안보의 허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현실주의다. 진보의 평화론 역시 대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대화가 안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이다.
평화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힘과 외교와 신뢰가 함께 작동할 때 유지된다. ‘안불망위(安不忘危)’라는 말이 있다.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 안보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경계의 가르침도 드물다. 지금 대한민국은 결코 안일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동맹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은 축소됐다. 전작권 전환 논의는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다시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징후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진영의 안보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다. 안보를 정권의 성향이나 이념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보수 정부라고 안보가 자동으로 튼튼해지는 것도 아니며, 진보 정부라고 평화가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부든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책임이 있다.
◇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평화는 준비된 힘으로 지켜야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한미동맹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연합방위태세에 실질적인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치 일정이 아니라 군사적 능력과 조건을 기준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독자적인 방위능력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중국과는 국익을 중심으로 협력하되 안보의 원칙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안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태평성대에도 갑작스러운 변고가 찾아온다. 지금 한반도에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선택과 준비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결정적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도, 낙관할 것도 아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안불망위의 자세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그 위에서 대화와 외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 역시 오늘날 변하지 않는다. 평화는 희망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힘과 신뢰할 수 있는 동맹, 그리고 치밀한 외교가 함께할 때 비로소 지켜진다.
한반도의 안보 지형이 다시 격랑 속으로 들어가는 지금,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안보냐 평화냐’가 아니다. 강한 안보 위에 평화를 세우는 길이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안불망위(安不忘危)의 자세다.
안보에 낭만은 없다.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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