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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지난 22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명확했다.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민주당, 사법 리스크를 가득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항소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대표보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더 잘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쯤 되면 국민이 바라보는 정부 ㆍ여당 정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실망에 차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통령실 만찬에서 우리는 TV 화면에 또 한 번 대통령과 집권당의 심란한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정부ㆍ여당 고위직과 대통령이 모여 저녁 만찬을 즐기는 내용이다. 그동안 대통령실과 여당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를 해소하고자 기름칠하는 자리로 대통령실에서 마련한 자리다.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로서 민심이 담긴 여당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일을 주선하고 있는 대통령실 당국자는 이 만찬의 자리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만찬은 대통령의 체코 방문 성과 설명 외 국내 정치 현안에는 별다른 의제 없이 밥만 먹었다. 이 급박한 와중에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만나 한가하게 여당 대표가 좋아하는 소고기, 돼지고기만 먹고 헤어졌다고 하니 믿을 수 없고 기가 막힌다. 국민은 정부 고위직과 여당 수뇌가 만나 단지 식사 시간이 되었기에 밥을 먹는다는 얘기로 알아들으란 말인지, 그게 사실이라면 각종 현안이 난마처럼 얽혀있는데 굳이 바쁜 시간에 왜 대통령실 정원에 모여 집단적으로 식사를 하는지, 배고픈 서민은 복장이 터진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정서의 이입(移入)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뜻이 있다. 그러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정서 이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서로의 이견이 조율되어야 하며 또 식사 메뉴가 참석자 입맛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용산 회동은 시작 전부터 매스컴에서 요란하게 떠들었고 대통령과 당 대표와 독대 문제로 당ㆍ정간에 입장차이가 확인되며 빛이 바랬다. 서로의 밥맛을 돋아줄 만한 관계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래저래 만찬의 밥맛은 미각이라기보다는 급양 수준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내 밥 먹기도 힘든 세월에 용산 밥맛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고관들과 여당 고위층이 둘러앉아 고기 파티를 하는 그 광경을 보아야 하는 국민의 밥맛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윤석렬 정부 집권 반환점에 도달한 지금 여론의 국정 수행 능력이 20%까지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 며 "국민만 보고 간다"는 자세로 4대 개혁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결연한 태도는 좋지만 그것만으로 이 현실을 헤쳐나갈 수는 없다. 때로는 자신이 지고 싶은 않는 책임도 져야 하며 만나고 싶지 않은 인사도 만나면서, 자신의 신념인 개혁의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아내 문제'는 더욱더 그러하다.
현 정부의 고뇌사(苦惱事)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야당의 정치공세다. 각종 특검 정국과 맞물린 의료 대란 등 많은 과제에 발목이 잡혀 진흙 속에 빠져 있다. 여소 야대의 대치 정국과 여당과 정부에도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현실 속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김건희 여사의 사법 리스크는 털고 가야 할 큰 짐이지만 문제는 한겨울에 동남풍을 불러줄 제갈량의 신기(神技)도 없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달만큼 용기 있는 신하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야당의 거듭되는 퇴행과 서민 생활의 파탄 속에서 집권 여당은 정신을 차려야 함에도 무기력에 빠져 국정이 어디로 가는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장기 불황에 지친 서민 앞에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거치적거리고 있다. 특히 당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야당보다 당당해야 할 여당이 끌려가며 쩔쩔매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지금은 여당에게 책임, 무책임을 열거할 필요가 없으리만큼 한계를 넘어섰고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과 여당 대표, 국민의힘 고위직이 만난 자리에서 꼬일 대로 꼬인 현 정국을 타개할 묘책을 기대한 건 아니다. 그러나 온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마땅한 의제 없이 고기 파티를 하고 나왔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그들의 행사가 사적인 일에 머물 것인가. 국정 최고 책임자들이 모인 자리가 마치 동네 계모임처럼 회원들이 만나 고기를 먹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볼 때 이번 대통령실 고관과 여당 고위직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일은 현실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난국을 풀어나가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총체적 위기 정국을 풀어나가는 일은 대통령의 읍참마속 결단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만 바라보며 국정을 수행한다는 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이 어떤 눈으로 보는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별 의미 없이 고관들이 밥 먹는 맹탕 만찬을 봐야 하는 일은 참으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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