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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시인 |
[편집자 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청소부」「제비집」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다』 『짙은 백야』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곁에 머무는 느낌』, 장편 동화 『왕따』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 『나 엄마 딸 맞아?』, 산문집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소설 『우리가 사랑한 천국』 등을 펴내고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지훈문학상 김동명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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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학 시인 |
●5월 신간 소설 『우리가 사랑한 천국』을 내셨는데 책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소설은 원래 2005년에 출간한 『졸망제비꽃』의 개정증보판이에요. 그해에 제가 책을 5권이나 출간했어요. 시집, 장편 동화, 어른동화, 산문집 그리고 이 소설의 초판이었죠. 이 소설은 시간에 쫓겨 거의 초고 상태로 출간한 상태라 아쉬움이 컸어요. 초판본 소설에는 삽화가 들어가 있었는데 삽화를 웹툰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했어요. 그분의 의견을 듣고 작품을 고치고 싶어졌죠. 오래된 집을 수리하듯이 중요한 골격만 남기고 싹 다 고쳤어요. 7꼭지를 추가하고 기존 꼭지에도 상당량의 내용을 삽입했지요. 어디에서부터 읽어도 연결 고리가 걸리도록 고치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였어요.
●『우리가 사랑한 천국』은 문장이 시 문장처럼 빛나는 묘사들로 이루어진 점 놀랍게 읽었습니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잇는 소설에서 꼭 담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소설은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몇 곱절은 인내가 있어야 하는 작업이겠죠. 오죽했으면 책상을 다 뜯어먹을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겠어요. 장편 서사시가 가능한 장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비슷한 것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최소한 중간중간에서 묘사 시를 써보려고 했어요. 이를테면 괄약근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풍경 묘사를 끼워 넣었어요. 말하지 않는 대신 보여주기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었죠. 이번 소설의 화두는 ‘웃음’이에요. 소설에 나오는 ‘똥산이’는,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실존 인물이었죠. 동네와 산과 들 바다에서 그녀와 자주 마주치곤 했어요. 제가 주눅이 들어있을 때, 그녀는 웃는 얼굴에 신이 난 걸음으로 돌아다녔어요. 그녀와는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 사이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전염된 걸 뒤늦게 알았죠.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의 웃음을 웃는 그녀에게 말이에요. 우리의 천국은 유년 시절이었고 그곳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웃음을 선물하는 그녀가 있었죠.
●책을 묶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었을까요?
▼내 글은 내가 책으로 만들고 싶어 1인출판사를 시작했어요. 이번 소설이 다섯 번째로 내는 책인데 디자인 때문에 애를 먹었어요. 이번 책이 소설 시리즈의 첫 권이라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새로이 해야 하는 것이라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작업을 시작한 디자이너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디자이너를 바꾸게 되었어요.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워 디자인 작업까지 직접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죠. 표지와 본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내의 한계를 경험해야 했어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고 수없이 되뇌었죠. 교정지를 뽑아 37교(矯)까지 교정을 보았고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바꿔나갔어요. 뿔이 백 개쯤 난 디자이너의 ‘이런 경우는 난생 생 처음이다.’라는 분노까지 녹여내 멋지게 세상에 나온 예쁜 책이에요.
●책을 낸 현 시점에서 이번 소설집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6개월 동안 신이 나서 집중적으로 쓰고 고친 작품이에요. 예전에 장편 동화를 낼 때도 한번 그랬어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삽화까지 앉힌 상태였는데 원고를 엎겠다고 했었죠. 그때 편집자의 경악하는 얼굴을 보았죠. 이주일만 시간을 주면 새로 써오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어요. 이번에도 싹 다 들어 엎고 다시 썼어요. 정확히는 내가 쓴 게 아니라 누군가가 불러주는 대로 옮겨적은 거겠죠. 무의식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어요. 저는,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누군가 불러줄 때까지 기다려 옮겨 적는 거라고 믿고 있어요. 바닥까지 내려가서 바닥을 치고 올라올 때, 그 사람이 아니면 옮겨적을 수 없는 글이 되는 거라고요.
●소설집을 내고 바로 이어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다음 책의 계획이 듣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 꽂히기 전에 사진 산문집을 낼 예정이었어요. 그동안 찍어온 사진과 시 같은 글, 소설 같은 글, 산문 같은 글, 동화 같은 글 120편을 묶어 놨었죠. 그리고 미발표 시를 묶어 신작 시집을 낼 계획이었죠. 사진 산문집은 원고와 사진이 준비된 상태니, 올해 안에 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다음 소설의 플롯이 거의 짜였어요. 메모도 충분히 해놓은 상태고요. 그동안 시집을 열한 권 냈으니, 당분간은 시집을 내기보다는 소설 안에서 시를 쓰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사랑한 천국 2』이 내년에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소설에 실린 내용 중 독자 분들께 소개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지만, 미친 데기 여자 ‘똥산이’는 우리 곁을 떠돌면서 웃음을 전도한 게 아닌가 상상해 보았어요. 그녀의 웃음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의 한 구절과 만나게 되었죠. ‘너희가 되돌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장 3절). 저는 무신론자지만, 이번 소설을 쓰고 고치는 동안 책장에서 성경을 꺼내 읽게 되더라고요. 우리의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웃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천국으로 다가가는 징검돌을 하나씩 밟는 게 아닌가 상상하곤 했어요. 가슴속에 설렘을 채우는 삶을 꿈꾸게 되었죠. 설렘으로 충만한 사람만이 웃음의 징검다리를 밟고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요.
●평소 작가님의 신념이나 세계관이 듣고 싶습니다.
▼2005년에 출간한 시집 『그림자를 마신다』의 표4글을 한 줄로 썼어요. ‘언어는 정신까지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가 그것이죠. 말장난하지 말자는 나만의 다짐이기도 했어요. 삶도 마찬가지지만 글도 그래요. 내가 뛰는 마라톤 코스는 나 혼자 갈 수밖에 없는 길이죠. 누군가를 곁눈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만인 것이죠. 내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으로, 절박해서 가면 된다고 봐요.
●신간 『우리가 사랑한 천국』을 내며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요즘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해요. 나도 모르게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함박웃음 짓던 기억의 끈을 놓쳐버린 건 아닌지. 그때의 환한 웃음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되짚어보세요. 우리는 어느새 불행에 익숙해진 사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 앞으로도 더 불행해질 것 같은 사람, 조바심에 끌려다니는 사람, 그래서 나는 천국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죠. 거울을 앞에 놓고 거울 속의 나와 이야기해 보세요. 나에게 묻고 대답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나와 친한 사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나에게 한 발짝 다가가면 사소한 것에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지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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