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끝내 길들여지지 않아 결국에는 수레를 뒤집고야 만다는 말, 覆車之馬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6-04-13 1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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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김선향
▲ 김선향 시인

 

 

김선향 충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여자의 정면』, 『F등급 영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가 있다. 오랫동안 여성결혼이민자와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원주 이서책방에서 처음 뵌 이후 오랜만입니다. 요즘 북토크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근황이 궁금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작가 초대석에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 번째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를 작년 5월에 출간했는데요, 지금까지도 낭독회와 북토크가 계속 이어져서 저도 어리둥절합니다. 과분하게도 백석문학상 본심에 오르기도 했고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늦깎이로 등단을 했는데 파란곡절 가운데 시를 놓은 시절도 있어서 첫 시집을 출간하는 데 11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네요. 정말이지 근근이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전주 집필실에 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낯설고 불편한 공간에 저를 부려두려는 생각에 신청하게 되었어요. 한 달에 한 번 김남일 작가가 이끄는 ‘아시아의 근대를 읽는 시간’에 나가 아시아의 소설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Q.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다니 보기 좋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 우리가 매번 사랑할 때마다 떨리고 서툴고 새로운 것처럼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도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겨울에 멀리 포항에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권양우의 공감 詩낭독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한 낭독이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제 시집 전체를 다 읽는 귀한 시간이었죠. 몹시 민망하기도 했는데 누군가의 시를 읽어준다는 것은 필사만큼이나 귀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언젠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감독이 말하기를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영화가 완성된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시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독자마다 시에 대한 감흥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죠. 제 시를 읽은 후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저 역시 뭉클합니다.


파주 시니어 책방 ‘나날’의 북토크에는 시니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고등학생들이 참석했더군요. 책방지기 오승훈 선생님의 제자들였지요. 지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해서 휴, 했습니다. 한 학생은 엄마의 산문집을 들고 와서 보여줬어요. 그동안 엄마와 자주 다투기도 했는데 북토크를 듣다보니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울먹였어요. 그 여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본인도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꿈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Q. 선생님의 이번 시집을 보니 「80cm」의 마지막 행이 시집의 제목이 되었더군요. 이 시는 실제 사회적 사건에서 출발했는데, 현실의 비극을 시로 옮길 때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우선 시를 독자들과 한번 읽은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80cm


너의 반쯤 감은 눈동자
아니 반쯤 뜬 눈동자

너를 잊을 수 없게 하네
나를 견딜 수도 없게 하네

어린이집에 간 지 겨우 닷새째
이불을 씌우고 베개를 올린 거대한 그림자 아래
너의 발버둥과 파닥거림이 이어지던 14분

네 어미 보티늉은 네가 누운 작은 관에
털신과 장갑을 함께 넣었단다
영상통화로 입관식을 지켜보던 네 외할머니는
베트남 하띤에서 오열하는구나

나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얼음장 같아 얼른 손을 뗐지만
손바닥엔 화인이 찍히고 말았구나


「80㎝」는 「피에타」, 「숙곡리 할매들」과 함께 제자 보티늉의 아들 동민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한 시입니다. 그러니까 2022년 초여름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아기의 죽음, 제자 응웬 두안썬까지 세 사람의 죽음이 1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면서 의지할 데 없는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80cm를 죽은 아기의 키로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관의 크기입니다. 화성시 공무원들과 싸워서 겨우 얻어낸 장례식장에서 저는 상주의 역할을 했습니다. 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장례지도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가운데 본인이 짠 가장 작은 관 크기가 80cm라는 거예요. 그 얘기가 아주 인상 깊었고 상징적인 의미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시로 쓸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이걸 시로 써도 될까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죽은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는 게 애도일진대 감히, 이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윤리이기도 하고요. 몇 달 전 이 사건을 맡아주신 변호사님으로부터 민사소송까지 다 마무리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뉴스를 보시던 경기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 할머님들의 가슴까지 무너지게 했고 빈소로 달려오시게 했습니다. 비자 연장을 해야 하는 시점에 저는 보티늉한테 어렵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살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네, 선생님. 베트남에서 제가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저는 혼자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했을 거예요. 많은 한국 사람이 서명도 해줬고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연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자식을 잃은 참척의 슬픔 속에서도 보티늉 학생은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했고 딸 ‘재희’를 얻었습니다. 가끔 사진을 보내주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돌잔치를 했습니다.
 

 

▲ 파주 시니어 공간 책방 <나날> 북토크 후 소감을 나누는 송진아(백석고) 학생과 함께(2026)



Q. 선생님의 시에는 여성, 이주민, 노동자, 노인, 아이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이 드러납니다. 이 시선은 어떻게 시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같습니다. 첫시집 『여자의 정면』과 두 번째 시집 『F등급 영화』에서는 여성의 시선과 감정으로 본 세상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해체 과정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한국 여성 삶의 문제를, 이혼, 낙태, 원조 교제, 성형 수술, 여성 비정규 노동, 결혼 이민자, 전쟁 중 성노예 문제 등 실로 다양한 국면에 걸쳐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결혼이민자와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제 삶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을 듯합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제 시 속에 스며들었다고 봐야겠죠.

 

『여자의 정면』과 『F등급 영화』의 독자가 주로 여성이었다면 이번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는 남성 독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잔뜩 주눅든 채,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출간한 시집이라서 저한테는 첫 시집 만큼이나 각별합니다. 시인이란 늘 경미한 기척, 미세한 울림, 그림자 같은 존재를 포착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낮은 것, 가난한 것, 약한 것에 대한 관심 혹은 애정이 시의 주름으로 겹쳐져 있을 수밖에요. 엔도 슈사쿠 소설을 읽다가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구절에 공감했습니다. 매력이 없는 것, 아름답지도 않은 것에 마음이 끌리는 자가 시인 아니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선생님 등단이 꽤 늦었던 걸로 아는 데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5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는데 그때 제 나이가 서른아홉이나 되었죠.(웃음) 물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창작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시인과 소설가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그런 마음을 품을 리 없었죠. 백일장에도 한번 나가본 적 없었고요. 집에 있었던 시집이라고는 한용운의 『님의 沈默』이 유일했죠. 아마 어머니가 보셨던 시집 같아요.


뒤늦게 결혼을 하고 서른세 살 무렵, 처음으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모함 덕분에 등단이란 걸 하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국어사전을 보며 빈둥거리는 걸 좋아했고 무엇보다 공상에 자주 빠져서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거의 온종일 집에만 있던 아이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시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길동무 문학학교 세계문학교류에서 시 낭독 후 아다니아 쉬블리(Adania Shibli), 프리야 바실(Priya Basil) 소설가들과 함께(2023)



Q. 선생님의 시 「봄밤」이 인상적었습니다. 도시의 대로변으로 뛰쳐나온 소들의 질주에서 자유의 본능을 감지하고 “역류성 식도염이고 나발이고 /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뛰쳐나가 / 탈주에 가담하고 싶”다는 욕망은 시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 경기대 후문 앞 광교산로가 나오는 거 보니 이 시는 한참 전 수원에 살 때 초고를 써놓았던 시입니다. 제목을 바꿔 이번 시집에 넣게 되었습니다. 2010년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고 수원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는데 변호사는 서울에 있고 법원은 또 인천이어서 가까운 데를 찾아 잠시 지내던 대전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 10여 년을 살았던 곳이라 저한텐 고향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당시 도시의 대로변으로 뛰쳐나온 소들의 질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무척 흥분되고 좋았습니다. 어쩐지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고 소들의 질주에 가담해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북쪽으로 그 너머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상당한 억압을 받고 있었나 봅니다.(웃음) 누군가 제게 이번 시집에서 가장 본인다운 시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나혜석」과 「봄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봄밤」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궁극은 좀 거창하지만 ‘자유’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시를 쓸 때 이걸 가족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구설에 오르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막 쓰는 편입니다. 자유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기와 다르게 고집도 너무 세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합니다. 아무리 손해를 보고 상처를 받더라도요. 삼십여 년 만에 연락이 닿은 한 선배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저를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웃음)

시를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어요. 당신의 치열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말에 끝내 길들여지지 않아 결국에는 수레를 뒤집고야 만다는 말, 覆車之馬가 있었다고 하는데, 당신의 시를 읽으며 내내 그 생각을 했어요.


Q. 선생님의 시 「나는 얼마입니까?」라는 내용은 물론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베트남인 원도산이라는 화자의 죽기 전 그리고 죽은 후의 발화를 통하여 거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풍자와 아이러니의 방법으로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쓰셨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 저는 시인이니까 시로써 저항할 수밖에요. 응웬 두안썬이 추락했다는 전화를 받았던 날이 떠오릅니다. 2023년 7월 6일 오전이었고요. 기적을 믿어보자는 한국어 선생님한테 제가 “25층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아요?” 악을 쓰며 난생처음 통곡을 했습니다. 옆방에 있던 직원들이 놀라서 달려왔죠. 떨리는 손으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이미 두안썬이 죽었더군요.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행신역으로 갔는데 경황이 없어서인지 기차를 놓쳤습니다. 어찌어찌 충북 오송에 내려갔는데 빈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베트남 사람이라 조문 올 사람도 없을 텐데 굳이 빈소를 뭐하러 차리냐는 반문을 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보티늉이 아기를 잃었을 때도 공무원들이 똑같이 말했습니다. 다음 날 두안썬이 죽은 지 정확히 24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양 파라곤 본사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들은 베트남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많이 찾아와서 땡볕 아래 기다리고 있었죠. 동양 파라곤 대표는 화환만 보내고 조문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죽었다면 그럴 수 없었겠죠.


제가 뭘 계획하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무고한 제자의 죽음이 너무나 억울해서 이건 반드시 시로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마침 문장 웹진에서 청탁이 왔어요. 웹진이니 잘 되었다 싶었고 그때만 해도 문학잡지보다는 웹진에 발표하면 노출이 더 많이 될 거로 생각했죠. 순진한 생각였죠.(웃음) 노출이 안 되더라고요. 공식적인 자기소개서는 합쇼체로, 죽은 화자가 남긴 글은 해요체,를 써서 구분했습니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으로 단숨에 써 내려간 시인데 다시 이 시를 대면하긴 어려웠습니다. 응웬 두안썬은 죽어서야 한국 이름 원도산을 얻게 되었습니다.

- 김선향 선생님 귀한 시간 내주셨습니다. 말씀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해주셔서 특히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기대하겠습니다. 《일요주간》 독자분들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 얼마 전 동료한테서 세 번째 시집을 내면 평생 시인으로 살게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 경우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자신이 없습니다. 《일요주간》 독자분들이 응원하고 기대해 주시니 어찌어찌 노력해 보겠습니다. 네 번째 시집으로 인사할 날이 오면 정말 좋겠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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