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본드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기술적 설명에서 출발한다. 블록체인, 토큰화, 분산원장과 같은 용어가 먼저 등장하고, 그 위에 금융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접근은 금융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금융시장은 기술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본의 통제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금융의 시장적 의미를 정의해보자.
첫째, 자본은 어디에서 조달되는가, 둘째, 그 자본은 어떤 구조를 통해 운용되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누가 통제하는가, 이 세 가지가 명확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어떠한 금융상품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디지털본드는 전혀 새로운 금융상품이 아니라 기존 채권과 동일하게 자산을 기반으로 현금흐름을 생성하고, 그 흐름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를 가진다. 단지 발행과 유통 방식이 디지털 환경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논의가 이 핵심 구조를 건너뛴 채 기술적 특징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디지털본드는 금융상품이 아니라 기술 프로젝트 이론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이론이 아닌 구조 설계를 정확히 구현하고 있다.
JPMorgan Chase 는 토큰화 기반 결제 및 채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기존의 신용 구조와 결제 체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기술을 도입하되 금융의 핵심 구조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BlackRock 역시 디지털 자산을 별도의 시장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기존 자산운용 체계 안에서 자산을 디지털 형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투자자 보호, 수탁, 리스크 관리와 같은 요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접근은 단순한 보수성이 아니라 금융의 본질에 대한 기초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에서 기술은 도입 요소 이지만 구조는 전제 조건이다. 기술은 바꿀 수 있지만,자본은 구조가 설계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적용이 불가할수 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본드 출발점은 블록체인이 아니라 자본이 어떤 구조 안에서 이동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전제 조건이다.
이 기준을 놓치는 순간 디지털본드는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반대로 이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순간, 디지털본드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금융으로 구현되고 적용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이 이동하는 방식을 재 설계하는 문제가 핵심인 것이다. 디지털본드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유동성 부족’이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고, 매수와 매도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금융시장 관점에서 이 설명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유동성은 시장의 출발 조건이 아니라 구조가 완성된 이후 나타나는 결과 변수다. 따라서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유동성이 부족하다’가 아니라 유동성이 발생할 조건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이다.
금융시장에서 거래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기초자산의 명확성이다. 투자자는 무엇에 투자하는지, 그 자산이 어떤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발행 주체의 신용 구조다. 자산이 동일하더라도 누가 발행하느냐에 따라 위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셋째, 운용 및 통제 체계다. 자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리스크가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넷째, 투자자 기반이다. 기관 투자자나 앵커(Anchor) 투자자가 존재해야 2차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현재 디지털본드 프로젝트 상당수는 이 4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1.기초자산이 불명확하거나, 2.발행 주체가 신용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3.운용 책임 구조가 분리되어 있지 않거나, 4.투자자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적으로 발행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거래는 발생할 수 있어도 시장은 형성되지 않는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유럽과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디지털 채권 발행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후 거래가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는 경우는 항상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 초기 단계에서 대형 기관 투자자가 참여하고 발행 구조와 수탁 체계가 명확하게 설계되며 기초자산의 현금흐름이 검증된 경우 이 조건이 충족되면 유동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따라서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의 핵심 문제는 거래 기술이나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으로 작동하기 위한 구조적 조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념 이론적 이해가 아닌 구조 설계와 디지털 본드 거래자의 현황이 기초하지 못하면 디지털본드는 계속해서 ‘유동성이 부족한 시장에서 가능성만 가질 것이다. 정확히는 시장이 아닌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 미래에셋 사례에서 시사하는 접근 방식
디지털본드는 기술 실험이 아니라 조달 구조의 재설계를 기본으로 한다. 2026년 1월 미래에셋증권은 약 1,000억 원 규모의 디지털 채권을 발행했다. 발행 통화는 홍콩달러 3억2천500만 달러와 미 달러 3천만 달러였고, 1년 만기의 사모 구조로 조달이 이뤄졌다. 주간사는 HSBC, 보조 주간사는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이 맡았으며, 발행에는 홍콩 금융관리국(HKMA)의 공식 채권결제 인프라 CMU와 연계된 HSBC의 토큰화 플랫폼 ‘Orion’이 활용됐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를 국내 금융권 최초의 디지털 채권 발행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블록체인을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핵심은 미래에셋이 채권을 디지털화한 것이 아니라, 자금 조달 경로를 다시 설계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외화채 발행은 발행, 예탁, 배분, 결제가 여러 단계의 중개 체계를 거쳐 처리된다. 반면 이번 구조는 홍콩의 디지털 채권 인프라를 활용해 발행과 투자자 배분, 기록 관리가 분산원장 기반에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이는 디지털본드의 본질이 새로운 상품 개발이 아니라 기존 채권 발행 프로세스의 재배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더 주목할 부분은 발행지가 한국이 아니라 홍콩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지역 선택이 아니다. 현재 한국은 토큰증권 제도화가 진행 중이지만, 디지털 채권 발행과 결제, 수탁,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까지 한 번에 연결하는 인프라는 아직 제한적이다. 반면 홍콩은 정부가 토큰화 국채와 디지털 그린본드를 반복 발행하며 관련 인프라를 제도권 안에서 축적해 왔고, 홍콩통화청(HKMA)의의중앙금융시장단(CMU)과 민간 플랫폼이 연결되는 구조를 이미 만들어 놓았다. 미래에셋이 홍콩 인프라를 활용한 것은 기술 선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제도권 인프라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미래에셋의 디지털 채권은 흔히 말하는 ‘토큰화 혁신’과는 결이 다르다. 미래에셋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글로벌 외화 조달 시장 안에서 디지털 발행 방식을 이용해 비용과 속도, 통화 선택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을 택했다. 실제 보도에서도 이번 발행은 해외 조달 루트를 넓히는 ‘데뷔전’ 성격으로 해석됐고, 회사가 꾸준히 해외 조달 무대를 넓혀왔다는 맥락 속에서 읽혔다. 이는 디지털본드를 독립적인 테마가 아니라 글로벌 자금조달 전략의 연장선에 놓았다는 뜻이다.
미래에셋 구조의 특징을 분석하면 첫째, 기초 신용은 여전히 미래에셋증권이라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신용과 발행 역량에 기반한다. 둘째, 발행 플랫폼은 제도권 인프라와 연결된 홍콩 구조를 활용했다. 셋째, 투자자 모집은 안정성을 고려해 사모 방식으로 진행했다. 넷째, 디지털화는 상품 자체의 혁신이 아니라 발행·기록·배분의 운영 혁신에 집중됐다. 이 네 가지는 모두 기관투자자 관점에서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이며 이 사례가 한국 금융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디지털본드는 한국에 곧바로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해외 인프라를 통해 자금조달 구조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 단계에서 한국 금융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국내 제도 안에서 무리하게 모든 요소를 직접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홍콩처럼 제도와 인프라가 이미 정비된 시장을 활용해 디지털 조달 경험과 투자자 저변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미래에셋 사례는 바로 그 현실적 경로를 보여준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디지털 채권 발행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곧 디지털 채권 시장이 성숙했다는 뜻은 아니다. CMU와 같은 홍콩 인프라는 선진화돼 있지만, 시장 저변이 아직 넓지 않고 대규모 조달을 원하는 기업에 항상 최적 해법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평가가 함께 나온다. 즉 미래에셋의 사례는 ‘완성’이 아니라 실행 가능성의 입증에 가깝다. 구조는 열렸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위해서는 투자자 기반, 반복 발행, 유통시장 심화가 뒤따라야 한다.
결국 미래에셋 사례의 핵심은 기술 도입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운용·증권 비즈니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외 자금을 조달하고, 어떤 인프라를 선택하며, 어떤 국가의 제도 위에서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실전 답변이다. 디지털본드는 여기서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자본 조달 경로를 바꾸는 도구로 기능한다. 미래에셋이 보여준 것은 디지털본드의 미래가 아니라, 디지털본드를 활용하는 금융회사의 미래 전략이다.
● 미래에셋은 채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본이 들어오는 경로를 바꿨다.
한국에서 디지털본드는 직접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해외 인프라를 통해 자금조달 방식으로 먼저 들어오고 있다. 디지털본드의 한계는 인프라가 아니라 ‘자본시장 형성 단계’를 먼저 설계하는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디지털본드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오해는 기술 인프라와 자본시장 형성 단계를 동일한 층위에서 해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표적으로 기관급 디지털 자산 인프라, 예를 들어 Fireblocks(디지털자산인프라플랫폼)와 같은 플랫폼은 이미 수조 달러 규모의 디지털 자산을 보관하고 이동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발행·결제·보관·전송에 이르는 기술적 요소는 상당 부분 구현된 상태다.
디지털본드는 이 기준에서는 ‘거래 가능한 환경’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거래 가능성과 시장 형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술 인프라는 반드시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시장은 거래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구조” 이기에 먼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이론적 학술 기법이 아니라 기본적 설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동일한 단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개념이다.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은 전자, 즉 인프라 단계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후자인 자본시장 형성 단계에서는 아직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디지털본드 시장은 “이미 준비된 시장인데 왜 활성화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계속 이론적 가치로 머물게 된다.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자본시장에서 충족 해야만 한다. 첫째, 발행 규모의 축적이다.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발행 잔액이 존재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가격 형성과 거래가 이루어진다. 현재 디지털본드는 발행 건수와 규모가 모두 제한적이다. 둘째, 기관 투자자의 참여다.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와 같은 장기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시장은 구조적으로 깊이를 가질 수 없다. 디지털본드의 경우 아직까지 기관 투자자의 본격적인 참여가 제한적인 상태다.
셋째, 반복 가능한 구조다. 단발성 발행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고, 투자자들이 해당 구조를 이해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유동성 부족’이다. 즉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의 유동성 문제는 거래 기술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 형성 단계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이 지점에서 인프라와 자본시장의 구분은 명확해진다.
Firelocks와 같은 인프라는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도로’에 해당하고 자본시장은 실제 차량이 반복적으로 이동하며 흐름을 만들어내는 ‘교통량’에 해당한다 도로가 존재한다고 해서 교통량이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이 차이를 이미 인식하고 있다.
BlackRock은 디지털 자산 인프라를 활용하면서도 초기에는 국채와 같은 저위험 자산을 중심으로 발행을 확대하고 있으며, JPMorgan Chase 역시 디지털 채권을 독립 시장으로 분리하기보다 기존 채권 시장 안에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디지털본드는 기술이 완성되면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들어올 구조가 반복될 때 시장이 형성된다. 따라서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을 평가할 때 ‘인프라가 충분한가’가 아니라 자본시장으로서의 조건이 얼마나 축적되었는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인프라는 거래를 가능하게 하지만, 시장은 자본이 반복적으로 들어올 때 형성된다.
● 한국 시장에서 디지털본드는 ‘도입’이 아니라 ‘연결’로 작동한다
한국 자본시장은 규제 정합성과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는 강점이지만, 디지털 채권과 같이 발행·결제·수탁·투자자 접근이 동시에 재구성되는 구조를 단기간 내에 국내에서 완성하기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해외 인프라에서 발행 구조를 만들고 국내 금융기관이 운용과 투자 연결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미래에셋증권의 최근 디지털 채권 발행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래에셋은 한국이 아닌 홍콩의 디지털 채권 인프라를 활용해 외화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선택이 아니라 “어디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다. 즉 디지털본드를 국내에서 구현하려 하기보다 이미 제도와 인프라가 구축된 시장을 활용해 자금 조달 구조를 먼저 완성하는 접근을 택한 것이다. 이 구조는 세 가지 측면에서 현실적이다.
첫째, 규제 충돌을 최소화한다. 국내 제도와 글로벌 인프라를 동시에 활용하면서도 법적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둘째, 자금 유입 경로를 확대한다. 외화 기반 발행을 통해 기존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까지 포함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셋째, 반복 가능한 모델을 확보한다. 한 번 구조가 완성되면 동일한 방식으로 자금 조달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현행 제도 안에서 작동 가능한 가장 정교한 금융 구조다. 이미 존재하는 자본시장 위에서 자금이 이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다.
금융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구조를 먼저 만든 곳으로 자본이 이동하고, 그 자본이 시장을 만든다. 디지털본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본드는 자본을 연결하는 구조이며, 그 구조를 먼저 만든 곳이 시장을 선점 하는 것이다.
● 한국 금융기관과 연결되기 위해 기본적 시스템을 구비 하여야 한다.
디지털본드는 기술로 발행될 수 있지만, 투자는 결국 제도권 검증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디지털본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동일한 방식이 곧바로 작동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디지털본드는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구조이지만, 실제로 국내 자산운용사, 증권사, 은행과 연결되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먼저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그 전제조건은 단순하다. 한국의 회계 기준, 법률 체계, 제도권 규제, 투자자 보호 기준을 모두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단계가 정리되지 않은 디지털본드는 기술적으로는 발행이 가능할 수 있어도, 금융기관 관점에서는 여전히 검토 불가 구조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먼저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법률 구조다. 한국 금융시장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금융상품의 성격을 판단한다. 디지털본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름에 ‘디지털’이 붙는다고 해서 별도의 독립적 자산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기존 금융상품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 이 토큰이 채권인지, 투자계약증권인지, 수익증권에 가까운지, 혹은 단순한 권리표시 수단에 불과한지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 체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따라서 발행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구조 설계자는 “토큰을 발행한다”는 기술적 설명보다 먼저 “이 구조가 자본시장법상 어떤 증권으로 해석되는가”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 단계가 불분명하면 이후의 운용, 수탁, 판매, 투자자 모집은 모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특수목적법인, 즉 특수목적법인(SPV) 구조도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글로벌 디지털본드 시장에서 SPV가 자주 활용되는 이유는 자산과 발행주체를 분리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단순히 SPV를 세운다는 사실만으로 구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이 SPV가 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하는지, 누구의 지배를 받는지, 자산과 현금흐름이 실제로 분리되는지, 파산 시 투자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까지 모두 검토 대상이 된다. 결국 SPV는 이름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하다.
국내 금융기관은 “SPV가 있다”는 설명보다 “SPV가 실제로 자산을 어떻게 보유하고, 누가 통제하며, 투자자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호하는가”를 본다. 이 설명이 명확하지 않으면 SPV는 구조의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회계 처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디지털본드 구조가 아무리 세련돼 보이더라도, 회계적으로 어떤 자산과 부채로 인식되는지가 불분명하면 기관투자자의 참여는 사실상 어렵다. 한국 금융기관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아래에서 SPV가 연결대상인지, 발행된 디지털본드가 금융부채인지, 자본성 성격을 갖는지, 기초자산의 수익과 위험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엄격하게 본다.
예를 들어 발행 구조상 SPV가 독립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 모회사가 지배하고 위험을 부담한다면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자산은 SPV에 있으나 현금흐름 구조가 불명확하거나 상환 구조가 복잡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수익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 금융상품은 결국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약속인데, 이 약속이 회계적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디지털 여부와 관계없이 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수탁 구조다. 디지털본드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는 “블록체인이 있으니 수탁이 필요 없다”는 식의 접근이다. 그러나 실제 금융기관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기술이 정교할수록 오히려 자산 보관과 자금 통제, 권리 관리가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더 명확히 확인하려 한다. 국내 금융기관과 연계하려면 결국 수탁은행, 신탁사, 또는 이에 준하는 제도권 자산보관 장치가 필요하다.
자산이 어디에 보관되는지, 현금은 어떤 통제 계좌를 통해 움직이는지, 담보권은 누구에게 설정되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산 처분과 회수 절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탁 구조가 없는 디지털본드는 기술적으로는 발행될 수 있어도 기관투자자 기준에서는 신뢰 가능한 상품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즉 블록체인은 기록의 기술이지, 신뢰의 대체물이 아니다. 자산을 누가 보관하고, 누가 통제하며, 누가 감독하는지가 여전히 금융의 핵심이므로 규제 대응 또한 단순한 형식 절차가 아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국내 제도권 기관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후 승인보다 사전 해석과 협의가 더 중요하다. 특히 디지털본드처럼 기존 금융상품과 기술적 표현 방식이 결합된 구조에서는 증권성 판단, 사모·공모 여부, 적격 투자자 범위, 광고 가능성, 판매 방식, 외환 규제 적용 여부 등이 모두 검토 대상이 된다.
여기에 해외 투자자가 참여할 경우 자금세탁방지, 고객확인, 외국환거래 관련 신고, 세무상 처리 문제까지 함께 따라온다. 해외에서 자금을 받아오겠다는 구상은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KYC·AML(고객확인제도,자금세탁방지)체계, 환전 구조, 외화 송금 절차, 세제 정합성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금융기관은 ‘토큰화 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통과한 구조인지’를 먼저 본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지털본드는 늘 기술 설명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국내 자산운용사와 실제로 연결하려면 요구 수준은 더 높아진다.
자산운용사는 단순히 자금을 넣는 참여자가 아니라, 투자구조와 책임의 중심에 서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용사가 참여하려면 최소한 운용 주체가 누구인지, 투자 구조가 펀드인지 직접투자인지, 기초자산 실사는 누가 담당했는지, 수탁 및 결제 체계는 확보되었는지, 투자자 보호 장치는 어떻게 설계되는지까지 정리되어야 한다.
특히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토큰을 발행할 수 있는가”보다 “이 자산을 펀드 안에서 어떻게 편입하고, 수익과 손실을 어떻게 배분하며, 책임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핵심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구조는 국내 자산운용사가 모든 디지털 기능을 직접 수행하는 방식보다, 해외 SPV가 발행을 담당하고 국내 자산운용사가 운용과 투자 연결을 담당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 이 구조는 해외의 발행 유연성과 국내의 제도권 신뢰를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기준 가장 현실적인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결국 한국 금융기관과 연계 가능한 디지털본드란 기술적으로 블록체인 위에 올라간 채권이 아니라, 법률적으로 해석 가능하고, 회계적으로 인식 가능하며, 수탁 구조가 확보되고, 규제 대응이 가능한 구조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지 않으면 디지털본드는 여전히 ‘흥미로운 개념’일 수는 있어도 ‘검토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넘어가기는 어렵다.
디지털본드는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투자되는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그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법률, 회계, 수탁, 규제다. 이 네 가지를 통과하지 못한 디지털본드는 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서 멈춘다. 따라서 디지털본드의 승부는 기술력에서 갈리지 않는다. 디지털본드는 기술이 아니다. 자본을 연결하는 구조다. 그리고 자본은 언제나가장 먼저 구조를 완성한 곳으로 이동한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누가 먼저 제도권 금융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하느냐다. 금융기관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보다 먼저,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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