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㉗] 인도

문화 / 이은화 작가 / 2025-05-08 16: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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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곽재구


챔파꽃이 피는 강변에/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큰 도시의 공장으로/ 다른 소년이 일하러 나가는 동안
소년은 늘 혼자였습니다
물소들이 두 개의 뿔과 코만을 수면 위에 띄워 놓고
강둑 이쪽에서 저쪽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마다
챔파꽃 한 가지씩을 걸어주었습니다
챔파꽃 화관을 쓴 물소들이/ 끝없이 강을 건넜습니다
물소들은 이 세상의 어느 끝을 살다가도
이 강변을 향하여/ 어슬렁 어슬렁 걸어왔습니다
물소들은 챔파꽃 화관을,/ 소년을 사랑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에/ 챔파꽃 가지를 매달아주며
언젠가 물소가 되어 돌아올 그 자신을 기다렸습니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플루메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참파꽃은 향이 진하고 달콤하지요. 하와이와 동남아에 많이 피는 이 꽃을 떠올릴 때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와이의 해변이나 동남아 사원의 참파꽃 그늘이 생각나거든요. 하와이 바닷바람에 실린 향과 사원의 넓은 그늘에서 맡는 참파꽃 향은 고가의 브랜드 향보다 매혹적이지요.

서랍을 열다 참파꽃 핀을 발견했어요. 여행에서 산 그 핀을 어느 쪽에 꽂을지 망설이다 피식 웃던 기억. 러브하와이라고도 불리는 꽃, 하와이에서는 꽃을 왼쪽에 꽂으면 미혼을 뜻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 때문이지요. 어느 쪽에 꽂았는지는 비밀이랍니다. 여행지에서는 어느 쪽인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인걸요. 오늘은 이 추억의 인연으로 참파꽃에 관한 시를 만나보려 해요. 곽재구 시인의 인도에 대한 사랑은 ‘챔파꽃’ 향처럼 진하지요. 타고르의 시를 접하고 그의 고향 산티니케탄에서 일 년 넘게 머물며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이라는 산문집을 엮기도 했으니까요.

「인도」는 곽재구 시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현상적 사실보다 환상적 진실이 녹아난 시, 읽을수록 참파꽃 향이 적요의 추처럼 깊고 짙어지는 이유는 무얼까요. ‘챔파꽃이 피는 강변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이 소년은 ‘강을 건너는 물소들의 뿔마다/ 챔파꽃 한 가지씩을 걸어주었습니다/ 챔파꽃 화관을 쓴 물소들이’ 강을 건너 살다가 다시 강변으로 돌아오지요. ‘세월이 흐르고/ 챔파꽃 피는 강변에/ 한 늙은 뱃사공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늙은 뱃사공이 되어 고향의 그 자리에서 늙어왔음을 알 수 있어요. 이어 ‘언젠가 물소가 되어 돌아올 그 자신을’ 기다린다는 결구는 자연과 합일된 사후 세계를 잇는 행이네요. 생멸의 인과를 넘어 윤회가 담긴 순환구조를 보여주지요. 동양의 심미적 아름다움이 잘 빚어진 시입니다.

물소의 울음소리와 느리게 첨벙대며 강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소리만 존재하는 이 시에는 복잡한 현대사가 없습니다. ‘소년을 사랑했’ 다는 물소들의 마음뿐, 소년의 마음도 드러나지 않지요. 하지만 소년이 늙은 뱃사공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도」는 자연 순리의 원시성을 헤아릴 줄 아는 이에게 생의 깨달음을 주는 선물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위로하며 축복하는 시, 삶에 대한 의미가 깊어지며 경건해집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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