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열광의 에너지를 발전에 동력으로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2-12-07 17: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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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시끄럽고 탈도 많은 대한민국 사회를 한마음 한뜻으로 묶는 월드컵 계절이 돌아왔다. 그동안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주요 정치 현안들이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실체가 드러난 대장동 사건과 각종 크고 작은 정치 현안, 이태원 참사 등 사건 사고들도 월드컵이라는 마법의 기표 앞에서 일순간 정지됐다. 모든 계층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공평하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 다시 말해서 일상이 만들어 놓은 경계들을 한순간에 모호하게 만드는 마법이 월드컵 경기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 공식 서열 9위인 포르투갈을 2대1로 역전하며 온 국민을 월드컵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손흥민이 절대 찬스에서 황희찬에게 볼을 패스하는 모습에 우리는 전율을 느꼈다. 손흥민은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목표로 가장 절박한 시점에 내가 아닌 동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양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적을 이뤘고 대한민국 축구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국민은 이토록 아름다운 경기에 흥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열사의 땅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새역사를 쓴 우리 전사들의 쾌거는 온 국민의 잠을 설치게 하며 열광케 했다. 우리는 왜 월드컵 축구만 보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이런 질문은 우문처럼 들리지만 마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 여기에 열광의 이유가 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성격을 통해 월드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광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월드컵에 대한 열광을 축구에 대한 몰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국내 프로 축구는 아직 갈 길이 먼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선수가 선전 분투하는 경기에는 열광한다. 무엇이 우리를 열광하게 하고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가?

TV를 시청하는 개인의 입장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열광의 원천은 대강 이럴 것이다. 나 스스로를 우리 축구선수들이 외국팀을 상대로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에 자신을 대입해 한국 팀이 경기에 이기면 내가 이긴 것이고, 지면 내가 진 것이다. 내 인생과 빛과 그림자가 한국 축구 흐름과 하나로 겹쳐지면서 환희 또는 좌절이라는 강력한 감정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나와 한국 축구가 동일시되는 것이다. 한국 축구가 이기고 있는 순간에 내 인생은 행복하지만, 지고 있으면 내 인생은 갑자기 불행해지는 어둠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하루하루가 정신적으로 피곤하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어디로 떠나거나 현시점과 뚝 떨어져 있었으면 하는 기분을 늘 느끼며 산다. 그런 면에서 월드컵 축구는 근사한 도피처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다시 경험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다. 그 세계에서는 한국팀이 내 '아비타'가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 내가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게 아니고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도하 축구장에서 직접 달리고 있다. 한국팀이 내 분신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선수의 움직임 하나하나와 팀의 승패에 열광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적으로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음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한 번도 세계 중심에 서본 적이 없다. 중심은커녕 지구촌에서 최하위 빈국, 식민지 지배라는 치욕의 경험도 했기에 한국인 핏속에는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그래서 우리는 응원을 할 때면 '자랑스러운 한국'이라 하지 않고 늘 '大韓民國' 을 외친다. 그것도 대-한-민-국이라며 목이 터지라 외친다. 반세기 전 세계 최하위 빈국 대한민국은 기적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OECD국가 중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발전해왔다. 문화는 K팝,한류,영화. 과학ㆍ기술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휴대폰, 전자 제품 등에서 세계를 제패하며 주목을 받지만 유독 스포츠 특히 축구에서만큼은 아직 변방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가 이룬 쾌거를 외신과 국내 매스컴은 우리 축구를 기적이라 말하지만 나는 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피나는 훈련, 땀과 노력의 결과라 말하고 싶다. 아니 우리 민족정기인 끈질긴 열정과 집념의 결과다. 이런 우리 태극전사의 위대함을 어떻게 집에서 편히 감상하며 혼자 즐기겠는가. 물론 집에서 TV시청을 하면 편안하고 전문가 해설도 곁들이면서 자세히 볼 텐데 굳이 추운 거리에 나와 거리 응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수와의 혼연일체, 나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공동 운명의 연대감이 엉키면서 혼자서는 느끼지 못한 뭉클함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열정과 축구발전 소망의 소통과 나눔이다.

16강 이후 토너먼트 형식의 월드컵 축구는 곧 끝날 것이며, 그 기간 동안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보여준 열광의 에너지는 엄청나다. 그러나 열광이 열광으로만 끝이 난다면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없다. 환상의 에너지가 구체적으로 현실이 되어야 축구발전의 소망이 충족될 수 있다. 과거 큰 스포츠 행사를 치룬 나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것은 열광만 해 즐기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국익이 되는 것에는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열광에 순간에도 이성에 기반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축구경기에 투자한 열광의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국내 프로 축구에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선진 대한민국, 일류 축구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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