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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호 |
그것이 매너리즘에 편리주의에 우선주의에 합리주의에 종교주의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가 매일을 대면하는 인물들이며 소설의 구성상 야간 미화시킨 부분이 있지만 사실이다.
매몰찬 세상인심과 맞서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길 위를 누비고 있는 식구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먼저 세상을 저버리고 간 식구들에 명복을 빈다.
알콜 중독자?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별 볼일 없는 오후다. ‘부산 철도노동조합지방본부’ 1층, 한 사내가 ‘실직노숙인조합’란 나무명패가 붙어있는 문 앞을 서성이며 입김을 분 손바닥에 코를 박고 흥흥거리고 있다. 멍들어 붓고 터진 얼굴에 한여름 겨울파카잠바 차람의 명우다.
한나절을 참고 이러는 것이 억지스럽지만 문전박대 당하긴 싫은 때문에 부산역 광장 바닥에 며칠째 자리를 깔고 푼 술의 잔존유무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예이 *팔, 예전엔 잘 나갔는데” 이런 명우도 5년 전에는 중고 핸드폰을 중국에 내다팔았던 사업가였다.
자신만만했던 그에게 낮선 이국땅이란 남의 이야기, ‘승승장구’ 한마디로 잘나갔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사업 확장을 고민해야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버렸다. 당시 중국에선 한국인들은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때였다.
술 한 잔에 기분 좋은 팁을 뿌려대던 한국인 사업가는 좋은 표적이었던 것이다. 무일푼에겐 단 1분도 허락하질 않는 이국땅, 범죄의 표적으로 털린 무일푼에겐 더욱더 그러했다. 믿을 데라고는 대사관을 비롯한 대한민국기관들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명우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해 주기보다 말끝마다 우호적 관계를 들먹이며 미온적이고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함에 명우는 사방팔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의 막가파식 대응에 한국행 비행기에 죽어서 실리느냐 살아서 타느냐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과 울분을 삭히며 도피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결을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관계기관들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업무의 과중함과 떠넘기기식 오리발에 심심풀이 땅콩 캐러멜 같은 에피소드 취급이었다.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당한 놈만 억울한 현실,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발치에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길 수십 번, 막동판과 달셋방을 전전하는 암담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등바등 악착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하지만 호구지책이었던 막노동 일감이 떨어지자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담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자본우선주의사회에서 살아보겠다는 것은 축구장의 레드카드 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상실과 박탈, 원망과 절규로 애태워야했던 2년의 탈출구는 죽음 아니면 길거리로 나 앉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죽을 기회를 외면한 자신의 나약함을 원망하며 술,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보고 싶다고 술, 무슨 놈의 술 먹을 이유가 그리 많은 것인지 술, 술, 술........매일 매일이 상대해주지 않는 과거와 죽음에 대한 예찬이었다.
그러다가도 비가 오는 날이면 과장스러운 표정에 코맹맹이가 구성진 중국가수 흉내로 사무치는 고독에 술타령도 우울한 노숙부랑인들의 시름을 달래주곤 했다. 명우는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도 유쾌함과 재미를 잃지 않으려했던 40대 청년이었다. 그런데 이젠 술 없인 살 수 없는 노숙부랑인이다.
예쁜 딸이 보고 싶어 가봐야겠다고 입에 달고 살던 집은 영영 갈수 없는 약속이 되었고 막일이라도 해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뿐이다.
노숙생활 3년, 곁은 멀쩡해도 위, 간, 폐, 척추 등 어느 한곳 성한 데가 없어 죽지 못해 사는 하루살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잔 술에 옛 모습이라도 주절거려야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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