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그것 모르제? ‘서면 3대 악인’이라고..."

문화 / 이준호 / 2010-05-26 18: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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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3), 길 위의 사람들

나의 인생에서 최근 9년 동안은 부산역광장의 풍경이었다. 기타하나를 들고 노래하고, 나눠먹고, 싸우고, 절규하는 풍경. 욕구불만 일수도 있고 무일푼의 몽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그림자였고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가진 것 없는 무일푼에 오갈 데 없어 부산역에 늘어 붙어있는 무숙자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버릇처럼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할 것이다.


그것이 매너리즘에 편리주의에 우선주의에 합리주의에 종교주의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가 매일을 대면하는 인물들이며 소설의 구성상 야간 미화시킨 부분이 있지만 사실이다. 매몰찬 세상인심과 맞서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길 위를 누비고 있는 식구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먼저 세상을 저버리고 간 식구들에 명복을 빈다.
-부산역 광장에서 이호준-

증언

“명우야. 세탁기 돌릴 건데 니 옷도 같이 빨자.”
대답 없이 열리는 문틈 사이로 뭉친 옷가지들이 튕겨져 나온다.
준은 숨쉬기 불편한 고약한 풀썩거림에 얼굴을 찡그리며 냉장고 옆 빗자루와 부삽을 이용해 옷가지를 쓸어 담아 든다.
그리고 세탁기가 있는 뒤꼍을 향한 행여 떨어질까 조심스런 걸음 질이다.
“어! 시원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습관처럼 덜 마른 머리를?비벼대며 사무실에 들어서는 명우다.
여위어 길고 뾰족한 콧대가 멍들어 붓고 터진 상처와 어우러져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드롱(Alain delon)의 멜랑꼬리한 느낌이다.
악보정리에 열중이던 준은 그런 명우를 곁눈질로 올려다보며 잠시 지켜보는가 싶더니 악보로 어지럽혀있는 다홍색 탁자 위의 음료수 캔을 건넨다.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주방 밖 냉장고에서 꺼내온 음료수 캔이다.
“오랜 만에 웬일이냐? 얼굴은 왜 그렇게 개판이고?”
“니 알제. 지훈이라고,”
머리를 비벼대며 음료수 캔을 받아든 명우가 준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내뱉는 비음 섞인 동문서답이 마치 넘실거리다 부딪치는 파도 같다.
“응. 왜?”
“지훈이가 레슬링 한 아덜 둘 데리고 도망친 앵벌이 아덜 찾아 뒤지게 패고 꼬지(구걸) 본 돈, 빼앗고 다니는데 니 모르나?”
“꼬지 본 돈을, 지훈이가 왜?”
“야~ 말도 마라. 그 새끼가 아덜 얼마나 괴롭히는데, 내도 그 상놈의 새끼들 숙소(여관)로 끌려가, 왼쪽 옆구리에 찬칼을 보여주는데, 와! 살 떨리데, 밤새도록 쳐 맞고 그 개새끼들 조는 틈에 겨우 도망 나왔다아니가.”
준은 명우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술이란 자기중심적인 표현수단 중 으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준의 의중을 꾀 뚫어 본 것인지 몸서리를 치며 말끝을 흐리는 명우의 모습이 제법 갈고 닦은 연기파 배우 같다.
“아니 근데 지훈이가 왜 너를?”
“니~ 그것 모르제? ‘서면 3대 악인’이라고, 차~암 나, 지훈이 그 아하고 호삼이, 동만이, 이 세 놈이, 크흐응~~ 글쎄 말이다. ‘서면3대악인’이란다.”
바람 새는 적절한 탄식으로 말을 이어가더니 자신의 모습이 밀고자인 것 같아 코를 뚫듯 코웃음을 치는 명우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준이다.
그래도 명우는 소파에 기댄 몸을 바로 잡으며 긴장 풀린 목소리를 양껏 돋워본다. 며칠째 가슴에 담아 놓았던 응어리를 풀어 볼 작정인 것이다.
“니 내말 못 믿겠제? 근데 사실이다. 차~암 나, 형이라 부르질 말던가. 새끼들, 형형...하면서 때려대 쌓는데 와~ 이젠 위아래도 없는기라. 새끼들 완전 돈 거 같다.”

짭짭한 돈벌이?

앵벌이는 주로 지하철을 무대로 구걸하는 꼬지꾼을 중앙에 두고?앞과 뒤에서 망을 보는 앞방과 뒷방, 이렇게 3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벌이를 한다.
꼬지꾼은 대부분이 중증 장애인들이며 망 잡이는 술, 밥, 담배 값에 따라나선 신체 건강한 노숙부랑인들이 대부분이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는 앵벌이는 수입의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꼬지꾼들이 두목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지나면서 계급화 되고 조직화 되어 범죄화가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앵벌이의 꼬지꾼으로 이용당하면서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어린아이들이다.
앵벌이는 풍요로운 직업적 선택이기 보단 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최후의 생존수단이며 평등이란 탈을 쓴 자본우선주의의 유산인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배고픔의 해결에서 짭짭한 수입에 길들여지면 그 무엇도 우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을 예전에는 앵벌이가 아닌‘꼬지꾼이라 불렸다.
거리생활이란 것이 두목을 뺀 나머지 식구들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했다.
그것은 도둑질이건 강도질이건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해서 정해진 액수나 술이나 담배, 먹을 것을 사는 상납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행위가 싫은 이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꼬지 즉 구걸을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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