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청년이 건넨 한마디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담긴 메시지는?

현장+ / 김진영 / 2014-01-17 16: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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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만연한 현대사회에 대자보 확산 열풍
청년문제를 정치로만 이용…정당 불신 확산
청년들의 목소리, 한 곳으로 모아져야 파급력 커져


[일요주간=김진영 기자] “하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
한 대학생이 건넨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졌을 뿐인데 그 파장은 호수 끝자락까지 닿는 것처럼. 인사를 받은 이들은 저마다 외친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고려대 주진우씨는 SNS가 만연한 현대사회에 7~80년대에서나 볼법한 아날로그 방식인 대자보를 통해 안녕하지 못한 사회에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대자보를 쓰게 된 계기는 분명 ‘분노’ 였지만 그의 글에는 따뜻한 온기가 담겼다. 어느 하나를 겨냥하지도 않았으며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철도파업, 밀양송전탑,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결코 안녕하지 못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울리는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목소리는 ‘빨갱이’ 또는 ‘종북’으로 매도됐다.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해야할 정치집단은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방관했으며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다. 대자보를 내붙인 청년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Newsis

그들의 외침

일상화된 스마트폰 사용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한 실시간 정보교환이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의 대자보가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1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현상과 정당정치의 한계’ 토론회에는 직접 대자보를 작성한 대학생들과 직접 정당정치에 발을 담그고 있는 청년들을 비롯해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발제를 맡은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장경태 부위원장은 오늘날 청년들의 대자보는 과거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구호와는 다르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들은 근래 대자보가 말하고 있는 태도인데 과거에는 선언의 형식을 취했다면 최근에는 대화, 하소연 등 안부를 묻는 형식이다”라고 언급했다.

대자보가 다시 떠오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답답함이 아닐까 한다”며 ‘비정규직’, 높은 등록금의 ‘상아탑’,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구직난’ 등 각 머리글자를 딴 ‘비상구 시대’에 직면한 청년들의 현실을 토로했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는 장경태 부위원장은 오늘날 청년문제는 미래의 장년문제라며 “지금 청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래 장년세대는 무너질 것이고 대한민국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이가 빠지면 잇몸이 시리다는 말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1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현상과 정당정치의 한계’ 토론회에는 직접 대자보를 작성한 대학생들과 직접 정당정치에 발을 담그고 있는 청년들을 비롯해 정치인과 시사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요주간
‘조용히 손을 들어서 글을 시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게재했다는 한양대 유호준씨는 대자보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분노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참회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주변의 아픔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우리와 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기성세대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청년들의 아픔을 당연시 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그는 “부모님은 노력해서 안 되는 것 없다, 뭐든 부딪혀봐라, 너희 나이 때는 다치고 깨져도 상관없는 나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게 있다”라며 “넘어지면 아픈 거고 결국 결과로만 평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양대 강태영씨는 대자보 작성 근거에는 분노가 더욱 컸다고 했다. 자신이 게재한 대자보가 6시간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도 했다. 그는 “기존 정치이미지는 자신들 진영의 머릿수만 믿고 날치기 통과하고 몸싸움하고 부정적인 이미지였는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며 느낀 것은 생활 정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SNS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대자보’라는 방법을 택한데 대해서도 온라인상에서 사회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타인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안길 수도 있다는 점을 짚었다. 섣불리 정치적 잣대 혹은 이념적으로 구분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다는 것.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에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도 나왔다. 경희대 홍성용씨는 청년들이 스펙쌓기에 몰두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에 대해 “스펙은 일종의 생존문제”라며 또한 청년들이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대학생들이 스펙에 몰두하는 이유는 일자리, 즉 졸업 후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이며 나아가 정치가 해줘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음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생들이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또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무관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안철수 후보 당시에 그렇게 큰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청년들이 기성정치와 제도권 현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섬함을 느꼈던 것”이라며 “청년들이 정말 무관심하냐에 대해서 살짝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의 역할이 그런 의견들을 모으는 것인데 그런 역할을 전혀 못해주고 있다”며 “철도 민영화 당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정부를 못 믿겠다는 것인데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노조가 아닌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득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정당이 제 기억엔 없었다”고 꼬집었다.

유호준씨도 정치권이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을 미리 규정하고 평가하는데 대해 언짢음을 표했다. 유 씨는 “말하는 것 자체가 싹트는 과정인데 추수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라며 정치에 소비되고 있는 청년층을 단물 빠진 껌에 비유했다. 선거 때가 되면 껌(청년)이 필요하고, 원하면 언제든지 새 껌은 종류별로(청년문제) 많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중앙대 조원영 씨도 정치권이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선거에만 이용하려 하는 태도를 문제 삼았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청년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할 대학생들의 섭외작업을 직접 맡았다는 그는 섭외를 거절한 한 학생의 말을 소개했다. “왜 정당에서, 민주당에서 이런 토론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당이 현상 이전이후 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해준 것도 없으며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당이 전혀 아닌데 (토론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조원영씨는 “정치적 이슈에 있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흐름을 형성하고 내지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연대 과정에 있어 정당이 어떤 관여도, 영향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당조직에서 기획하고 이런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서 평소 귀 기울이고 (의견을) 정리해서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녕들하십니까 현상이 실효성 있는 족적으로 남기 위해서는 과거 80년대와 같은 반정부 시위 형태가 아닌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여론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조씨는 청년세대가 현실정치와 상호작용을 해야 변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스스로 바꿔라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을 보다 발전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참여, 즉 대중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따랐다. 또 정당과 현실정치가 우리 사회에 생활정치로 다가올 때 비로소 민주주의 실현과 정치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대자보가 일종의 목소리 단계라면 그 안에 담긴 불만이나 불편한 마음들을 사회적 성과로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역량이며, 정치라는 시스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두문정치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기반을 가지고 결사체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오해받는 걸 꺼리는 문화 자체에 함몰되면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한 이철희 소장은 “어느게 옳고 그르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길을 묵묵히 가는 과정에서 정치를 어떻게 활용해나갈 것인가만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생활과 괴리된 정치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우리 주변에 정치참여의 채널이 없어진데 원인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어떤 정당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졌다”며 “지구당, 풀뿌리 조직이 없어지면 장점은 기득권, 현역(국회의원)은 유리하다는 것과 선거 때만 국민이 유권자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직접 국민 앞에 다가오기 위해서는 선거법 등 정치관련법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정치관개법을 개혁해서 정치가 보통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끔, 길거리에 정치가 넘치게끔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정치권이나 기성세대가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을 미리 재단하거나 성급히 규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지켜봐 줄 것을 당부했다. 자연스럽게 표출된 분노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윤색이 되면 퇴색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 공약 후퇴 논란 이후 이해당사자인 노인층에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마찬가지로 공약에서 후퇴한 장애인 연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예를 들며 “이분들(장애인)은 정치적 파워, 힘, 압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보기 때문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대학생들이 공통의 문제에 대해 공통의 요구조건을 도출하는 순간 정치참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당 안에 흡수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을 움직이는 힘의 주체로 덩치를 키우라는 조언인 셈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문제가 커지고 목소리가 커질 때 정치쟁점화 되면서 정치적 모색에 들어간다.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자기 문제에 대해 구성원들끼리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주적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결국 정치와 결합하는 과정이 관건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결코 정치가 무엇인가를 먼저 해주길 기대하지 말라는 그는 “결합력을 높이고 생산적 결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일관 되게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얼마만큼 힘을 가지고 정당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정당을 변화시키는 외부적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대중적으로 정치과잉 시대가 아니라 정치결핍의 시대이며 이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는 참여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참관하던 한 학생이 조직화를 통한 정치참여에 대해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면 재앙”이라며 반박하자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대학생들이 자주적으로 조직을 만드는 것을 곡해하고 있다”며 “가장 강력한 정치적 수단은 대안이며 대안은 어디에서 나오거나 마련되는 것이 아닌 관철시킴으로 인해 인정받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질 때 관철될 수 있다”는 답을 내놨다.

토론회 주최이자 이날 사회를 맡았던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정치권이 대자보 현상을 통해 반성을 해야 하며 정당에서도 적극적인 개선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선거철에만 청년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청년들로 하여금 의견을 듣는 소통창구 마련 필요성에도 공감하며 이 의원은 “정당이 청년들의 얘기를 별로 안 들어온 것은 사실”이라며 “의사가 결집된 집단 혹은 의사를 표현하는 빈도 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낮다보니 정치권에서도 다른 집단과는 달리 아무래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일요주간
정당에서도 당권경쟁이나 선거와 관련 없이 장기적이고 일관된 당론을 마련해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채널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대자보 현상은 한편으로 SNS 소통공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언주 의원은 “현대사회에서 대중과 접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정당이) 고민해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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