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8년 LA 한국의 날 퍼레이드에 참석한 김태연 회장. |
[일요주간=정승덕 기자] 김태연 TYK그룹 회장은 미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강사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봄,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장소인 산타클라라 컨밴션 센터에서 1500여명의 구글, 페이스북, 야후, 애플 등의 직원들이 참석한 행사에서 김 회장은 기조 연설자로 나와 주목을 받았다.
당시 김 회장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 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띤 강연을 하며 패널식 의견을 주고 받었는데, 그 자리에는 마침 산호세 머큐리 신문의 살 피자로 기자가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북가주 지역에 아주 유능한 언론인으로서, 모든 주류 언론이 존경하는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 회장의 강연을 들은 후 “마치 원더우먼 처럼 강렬한 모습이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리더십은 비전과 소통이 중요
김 회장의 강연 요지는 리더십에는 비전과 소통이 중요하고, 비전을 크게 가지라는 것이다.
“‘Future Memory’를 인식하자는 것이다. 경영자 혼자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직원들과 같이 가져야 한다. 경영자가 제시한 미래의 비전을 직원들이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회사의 성장과 직원 개개인의 성장은 놀랍도록 폭팔적일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가 직원들에게는 무조건 내 회사, 내 일 처럼 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경영자의 욕심이요, 모순이다. 직원들에게는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하고, 경영자는 자기 식구들과 호의호식을 하며 낭비를 한다면, 그건 의리 없는 정치인 수준 밖에 안되는 경영자이며, 그런 경영자 아래서 그동안 일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을 뿐더러, 배가 침몰하는 위기가 와도 누구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논법은 대기업 뿐이 아니라 중소영업자와 종업원, 작은 개인 클리닉의 원장과 몇명 안 되는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뜻을 세우면 반드시 길이 있다
김 회장은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후 회사의 사업 방향을 컴퓨터 디스크 소프트웨어 쪽으로 맞췄다. 민감한 센서를 작동시키는 소프츠웨어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코맥이라는 회사에서 첫 주문을 받는 등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김 회장 회사가 승승장구를 하고, 모두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대기업 대열에도 들어가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한창 마음이 부풀어 있을 때다. 하루가 멀게 직원을 계속 채용해야 했고, 회사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 하고 있었다.
회사의 재정이 풍부해 지고, 마치 재벌 기업이 된 것 같이 국내외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 당시 황금 어장인 중국과 싱가폴, 말레이지아, 필리핀에 대거 투자를 감행, 현지 부동산도 다량 매입하였는데,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던 그 부지들이 지금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모두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당연히 직원들 모두에게 많은 분배를 하여 주었고, 김 회장의 직계 식구들을 위해 각각 최신 주택을 구입해 주었으며, 김 회장도 지역 최고의 저택을 매입하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매년 세계 유명 휴양지 “클럽 매드” 등을 찾아 식구들과 직원들에 휴가를 지내게 하였고, 김 회장 고향인 경북 김천을 방문할 때는 200여명의 인원이 한국 항공기를 전세 내다 시피 하여 한국을 다녀 오곤 했다.
자식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회사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회사가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어느날, 김 회장이 회의에서 황당한 제안을 했다. 자체 센서를 개발 하자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는 너무 황당한 제안이었다. 당시 센서 공급 회사인 라이트하우스 밴더가 우리 회사 때문에 먹고 살고 있는데, 그런 회사가 공급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며 모두들 반대 의사를 내놓고 있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이용하고 있듯이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센서를 공급 받았는데, 우리가 센서를 개발 하려면 부서를 하나 더 개설해야 하고, 직원도 더 채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왜 어머니께서 제안으로 내놓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김 회장은 식구들에 반대 의견에도 굽히지 않고 센서 개발을 서두르라고 강력하게 지시를 했다. 벌몬트 주에서 느닷없이 실리콘밸리로 가자고 한 어머니 였고,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경험한 자녀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 센서를 개발하기로 하고 박차를 가했다.
큰 아들 스캇과 라코를 가까운 산호세 스테이트 대학에 보내 클래스를 듣게 하면서 김 회장은 자체 센서를 개발해 낸 것이다. 결국 라이트하우스를 만든 대단한 변화였고, 모험이었다.
![]() |
▲ 한국전 참전용사에 감사메달 증정하는 김태연 회장(사진 왼쪽). |
급기야 김 회장 회사 메인 부품 공급 회사에서 공급 중단 통고가 온 것이다. 식구들 모두 어머니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 맞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어머니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신기한 예지력에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십여년을 공급해온 회사가, 라이트하우스 때문에 커진 회사가 그렇게 공급 중단하겠다고 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라이트하우스 경쟁 업체가 공급 회사를 매입한 것이다. 어려움에 봉착할뻔 했던 회사가 자체 센서 개발로 인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새로은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으니 업계가 발칵 뒤집어 졌다.
샌프란시스코 컨밴션센터에서 SEMICON 이라는 국제쇼에 우리 센서로 개발해서 내 놓은 신제품을 모두들 가짜 센서라고 믿지를 않았다.
전체 R&D 팀이 모두 매달려도, 3년이 소요되어야 겨우 개발할 수 있는 센서를 6개월만에 내놓으니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김 회장은 장비를 모두 오픈해서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 할수 있도록 했고, 소식을 전해 들은 고객 업체 회장이 직접 자가용 젯트를 타고 날라와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사건도 있었다.
실리콘밸리라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오늘이 지나면 내일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곳이다. 눈 앞에 풍성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김 회장은 늘 머지않아 닥아올 새로운 시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교한 기술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정확하게 카운트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눈 앞에 오고 있다. 그게 앞으로의 우리의 사업 방향이다. 최첨담 정밀 센서를 개발 해야 한다.”
그런 구상을 한지 꼭 20년 후인 현재, 김회장의 예상대로 나노 시대를 맞게 되었고, 피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Nano 테크놀러지가 세상에 선보이기 전인 1990년대, 김 회장은 벌써 팀들에게 차세대 테크놀러지를 준비 시켰던 것이다. 자녀들은 벌몬트 주에서 회사를 할 당시도 느닥없이 실리콘밸리로 가자는 어머니의 결정에 놀라며, 도대체 어머니의 저 뜬금 없는 아이디어는 또 무엇인가…. 모두들 불안해 하면서도 어머니 김 회장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던 자녀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다시 어머니가 제안한 분야의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가 생길 때 마다 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자녀를 가까운 대학을 보내 그 분야에 대한 클래스를 듣게 한다. 자녀들이 스터디를 하다보니, 어머니가 발상한 아이디어가 미개척 분야임을 깨달으면서 개발이 쉽지는 않은 분야이지만 훗날에 크게 얻을 수 있는 열매에 대한 기대로, 전 식구들이 매달려 개발에 착수를 하게 된다. 과연 김 회장의 비전은 맞아 떨어졌고, 한동안 암흑에서 벽을 더듬듯 불안하고, 힘든 시간들이 모두 지나고,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 회장이 컴퓨터와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최첨단 센서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는 50-100 마이크로미터, 눈에 식별이 가능한 입자의 크기는 35마이크로미터다. 혈액 세포의 크기가 7마이크로미터 인데, 김 회장 회사에서 개발한 기술은 0.5마이크로미터까지 검색을 하고 잡아 낼수 있다. 기체나 액체에 존재하고 있는 거의 모든 분자를 카운트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참으로 대단한 최첨단 기술을 개발 한 것이다. 라이트하우스 의 모토이자 자존심인 “Technology that Counts”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모든 기업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눈이 충혈되어, 온갖 음모와 시비를 동원하여 돈을 따라 다니는 것에 반해 김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 이런 자세로 경영인과 직원이 함께 공유하면 존경과 신뢰의 밑바탕이 힘이 되어 건전한 회사로 성장한다는게 김 회장의 사업 철학이다.
그래서 김 회장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현지의 시각으로 두뇌에 생성 시키는 용어인 “Future Memory”를 주변 사람들에게 주입 시킨다. 이 말의 의미는 현재의 어려움을 비전으로 극복하라는 “Innovation(혁신)”의 뜻과도 같은 데, 김 회장의 다각적 사업 도전에도 “Future Memory”라는 “Vision Icon” 이 같이 했음을 느낄 수 있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와 “Future Memory”는 김 회장의 유명한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 |
▲ 김태연 TYK그룹 회장. |
와이너리
김 회장은 오레곤 주 최남단 도시 Medford에서 가까운 Applegate 지역에 500에이커의 Vineyard(와인농장)을 가까운 지인으로 부터 구입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와인 생산을 위한 Pinot Noir와 Cabernet Sauvignon 포도 생산을 연간 150톤 정도 생산 하고 있다. 와인농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이다. 원시시대를 능가하는 자연 환경과 청정지역의 물맛과 공기, 경북 김천의 농촌 출신인 김 회장에게 물이 풍부한 오레건주는 자연을 인조이하며, 와인을 생산하기에는 최적의 지역이었다.
김 회장은 이 지역에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뿐이 아니라 희귀 버섯과 약재의 재배도 계획 중인데, 본인이 농촌 태생이라 그런지 최근 들어 오래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직접 포도나무를 돌보는 등 정성과 열정을 와이너리에 쏟고 있다.
“와인 만큼은 대기업의 경제 논리론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 할 뿐”이라고 김 회장은 강조한다. 그런 김 회장의 다짐은 실제로 보여 지고 있는데, 작년 생산된 1만4000병의 와인을 단 한병도 팔지 않고 라이트하우스 전 직원들과 해외 에이젠트들 그리고 그동안 인사하고 싶은 공적 사적 친구들에게 선물을 했으며, 회사를 방문하는 고객, 일반 손님 그리고 행사장의 모든 손님들에게 무상으로 선물하였는데, 와인 케이스도 멋지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한 고급스러운 가죽 케이스에 담아 정성껏 만든 와인을 선사하고 있다. 판매를 한다고 하면 $180-$240 정도 라고 한다.
김 회장의 와인 농장은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위 지역이 날씨가 흐려서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도 김 회장 농장은 하늘 구멍이 뚫린 듯 농장 주위만 햇볕이 내리 쬐는 마치 에덴 동산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포도농장을 따라 흐르는 강가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휴식처를 만들어 놓았으며, 시즌에는 연어를 낚시할 수 있어 식구들이 휴일에는 연어 낚시를 즐기며, 저녁 반찬에 오르기도 한다.
또한 나무로 우거진 산이 농장 옆으로 이어져 있는데, 가파른 산길을 버스도 오르 내릴수 있도록 도로를 새로 만들어 방문객들이 농장 주위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있도록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특별한 것은 산 정상 위에는 초대형 십자가를 세워 지나가는 비행기들도 십자가에서 비치는 햇빛의 반사를 보며 고도를 느낀다고 할 정도로 정성드려 세워 놓았는데, 김 회장이 맨도시노에 1500에이커 땅을 가지고 있을 때도 역시 산 최정상위에 대형 십자가를 세워 파일럿트 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대형 십자가를 산 정상위에 세우기 위해 포크레인이 4대나 동원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십자가를 세워 논 장소를 “Holy Land(홀리 랜드)” 라고 이름을 지었다. 십자가 가 세워진 산 중턱에는 “Cabernet Sauvignon” 포도가 심어져 있고, 산 아래 강가 옆을 따라 “Pinot Noir” 포도 농장이 있다.
원래 오래곤산 Pinot Noir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계속>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