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나는, 부끄럼 없는 한 해를 살았는가

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0-12-29 1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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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되돌아보자, 부끄럼 없는 한 해를 살았는가.
 

▲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역병, 여대야소, 법무부와 검찰간의 권력다툼 등 많은 사건으로 국민을 힘들게 했던 경자년 한 해가 노을처럼 지고 있다. 누구나 이맘때가 되면 하던 모든 일을 매듭짓고, 했던 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특히 사회 지도자들은 내가 한 일에 잘못은 없는가. 나 자신이 옳았다는 신념으로 상대에게 비수를 꽂은 일은 없는가. 내가 옳은 것이 이 사회 공동체에 다 좋은 것인가. 스스로의 행동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는가를 되돌아보며 깊이 성찰(省察)하는 시점이다.

성찰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덕목이다. 불교에서 108가지 참회는 뉘우치고 미안하다는 뜻을 갖는 크샤마Ksama의 의역이다.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 과정에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참선하는 이유도 뉘우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성찰의 방법이다. 기독교에서 용서의 기도를 하는 이유, 천주교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 역시 회개를 통한 자기 성찰에 있다.

이 성찰을 아예 사회구성의 원리로 채택한 것이 현대성Modermity다. 현대는 모든 시스템과 제도에 성찰을 깊숙이 심어 놓았다. 정부와 기업을 포함해 어떤 조직이든 평가 반성 교정을 철칙으로 삼게 만들었다. 여기다 제대로 성찰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감독과 감시 기능을 이중 삼중으로 설치해 놓았다. 국회 국정감사 , 감사원 감사, 회계법인의 회계감사 등이 모두 이 성찰을 감시하는 제도들이다. 현대가 과거보다 나은 현재,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는 진보Progress의 시간 개념을 상정한다면 그 중심에 성찰이 있다. 성찰이 없다면 진화도 발전도 없다.

현대성의 핵심인 성찰성이 가장 흐물흐물한 영역이 정치 영역이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난무한다. '내 잘못'은 없고 '네 잘못'만 있고 서로 '네 때문'이라 우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신뢰도보다 훨씬 낮다. 이처럼 신뢰도가 낮은 이유가 바로 성찰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권력은 잘못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교정해야 한다. 아홉을 잘하고 하나를 못했더라도 아홉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하나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변명하고 호도한다. 책임을 상대방 정치세력 탓으로, 세상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올 한 해는 역병이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한계 상황에 내몰려 한 해 내내 힘들었다. 하지만 자연재해 상황보다 더 국민을 힘들게 한 것은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었다. 독선적이다 못해 광기의 양상으로 치달았던 법무장관과 그 동조세력의 형태가 상식을 무너뜨린 일을 지켜보며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이고 이 방법이 과연 올바른 민주주의적 방법인가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던 한 해였다.

곳곳에서 이게 과연 나라냐며 개탄스러운 소리가 들렸고, 거침없는 권력의 기세 앞에 어떤 설득도 저항도 무기력했다. 이 폭주하는 권력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아내 정경심씨를 법정 구속했고, 여권의 '윤석렬 찍어내기' 징계에 두 차례나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며 퇴짜를 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혼란을 준 것"을 사과하며 검찰에게도 "검찰권 행사에 성찰의 계기"를 주문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민주주의 제도는 매우 불안정하고 허약해 구성원과 기관들이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는다면 그냥 무너져 내린다"며 적반하장의 '네 탓' 성찰을 말했다. 도대체 누가 성찰해야 하는지를 국민은 더 잘알고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럿 있겠지만 전가에 능한자들의 인격은 대개 비루(鄙陋)하다. 정치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 탓하는 정치는 남 이상의 허물을 허리춤에 감추고 있기 십상이다. 남 탓만 해서는 길이 없다. 나를 돌아보는 자성(自省)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기만 하면 문제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책임전가 대신 자성을 선택한 성찰이 올바르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우리를 환상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는 것 이상은 없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런 '거울'이 아니겠는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글은 쓰며 어두운 시대를 산 시인 윤동주는 스스로 끊임없이 성찰하며 부끄러운 자신과 수없이 마주하는 고백의 시간들을 시어(詩語)로 적었다. 그의 사후 시대를 뒤덮은 어둠이 물러가고, 처연한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시는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그의 시가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읽히는 것은 늘 스스로 성찰한 결과를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쓴 그의 올곧은 성품이 시어로 빛나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산 시인 정지용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무수한 사건이 기억되는 경자년 끝자락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지금. 이 혼탁한 시절에 쉽게 팔아 없어졌던 양심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자. 그래서 내 삶,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가를 살피자. 데카르드는 말 했다. "나는 생각(省察)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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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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