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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보훈의 달 특화해설 프로그램 홍보물 포스터. (사진=전쟁기념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휴전 상태에 있다. 6·25전쟁은 끝난 전쟁이 아니라 정전된 전쟁이다. 그래서 6월은 단순한 기념의 달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전쟁기념관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호국정신을 상징하는 전쟁기념관이 6·25전쟁 교육 프로그램 홍보물에 중국의 역사 왜곡 용어인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등장시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전쟁기념사업회는 홍보물을 삭제하고 프로그램을 중단했으며, 국방부는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단순한 홍보물 제작 실수가 아니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의 국가관과 안보관이 얼마나 느슨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 다른 시각이 아니라 왜곡된 시각이다
전쟁기념사업회는 “6·25전쟁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역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실도 존재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해석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국제사회와 유엔이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다.
반면 ‘항미원조’는 중국이 중공군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 선전 용어다. 중국은 지금도 이를 통해 자신들의 참전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6·25전쟁’과 ‘항미원조’는 서로 다른 시각이 아니다.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지칭하는 명칭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국가가 사용하는 정치적 선전 구호다.
더구나 홍보 포스터는 한국 어린이는 ‘6·25전쟁’, 중국 어린이는 ‘항미원조’를 떠올리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역시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중국 어린이가 항미원조를 떠올린다면 이에 대응하는 우리 어린이의 표현은 ‘자유민주주의 수호’ 또는 ‘공산 침략 저지’가 되어야 형평성이 맞다.
그런데 한쪽은 전쟁 명칭이고 다른 한쪽은 정치적 구호다.
결국 포스터는 의도와 무관하게 중국 측 역사관을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고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국민들이 분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더 충격적인 것은 교사 연수 계획
포스터 논란보다 더 놀라운 사실도 드러났다.
전쟁기념사업회가 추진한 초·중·고 교사 대상 ‘해외 항일 유적지 탐방연수’에 중국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 방문 일정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과 항미원조기념관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항미원조기념관은 중국이 중공군 참전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그런 곳을 대한민국 교사들이 방문하도록 계획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중국의 전쟁 선전시설을 보여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이 연수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아찔한 일이다.
◇ 호국보훈의 달에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 훌륭한 교육 현장이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포항과 영덕에는 학도병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시설이 있다. 강원 태백에는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태백중학교의 숭고한 역사가 남아 있다.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 다부동전투 전적지, 낙동강 방어선 등 전국 곳곳에 자유를 지켜낸 전적지가 존재한다. 젊은 세대가 찾아야 할 곳은 바로 이런 현장들이다.
교사 연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안보교육이 된다.
국토대장정을 하더라도 전적지를 걸어야 하고, 현장학습을 하더라도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배우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호국보훈의 달의 정신이다.
◇ 전쟁기념관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포스터 논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안보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할 기관에서 어떻게 이런 기획이 만들어졌고, 또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통과됐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
더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전쟁기념관은 올해로 개관 32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전쟁기념관’이라는 명칭은 여전히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모호한 인상을 준다. 우리는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희생을 추모하고,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며,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는 나라다.
전쟁박물관이든, 호국기념관이든, 전쟁추모관이든 국민적 논의를 통해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역할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총알 때문만이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흔들릴 때 국가의 뿌리도 함께 흔들린다.
호국보훈의 달에 벌어진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누구의 시각으로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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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훈 주필 |
일요주간 / 이재훈 주필 kor67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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