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의 '거안사위'

칼럼 / 김경훈 편집인 / 2026-02-26 1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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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달러 이익이 한순간에 100억달러 손실될 수"
성장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과 자산 보유층에 집중
AI, 수출 7000억달러, 코스피지수 5000시대 견인
빛과 그림자 상존, 화려함 뒤 경계심 높여야할 때
▲ 김경훈 편집인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월 21일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 참석해서 이런 말을 했다. “시장의 새로운 예상치로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1000억달러(약 144조8500억원)를 넘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00억달러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최 회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칩 가격과 마진율의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얘기한 것이지만, 평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고사성어 거안사위(居安思危)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 SK하이닉스-삼성전자, AI 최대수혜

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을 삼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매출 97조원과 영업이익 47조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수출이 사상 처음 7000억달러 고지를 밟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코스피지수 5000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이런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오늘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그 이면의 깊은 불균형 사이에서 극명한 대조(contrast)를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방산, 휴대폰 등 첨단 제조업의 초호황은 세계 일류 국가로서 글로벌 경쟁력의 정점을 상징한다. 반도체 수출 호조는 전체 성장률을 떠받치며 경제적 위상 강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자동차·조선·방산 등 전통 제조업 분야도 각자의 경쟁력을 통해 수출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 K자형 양극화 경제 뚜렷하게 심화

이와 반면, 이 같은 ‘빛’이 전부는 아니다. 실물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건설 업종 등에서는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의 혜택이 극히 일부 대기업과 자산 보유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그 사이, 중소기업은 매출 감소, 휴업·폐업의 연속을 겪으며 체감 경기는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가계부채 부담과 원화 약세 등 거시적 여건이 겹치며 경기부양을 위한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은 제한된 효과만을 발휘하고 있다.

전국 35개 국가산업단지에서 지난해 휴·폐업한 기업이 1090곳으로 전년의 두 배(48.9%)에 달했다. 국가산단에 우량 중소제조업체가 몰려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조업 전반으로 양극화가 확산 중이라는 불길한 신호다. 수출이 8개월 연속 해당 월 최대임에도 지난해 산업생산 증가율(0.5%)도 2023년(1.0%) 2024년(1.5%)의 절반 이하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이 0.1% 뒷걸음질 친 탓이다.
 

▲ 최태원 SK회장. (사진=SK그룹)

◇ 중소기업이 싫어하는 정책적 규제 걷어내야

바닥경기를 살리는 데는 특효약이 없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금전적 지원도 일회성에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싫어하는 정책적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이 대표적이다. 지지부진한 상속세 개편에 좌절해 폐업을 선택하는 기업이 계속 늘고 있는 대목도 유념해야 한다. 하루하루가 버거운 중소기업이 직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자세는 한마디로 거안사위(居安思危), 안불망위(安不忘危)다. 즉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에도 위태로운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과 자산시장 활황이란 외형적 성과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 아래에서 멀어져 가는 실물경제의 기초 체력을 놓치기 쉽다. 안정의 그림자 속에서 잠재된 위험을 바라보는 것은, 단지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을 ‘경제 대도약 원년’으로 삼아 반도체, 방산, 바이오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라는 숫자만으로 우리 경제의 질적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다. 경제 정책의 핵심은 양극화 완화와 구조적 포용력 강화이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들이 중요하게 작용해야 한다.

◇ 이재명 정부가 새길 세 가지 경제정책

첫째, 성장의 양극화 구조를 해소하는 실질적 대응이다. 반도체·자동차 등 대형 산업의 활황이 중소기업 전체의 체감 경기를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금융·세제·공급망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성공을 함께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내수 기반 강화와 균형 있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성과가 자산시장과 일부 제조업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수·서비스업·지역 산업은 지속적 침체에 노출되고 있다. 구조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 균형발전과 일자리 중심의 정책은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경계하며 대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국내 경제가 평온해 보일지라도 세계 경제는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기술패권 경쟁, 보호무역주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항상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평온 속에서 위기를 대비하는 태도는 이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근본적 지혜다.

우리 경제의 ‘빛’이 진정한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화려한 외형 뒤의 균형과 반성이 필수다. 지금의 경제 체감 격차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도전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 위기를 기회 삼아,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경제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는 거안사위, 안불망위의 지혜가 이 순간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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