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눈] 선거는 민주주의 ‘꽃’인가?

칼럼 / 김경훈 편집인 / 2026-06-24 12: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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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참정권 시위 정국 일파만파
선관위 개혁, 부정선거 음모론 진상규명이 최우선 과제
▲ 김경훈 편집인

투표장에 갈 때마다 마주하는 문구가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의 주권이 투표를 통해 구현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그러나 6·3 지방선거 이후 우리 사회는 그 꽃을 제대로 피워냈는지 묻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개표 과정의 혼선, 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선거 결과 자체를 넘어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흔들고 있다. 거리에서는 참정권 시위가 이어지고, 국회는 국정조사에 착수했다. 선거를 둘러싼 갈등은 끝나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신뢰는 시험대에 올랐다.

문제의 본질은 특정 정당의 유불리가 아니다. 국민이 선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있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적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선거를 관할하는 경기도 과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감사원 감찰을 받지 않는 헌법기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이 출동했던 곳이다. 당시 전산실 중앙컴퓨터를 촬영하는 모습이 공개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6·3 지방선거 이후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리에서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 등 구호가 빗발치고 있다. 곳곳에서 부정선거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현욱 진상규명위원장이 6월 19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수뇌부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선관위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유다. 선관위가 감사원 직무 감찰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선관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외부 견제 없이 운영됐고, 수차례 문제가 드러나도 감사원 감찰 등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조직과 시스템이 망가질 지경에 이르렀다. 선관위는 1~2년마다 치러지는 선거가 사실상 업무의 전부다.

그런 선관위가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를 적게 준비해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했다. 경기·전북 교육감 선거에선 개표 사무원이 결과를 잘못 입력하는 개표 오류도 있었다. 충북 청주에서는 선거 당일 1000여 명의 선거인 명부가 누락됐다.

논란의 중심에 선 ‘민주주의 꽃’…이재명 대통령 “원포인트 개헌 필요”

선관위의 이 같은 부실 선거 관리는 조직의 총체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태악 전 위원장은 재임 중 세 차례 해외 출장을 배우자와 함께 갔고, 그 비용은 선관위에서 댔다. 선관위는 외부에 공개되는 사후 보고서에서 이런 사실을 숨겼다. 자신들 스스로 떳떳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 김민석 국무총리가 21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선관위 개혁 관련 시민 토론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newsis)


부실 선거 관리로 국민적 지탄을 받을 때도 성과급은 100% 가까이 집행했다고 한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수십 명 포상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적발된 채용 비리는 1000여 건이 넘는다. 선관위 전·현직 직원 자식까지 부정하게 채용됐다.

선관위가 구체적으로 왜 부패하게 됐고, 그로 인해 어떻게 부실 선거를 치렀는지는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수사는 단순 책임자 처벌을 넘어 선관위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앞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실마리를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선관위의 근본적 개혁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선관위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선언적 개헌부터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합수본 수사는 선관위가 무엇이 잘못됐고 그 잘못을 고치려면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하는지 해답을 찾는 과정이 돼야 한다.

국회의 진상규명도 본격 시작됐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는 6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45일간 진행된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조사는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한 대처를 철저히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투명한 선거관리 방안을 마련해 국민의 참정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부정선거 논란,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수준

이번 사태는 단순히 선거관리의 미숙함에 대한 비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신뢰로 유지되는 제도다. 신뢰가 무너지면 승자도 패자도 모두 상처를 입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재선거는 단순히 한 번 더 투표하는 절차가 아니다. 수천억 원의 예산과 막대한 행정력, 그리고 사회적 갈등 비용을 수반한다. 막대한 재선거의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후보자와 정당, 유권자 모두 다시 선거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비용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고사성어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있다. 작은 실수를 초기에 바로잡지 못하면 훨씬 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만약 선거관리 과정에서 명백한 과실이 있었다면 책임 규명은 철저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 규명 없는 재선거 주장도, 사실 확인 없는 음모론도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책임정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권한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선거관리기관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만일 그 의무를 소홀히 했다면 명확한 책임을 져야 한다. 반대로 정치권 역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해 사회적 혼란을 키웠다면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 없는 권력은 독선으로 흐르고, 책임 없는 비판은 선동으로 변질된다.

오늘날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선거의 승패가 아니라 진실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부정선거 논란은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조사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상당수가 선거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우리 모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신뢰를 먹고 자란다. 신뢰를 잃은 선거제도는 법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불안정은 국가의 미래를 훼손한다.

30여 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이류였던 기업은 세계 일류가 됐는데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삼류, 사류에 머물러 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지만, 변해야 할 것이 별반 변하지 않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하일까?

국가백년대계 차원서 선거제도 해결책 찾아 국민 앞에 공개해야

돌파구를 찾아야 산다. 해결책은 ‘덮지’ 않고 ‘몰아가지’ 말고, ‘당당하게’ 찾는 것이다. 의심이 커지면 없는 귀신도 보인다. 의심암귀(疑心暗鬼)이다. 그러나 모든 의심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현명하지 못하다. 의혹은 투명한 검증으로 해소해야 하고, 검증 결과는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전자개표의 신뢰성 강화는 물론 수개표 보완 확대, 투표용지 관리체계 개선, 선거정보 공개 확대 등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대결이 아니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자세가 필요하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힘을 모아 강을 건너야 한다. 선거의 신뢰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여야와 정부, 선거관리기관, 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총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선거를 믿지 못할 때도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이번 참정권 시위는 단순한 선거 후유증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국민의 의심을 진실로 해소할 것인가, 아니면 갈등의 불씨로 남겨둘 것인가.

국정조사의 목적도, 정치의 역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진실은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은 분명히 묻고, 제도는 더욱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 선거 관련 의혹은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는 발본색원(拔本塞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재선거보다 값싸고, 갈등보다 생산적이며,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정치권이 아니라 진실 앞에 겸허한 사회 전체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한다.=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kkh4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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