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박갑순
손끝으로 표정을 그린다
사전 속에 잠자는
한 획 한 획을 불러내
오감을 입힌다
나를 다독이며
너와 어우러지기 위해
때로는 움츠리고 때로는 활개를 힘껏 펴고
뒤로 한 발 물러서다가 앞으로 나아가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표정
풍경 없는 창가에 서면
푸른 하늘이 되고
시들어가는 꽃잎에 다가가면
한 모금 물이 된다
그리움은 더 그립게
사랑은 더욱 사랑스럽게
손끝으로 그려
허전한 마음 채우는
아름다운 표정들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시인은 종이 위에 글씨 대신 “아름다운 표정”을 그립니다. 획 하나하나를 그리기 시작하면 종이는 무대가 되지요. 그래서 “때로는 움츠리고 때로는 활개를 힘껏 펴고”, “한 발 물러서다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글씨를 쓰는 손의 움직임이 어느새 한 사람의 몸짓처럼 살아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쓰인 글자는 “풍경 없는 창가”의 “푸른 하늘이 되고”, “시들어가는 꽃잎”에는 “한 모금 물”이 됩니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표정이 풍경을 불러내고 정서를 담는 셈이지요. 하지만 그리움과 사랑을 ‘더 그립게’, ‘더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것은 어쩌면 결핍을 채우는 행위가 아닐까요. 글을 쓸수록 그리움과 사랑은 옅어지지 않고 짙어지니, 비우는 춤이라기보다 채우는 춤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가끔 말과 글로 마음을 전하는 데 서툴러 그 마음을 흘려보내곤 하지요. 이럴 때 캘리그래피는 전하지 못한 마음의 표정인지도 모르겠어요. 손끝이 그리는 무보(舞譜)처럼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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