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2026 헬싱키 그랑프리 성재승 발레리노, 춤으로 세계를 열다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6-09-21 12: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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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성재승
▲ 성재승 발레리노

 

 

성재승 | 발레리노.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바르(Al Khobar) 출생.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발레전공에 재학 중이다. 2025 YAGP 탬파 파이널(Tampa Finals) 시니어 파드되 1위와 남자 솔로 2위를 차지했으며, 2026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HIBC)에서 제인 에르코 그랑프리(Jane Erkko Grand Prix)를 수상했다. 주요 출연작으로 《Theme and Variations》, 《인어공주》(안무 김선희), 《호두까기 인형》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 시간은 핀란드 ‘헬싱키’의 무대 위, 성별의 경계를 지운 채 오직 몸짓의 언어와 예술성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발레리노 성재승님과 함께했습니다.

Q1. 6월 핀란드 헬싱키 오페라 극장에서 개최된 ‘2026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2026 Helsinki International Ballet Competition, HIBC)’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먼저 이 상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최고상인 ‘제인 에르코 그랑프리(Jane Erkko Grand Prix)’는 대회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명에게만 수여되는 통합 대상입니다. 예술적 기준이 매우 엄격해 심사위원단을 만족시키는 무용수가 없으면 수상자를 내지 않고 공석으로 남겨두는 절대평가 방식을 고수합니다. 상금 규모는 2만 유로(약 3,500만 원)에 이르며, 성별 구분이 폐지된 2026년 제10회 대회부터는 남녀 통합 경쟁 속에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역대 그랑프리 수상자는 지금까지 총 4명이 있습니다.


Q2.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기까지 과정을 들려주세요.

▶ YAGP 이후 졸업하기 전, 해외 무용단 진출을 위해 해외의 국제무용콩쿠르에 다시 출전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 2월경부터 경연을 위한 작품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연에서 선보여야 하는 작품은 총 5가지로,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이었습니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콩쿠르 출전작과 학교의 다른 공연을 위한 작품까지 동시에 소화해야 해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교수님들과 선생님 그리고 함께 작품을 준비한 친구들, 경연 의상을 제작해 주신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 곁에서 도움을 주신 부모님 덕분에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 성재승,「돈키호테」 중 남자 솔로 —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2026년 6월

 


Q3. 2025년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 대회에서 시니어 파드되 부문 1위(소하은과 동반 수상)와 시니어 남자 솔로 부문 2위를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첫 국제 무대였을 텐데, 그 순간의 느낌은 어땠나요?

▶ 미국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는 저에게 매우 중요한 경연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군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파드되 부문 1위 또는 남자 솔로 부문 1위 이상을 수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YAGP에서 그 조건을 충족한 덕분에 ‘발레 무용수’라는 꿈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려서부터 해외의 도전적인 무용단에 입단해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비록 YAGP 이후 발레단이 아닌 발레학교에서 입학 제의가 들어왔지만, 해외로 진출하고자 했던 저의 꿈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Q4. YAGP 이후 다시 선 국제무대가 헬싱키였습니다. 이번엔 무엇이 달랐을까요? 한국 무대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온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 YAGP 이후 다시 선 국제대회인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는 제가 서 본 국제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였습니다. 수많은 무용단으로부터 입단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콩쿠르이자, 높은 상금으로도 잘 알려진 대회입니다. 이런 이유로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에 참가한 학생과 프로 무용수들의 실력은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한국의 콩쿠르와 비교했을 때 순수한 실력의 차이도 컸고, 준비해야 하는 작품 개수에도 차이가 났으며, 클래식 발레 작품뿐 아니라 컨템포러리 작품들의 수준도 높았습니다. 현시대에는 클래식 발레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소화할 수 있는 춤의 폭 역시 넓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무대였습니다.


Q5. 무용수로서 슬럼프나 흔들림의 시기가 있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 무용수로서 슬럼프는 굉장히 자주 찾아옵니다.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연습하고,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교육을 받아오다 보니 완성도에 대한 집착도 많이 생깁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반복해도 완벽함에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제 모습을 볼 때면 크고 작은 흔들림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나 발레를 계속해 오면서 느낀 것은,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나 슬럼프에 빠져 의욕을 전부 잃을 때도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다 보면 마음도 변하고 저의 실력 또한 한층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Q6. 올해 헬싱키 콩쿠르는 최초로 남녀 구분을 없앤 ‘젠더리스(Genderless)’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랑프리의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 그랑프리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습니다.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는데,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그동안 준비 과정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상에 대한 기쁨은 물론, 현실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가 처음으로 성별 구분 없이 치러졌다는 점도 저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무대 위에서 저는 처음으로 ‘남자 무용수’가 아니라, 온전히 ‘춤’ 그 자체로 설 수 있었습니다.

 

▲ 「Hold on Tight」 —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2026년 6월



Q7. 휴스턴발레단(Houston Ballet), 핀란드국립발레단(Finnish National Ballet), 보스턴발레 II(Boston Ballet II)로부터 동시에 입단 제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중 한 곳을 결정한다면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 휴스턴발레단, 핀란드 국립 발레단, 보스턴발레 등 모두 매우 훌륭한 무용단입니다. 아직 한 곳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선택할 기준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저는 춤을 가장 많이 출 수 있는 무용단에 가고 싶습니다. 무용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입단과 동시에 비중 있는 역할을 배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무용단에 입단한 뒤에도 때로는 몇 년에 걸쳐 실력과 무대 위의 안정성을 쌓고, 각 무용단의 스타일에 맞추어 춤을 가꾸어 나가야 비로소 인정받으며 더 높은 직급으로 승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또는 가장 원하는 무용단, 그리고 저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무용단에 들어가 춤을 추고 싶습니다.


Q8. 세 무용단 중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결정은 대략 언제쯤 내리실 계획인가요? 학교 졸업 시점과도 맞물려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의 일정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 결정은 9월 안에 내릴 생각입니다. 세 무용단 모두 소중한 제안인 만큼 신중하게 고민하되, 너무 오래 미루지는 않으려 합니다. 졸업과 남은 봉사 시간을 모두 마무리한 뒤, 곧바로 해외 무대로 나갈 수 있도록 일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 시기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지금이, 저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인 것 같습니다.


Q9. ‘발레리노’이기 이전에, 무대 위 성재승이 자신의 춤으로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예술적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 저는 저의 춤이 사람들에게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발레 공연에는 몸의 움직임 외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발레, 음악, 미술 등 저는 저의 춤을 통해 이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베르테르」 리허설 — 국립오페라단, 2026년 4월


Q10. 7월 화성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인어공주’에서 전민철 님과 함께 왕자 역을 맡아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공연을 보신 관객분들께서 특히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이어 예정된 무대가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 인어공주는 연극적인 서사가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 춤을 보고 그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잘 느끼고, 이야기를 확실하게 전달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장면은 마지막 파드되 장면입니다. 인어공주와 왕자 모두 감정이 가장 고조된 순간이자,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의 연기에 대해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한 만큼, 관객들도 함께 공감해 주셨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26년 하반기 「고궁 음악회」 ‘발레×수제천’​이 경복궁 집옥재 앞마당에서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한국의 전통 음악과 발레가 독특하면서도 흥미롭게 잘 어우러지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관객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웃음)


Q11. 초등학교 때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발레화를 신었던 그날의 성재승과 지금의 성재승은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 발레 슈즈를 처음 신게 된 것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권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해보고 그만둘 생각으로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남학생이 저 한 명뿐인 학원에서 고된 스트레칭과 신체적인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동작을 하나씩 배워가며, 역시나 발레를 시작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발레의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여자가 하는 무용,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무용이라고만 생각하며 발레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발레하는 일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춤을 추며 즐거움을 느끼고, 발레가 지닌 예술적인 가치를 존중합니다.


Q12. 예술적 지향점을 넘어, 앞으로 어떤 무용수로 성장해 나가고 싶으신가요?

▶ 저는 압도적인 기량의 테크닉을 연마해, 클래식의 정제된 아름다움과 컨템포러리의 자유로운 표현을 오가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대 위의 완성도를 넘어, 춤을 통해 전해지는 예술의 아름다움이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기쁨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순간을 위해, 발레를 접해본 적 없는 분들에게도 제 춤이 가닿을 수 있도록 무대 밖에서도 발레의 매력을 전하는 방법들을 고민해 나가고 싶습니다.


Q13. 세계의 정상에 선 발레리노 성재승. 그의 다음 도약이 어느 무대로 향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무대 뒤에서 이 인터뷰를 읽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리며, 오늘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이만 마칩니다.

▶ 후배들에게 무용을 일 또는 직업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용이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배우고 구사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해내야만 하는 일로 바뀌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첫 마음을 잊지 않는 것, 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작가 초대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과 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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