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우리 사회는 지금 바르게 가고 있는가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4-05-31 14: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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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자유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우리 시대에 태평성대는 언제이고 지금 시대에 '우리 사회는 바르게 가고 있는가?' 이 내용은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에 못으로 박혀 틈만 나면 떠오르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종심(從心)에 다가선 내 삶을 유추하며 '내 인생은 바르게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추상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면 '바른 인생'이라는 추상성과 '바른 사회'라는 추상성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인생에 대한 물음이 철학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사회에 대한 물음에는 현실성이 가미되어 있음이 그 차이다. 그리고 인생을 묻고자 함은 내 개체적 삶의 의미규명인 데 반해, 사회를 묻고자 함에는 시대적 흐름과 관계되는 집단적 생활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들어 있다.

한순간도 멈춤 없이 도도히 흐르는 시대에 한가운데 서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사회란 어떤 것인가'라는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왜 그런 물음이 제기되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물음의 원인이 규명됨으로써 시대적 흐름에 따른 사회가 가지는 바름의 추상성이 더 구체성을 갖추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그 물음에 접근할 수 있는 의미의 범위와 통로가 그만큼 확실해지고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식사를 함께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요즘 "나는 바른 게 싫다" 말했다. 바르다는 단어가 사회 적응을 잘못하는 사람에게 주로 따라다니는 수식어라고 말하며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바르게 사는 사람으로 남의 눈에는 무능하게 보인다고 했다. '올바름'과 '능력' 있는 것은 분명 카테고리가 다른데도 '바르게=무능'이라는 범주의 오류를 확고히 믿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사실이다. 지금 시대는 남들에게 쓴소리하는 것, 남들이 기피 하는 일, 돋보이지 않는 일을 묵묵하게 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보같이 사는 것으로 변해버린 게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선거판을 뒤흔들었던 욕설과 막말, 변칙, 범법이 능력이며 세상을 잘사는 사람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최근 신문에 나는 기사들만 보고 있노라면, 나라의 기본 질서가 끊임없이 큰 태풍이 일고, 나쁜 일까지도 포함해 무엇인가 큰일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공인이자 사회 지도자들을 뽑는 기준이 상식에 반하게 달라졌다. 뿐만 아니다 그렇게 뽑힌 지도자들이 유권자에게 심판받았다며 보란 듯 전면에서 설친다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그들이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에 대해 계속 교묘한 이설로 자기변명을 해된다는 것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지금 시대는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잘 못사는 것이며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지만 정작 자신은 말고 다 무생물 취급하는 인간들로 이 사회는 득실거린다. 입으로는 도덕과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들과 시민의 도덕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가. 자기반성이 없는 일부 지도자를 보니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본 것 같아 황망하다.

조선 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의(義)와 절(絶)을 삶의 화두로 삼고 제자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며 평생을 지냈다. 임금이 수차례 불러도 벼슬을 사양하였던 그가 조정 벼슬아치들의 삶을 두고 "요즘 배웠다는 사람들은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것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말하며 이름을 도둑질하고 남을 속인다." 일갈했다. 왜 청소할 때 비질을 하기 전 물을 먼저 뿌리는가. 먼지를 최소화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착한 마음'이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을 배우기에 앞서 아이들이 배우는 소학(小學)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금의 현실은 작은 배움도 모르면서 큰 배움을 안다고 소리치는 이들이 도처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올바른 가치와 정의가 조롱받는 시대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우울하고도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감을 자아낸다. 정치인들의 즉흥적 인기 전술에 휘둘리는 결과가 가져올 사회규범의 파탄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고는 어느 수준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중요시해야 하는 게 시스템에 의한 운영 방식이다. 정치인 스타 플레이어 한 사람에 의존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른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곳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제 몫을 다 못하고 돋보이지 않더라도 팀원들이 제자리에서 팀워크를 단단히 짤 때 슈퍼 A급 팀이 될 수 있다. 약삭빠른 행동과 변칙적인 방법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이들은 잠깐 반짝할 수는 있을 뿐 결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근대 사회는 많은 구성체가 모여 사는 공동집합체로 신령스러운 기물(神器) 이다. 직접적이고 기능적인 것으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기능적으로 다루다간 오히려 뜻한 바와 반대로 향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한 동기가 악한 결과를 초래하고 잘못된 정책의 접근이 오히려 좋은 결과가 이뤄지기도 한다. 서민을 위하는 정책을 펴다가 서민이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한 복잡 예민한 문제를 정치력 한 가지만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인들의 사고는 과연 그들에게 이 나라를 맡겨야 하는가 라는 회의감이 가득하다.

거짓과 위선이 시대를 견인하는 사회를 보며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가 무척이나 불안하다. 윗물이 그러할진대 아랫물이 맑을 수 있을까. '바르게 사는 게 조롱당하지 않을까'.양심과 도덕성이 붕괴되는 시대를 살며 모든 사항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정작 나뿐인가? 내가, 우리 사회가 기대하며 꿈꿔왔던 '바른 것'이 정의로, 보편성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과연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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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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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이순희님 2024-06-01 10:59:10
공감합니다. 저부터 바른 양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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