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해임 무효 사필귀정…유인촌 장관 사퇴해야”

문화 / 김진호 / 2010-04-20 09: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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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해임 무효, 왜?

서울고법, 문화부가 해임처분 사유로 삼은 근거 모두 배척
민주당 “잇따른 해임무효 판결은 MB정권의 권력남용 결말”

▲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윤수
[일요주간= 김진호 기자] 세계적으로 희귀 미술품을 구매하는 과정을 문제 삼아 계약직공무원으로서의 복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김윤수(74)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해임한 국가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와 관련,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지난 14일 서울고법의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해임 무효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이라며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은 즉각 자진사퇴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우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무리한 해임처분의 결과가 또 나타난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정연주 KBS 전 사장의 해임무효판결,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해임처분취소 등과 함께 김 전 관장에 대한 판결은 이 정권의 잘못된 권력남용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유인촌 장관
또 “이렇게 법원이 연이어 정치적으로 했던 여러 인사에 대해 법원이 바로잡고 있지만, 이 정권의 누구도 국민께 사과도 하지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 대변인은 그러면서 “유인촌 장관이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에 의해 임명된 이후 진행했던 거의 모든 인사가 다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문제에 대해 유인촌 장관은 즉각 자진사퇴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채용계약을 맺었는데, 임기만료(2009년 9월)를 1년여 앞둔 2008년 11월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당시 문화부는 김 전 관장이 마르셀 뒤샹의 작품인 <여행용 가방>을 사들이면서 계약 체결 전 구매결정 사실을 중개사에 알리고, 관세청에 신고하지 않는 등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문화부가 해임처분의 근거로 삼았던 계약해지의 중요 부분은 모두 항소심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채용계약 해지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가 지난해 7월 1심(서울행정법원)에서 패소한 김 전 관장은 항소심 진행 중에 관장으로서 채용계약기간이 끝나자 ‘미지급 급여’를 구하는 것으로 청구 취지를 변경했는데, 서울고법 제9행정부(재판장 박병대 부장판사)가 김 전 관장의 손을 들어준 것.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계약해지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채용계약 해지는 효력이 없어 무효”라며 “따라서 계약해지 이후 계약기간 만료 시까지의 급여 합계 8193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 작품수집지침 제4호 및 제8호 위반 여부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이 2005년 5월30일 미술품 중개상 R사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 이 사건 미술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국가는 계약체결 전에 구입 결정사실을 알린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은 공문에서 미술품에 대한 진위 확인과 가격협상이 선행돼야 함을 조건으로 제시한 점, 공문의 내용에 비추어 국립현대미술관이 향후 가격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거나 어떠한 법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닌 점에 주목했다.


이미 R사는 2차례에 걸쳐 김 전 관장에게 5월31일까지 미술품 구입 여부를 알려달라는 통지를 했는데,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위 작품을 구매할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만일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면 R사는 다른 미술관 등에 작품을 매도할 가능성이 있어 공문을 발송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이에 재판부는 “이런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김 전 관장이 공문을 보낸 행위가 ‘작품 수집의 가부를 미리 약속한 것’이라거나 ‘최종 수집결정 이전에 심의결과 및 내용을 외부에 유출시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구입가격 여부

국가는 또 “김 전 관장이 미술품 가격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거쳐 작품수집심의위원회에 제안가격을 상정하고 구입가격을 결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미술품의 최종 구입가격이 객관적으로 적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으나, 이 사건 미술품 수집여부에 대한 심의 및 구입가격의 결정과정에서 김 전 관장이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규정을 위반하는 등 뚜렷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 이유는 먼저 <여행용 가방> 미술품은 전 세계적으로 수량이 한정돼 있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보존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는 예술품의 가격을 객관적이고 일률적으로 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외국에서 뒤샹의 <여행용 가방> 시리즈의 작품이 미술품 경매를 통해 일부 거래된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이 사건 미술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 거래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고, 뒤샹의 작품은 국내에는 단 한 점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없었고, 게다가 이 사건 미술품은 오로지 단 한 점뿐이므로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문가의 시가 감정조차 쉽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이 이 사건 미술품에 대한 감정가격, 유사한 거래실례 가격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계약상대방인 R사로부터 직접 제안 받은 견적가격을 기준으로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게다가 구입 작품의 적정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체심의위원회의 업무로서 오로지 김 전 관장에게만 가격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판시했다.


아울러 “김 전 관장이 미술품 거래과정에서 뒤샹 작품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나OO 박사로부터 진품을 확인한 점, 비록 우편을 통해 거래되기는 했으나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품을 매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동안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한 미술품 매입이 부적절하다고 지적된 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에도 계약서 양식에 대한 재량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단지 김 전 관장이 미술품 계약에 있어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관세법 위반 여부


재판부는 <여행용 가방> 미술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김 전 관장의 요청으로 최종적인 구입계약체결 이전에 국내로 반입돼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됐는데, 그 통관 과정에서 세관장에게 신고가 되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 미술품은 세율이 0%인 무관세 품목으로서 굳이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해 세관장에게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위임 전결 규정상 작품의 운송 및 통관은 학예실장의 전결사항인 점, 비록 위 미술품의 통관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확인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다소 부적절한 업무처리가 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미술관장인 원고에게 곧바로 관세법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관세법위반죄의 죄책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 신뢰관계의 파괴 여부


국가는 위와 같은 여러 사유를 들어 김 전 관장이 국가공무원법 제56조가 정한 법령의 준수 및 성실의무를 위반했고, 또 계약직공무원규정 제7조 제4호가 정한 복무상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이로써 채용계약의 기초가 된 신뢰관계가 파괴된 만큼 해임처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서 <여행용 가방>을 구입함에 있어 통관절차에 다소 부적절한 업무처리가 된 것을 미리 막지 못한 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달리 비난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공무원법이나 계약직공무원규정이 정한 복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며 “따라서 원고가 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채용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됐음을 전제로 한 피고의 채용계약 해지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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