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한 말을 할수록 인격을 우러러보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을 할수록 됨됨이가 의심스러워지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말은 내 존재의 밑천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기 때문에 한마디 말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여 신중하게 건네야 한다. 그런 점에서, 24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말이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자와 말에 담기는 내용, 그리고 말이 향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돼 있다. 듣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하면서 과연 ‘듣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너도 나도 말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수사학’의 시대이건만, 시중에 난무하는 온갖 대화법은 상대의 아픔을 보기보다는 내 아픔을 봐달라고 하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기려 하고, 공감하기보다는 공략하려 하고, 상대방에게 한발 다가가기보다는 내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에만 충실하다. 그래서 말에 관한 테크닉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이해보다는 오해가, 설득보다는 윽박지름이 더 흔한 ‘불통’의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화
이 책은 저자가 방송인이자 서울대 말하기 수업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현장과 이론에서 배운 ‘말의 기본’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년 넘게 말에 관한 일에 종사하며 체득한 노하우와, 강단에서 말하기의 이론과 실전을 가르치는 교육가로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말할 때 새기고 삼가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대통령 연설, 유명인사와의 인터뷰, 아들과의 대화를 비롯한 일상의 대화와 문학작품의 사례를 끊임없이 소개하며 잘못된 말과 잘된 말을 차분히, 그러나 직설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이 책만의 매력,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을 따라가노라면 어느덧 나의 말은 어떠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해당 주제에 대해 말할 만큼 많이 알고 있는가? 혹여 조금 많이 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귀를 닫고 오직 내 주장만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불필요한 선입견으로 대화를 망치지는 않는가? 상대방을 위하는 순수한 호의와 열정을 갖고 얘기하는가? 상대방의 처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못한 채 섣불리 연민하거나 충고하려 들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상대방의 아픔을 보지 못한 채 말뿐인 소통을 하지는 않았는가?
조언
상대의 어려움에 격려적으로 듣고 대응하는 데는 여섯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조언, 판정, 분석, 질문, 위로, 그리고 잠자코 있기다. 조언 혹은 충고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며, 판정은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평가해주는 것이다. 분석은 메시지를 해석해주는 것인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질문은 묻고 상대가 답하게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위로는 편들어주거나 인정해주고 칭찬과 격려를 하며 기분전환을 제안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잠자코 있기는 간단한 격려의 말과 함께 그저 묵묵히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잠자코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당신은 어려움에 빠진 친구와 동료에서 어떤 격려자인가. 조언은 상대가 요청할 때, 그리고 당신이 상대의 처지와 문제를 진심으로 염려할 때만 환영받는다. 즉 조언은 자신이 진심으로 염려하는 상대가 요구할 때만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진심으로 염려하지 않는데 그가 요구할 때나, 진심으로 염려하는 상대가 요구하지 않을 때 둘 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가 원해도 자신이 상대를 소중히 생각지 않으면 좋은 조언이 되기 어려우며, 상대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조언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될 때가 많다. 구하지 않은 것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소통
소통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삶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만큼이나 다양하게 쓰인다. 이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소통의 본질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타인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 인간은 그 타인들을 이해하고 타인들로부터 이해받기 위해 매 순간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통의 본질은 앞서 어리석게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 ‘관계맺음’이라는 것이다.
소통은 우리의 많은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만족스럽게 소통하는 관계가 없을 때 생명유지 자체가 힘들다는 여러 연구결과에서 보듯이 소통은 육체적 건강을 이끈다.
소통은 우리를 생존하게 해줄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만나 그가 나를 정의하고 내게 반응하는 과정에서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어릴 때 타인과 관계 맺으며 형성된 자기개념이 정체성 형성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타인의 영향은 생애 내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외에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의사소통을 해야 일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실질적 이유에서도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삶에서 이 많은 기본적 욕구나 필요들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또 있을까. 어쩌면 소통이란 인간 존재의 원초적이며 동시에 궁극적인 목표점일 것이다.
사람의 핵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처음 접하는 것은 정신의 표피, 막 부분이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건 그의 밖부터 안까지의 전부이지만, ‘무엇이 그인가’로 질문을 바꾸면 답은 그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핵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건 바꿔 말해 ‘그의 핵을 보았어’가 아닐까. 평상시 외피와 과육으로만 설렁설렁 살던 삶을 뚫고, 아프지만 부러뜨려 보는 것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나 자신이 정화되는 것과 비슷하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죽음처럼 어쩔 도리 없는 타인의 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의 핵 속으로, 내면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말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자신과 말의 품격을 함께 높이고, 소통의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드는 지혜에 대해 말한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나아가 상대방의 아픔을 보듬어 진정한 소통의 즐거움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말의 무게’란 것에 대해 새삼스레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단정한 문장 속에 담긴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함께 소통의 실제적인 노하우도 함께 새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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