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전강의 폭은 넓지 않다. 하지만 연구자가 이 강을 건너는 순간 넘어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다.
홍콩에서 만들어진 연구데이터를 선전의 연구기관과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가. 연구용 샘플과 장비는 국경을 넘을 수 있는가. 홍콩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을 선전 기업이 이어받아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가. 공동연구에서 나온 지식재산권은 어떻게 관리하고 연구비는 어느 제도를 통해 이동시킬 것인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홍콩과 선전이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허타오 심항과기혁신협력구(河套深港科技创新合作区)다. 허타오는 하나의 연구단지가 아니다. 선전강 북쪽의 선전원구와 남쪽의 홍콩원구가 하나의 협력구역을 구성한다. 중국 본토와 홍콩이라는 서로 다른 사회·경제·법제 환경에 속한 두 공간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중국과 홍콩 정부는 이를 ‘일하양안·일구양원(一河两岸·一区两园)’, 즉 ‘하나의 강, 두 강변·하나의 구역, 두 개의 원구’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름이 하나라고 연구생태계까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타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연구단지를 만드는 것과 연구를 연결하는 것은 다르다
홍콩원구는 2025년 12월 공식 문을 열었다. 2026년 들어 기술기업과 연구기관의 입주가 본격화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빠른 성장이다. 그러나 허타오의 성과를 입주기업이나 건물의 숫자로만 평가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곳의 목표는 산업단지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가 제시한 허타오의 역할에는 산학연 협력, 연구개발 성과의 전환과 중간시험, 글로벌 혁신자원의 집적뿐 아니라 서로 다른 제도 사이에서 연구와 사업화를 연결하는 기능까지 포함돼 있다. 결국 질문은 건물 안에 누가 들어왔느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홍콩의 연구와 선전의 산업이 실제로 연결되고 있는가.
◆ ‘홍콩 연구+선전 산업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가
선전 허타오 당국이 공개한 기업 사례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초기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허타오에 들어온 일부 기업은 홍콩에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선전에서 시장개척과 제품화를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선전 측 공개자료에는 실제 중국 본토 주문과 매출로 이어진 사례도 소개돼 있다. 반도체 열전기술을 개발하는 기업 사례도 흥미롭다. 홍콩의 기술혁신 네트워크와 대학·연구기관의 연구역량을 활용하고, 선전에서 제품화와 시장확대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아직 몇 개 기업의 사례를 허타오 전체의 성공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경로는 보이기 시작한다. 홍콩의 연구·기술 → 선전의 기업 → 제품화 → 중국시장 → 생산 확대. 허타오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이 경로가 특정 기업의 예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져야 한다.
대학도 국경을 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홍콩과기대를 비롯한 홍콩의 대학들은 선전 곳곳에 연구와 기술사업화 거점을 확대해 왔다. 허타오 역시 그 연결망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대학의 지역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학이 위치한 도시와 대학의 연구가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반드시 같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홍콩의 연구자가 선전의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그 연구성과가 선전 기업과 만나 제품이 되고, 다시 시장에서 확인된 문제가 대학 연구실의 새로운 연구주제로 돌아온다면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단순한 산학협력 협약을 넘어선다. 지식이 지역 사이를 순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허타오 선전원구가 홍콩 대학의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등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연결된다. 연구기관을 유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구자가 실제로 경계를 넘어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에는 국경이 있다. 기업과 대학을 한곳에 모았다고 공동연구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움직여야 하고 연구비가 이동해야 한다. 연구장비와 샘플을 반출입해야 하고 데이터도 공유해야 한다. 특히 생명과학과 AI 분야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생물학적 샘플이나 연구데이터는 일반 상품처럼 국경을 넘길 수 없다. 개인정보와 데이터보안, 연구윤리, 검역과 통관 등 서로 다른 규칙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허타오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4대 흐름’이다. 사람, 물자, 자금, 데이터다. 홍콩과 선전 양측은 연구용 물자와 데이터, 인력과 자금이 보다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통로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의 속도와 사업화 가능성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리를 놓는다고 하나의 연구생태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타오의 독특한 점은 경계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본토와 홍콩의 제도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제도를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방식이다. 연구자 이동, 연구샘플의 통관, 데이터 이동, 국경간 연구비 사용과 같은 제도적 연결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홍콩원구와 선전원구를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물리적 인프라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다리를 놓는 것과 하나의 연구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다리는 사람이 한 번 건너게 할 수 있다. 연구생태계는 사람과 지식이 반복해서 오가게 해야 한다.
◆ 허타오의 성패는 ‘반복’에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허타오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몇 개 대학이 입주했는가. 몇 개 연구소를 만들었는가. 몇 건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는가. 이 숫자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홍콩 대학의 연구자가 실제 선전의 기업과 공동연구를 했는가. 연구결과가 특허와 기술이전으로 이어졌는가. 기업이 제품을 만들었는가. 고객이 구매했는가. 그리고 시장에서 발견된 문제가 다시 대학과 연구기관의 후속연구로 돌아갔는가. 연구 → 기술 → 기업 → 제품 → 시장 → 다시 연구. 이 순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연구단지는 하나의 혁신생태계로 발전한다.
◆ GBA는 어디까지 하나의 지역인가
허타오는 결국 과학기술단지 하나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GBA)를 바라보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홍콩과 선전은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러나 가까운 도시와 연결된 도시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지역이 실제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지도보다 이동을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이동하는가. 무엇이 이동하는가. 어떤 제도를 통해 이동하는가. 그리고 그 이동이 한 번으로 끝나는가, 반복되는가. 연구자가 움직이고 지식이 움직인다. 데이터와 연구샘플이 움직이고, 기술이 기업으로 이동한다. 그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이 다시 시장으로 간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행정구역은 그대로 있어도 도시 사이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 경계를 없애는 것보다 경계를 넘는 방법
허타오를 GBA 통합의 성공사례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르다. 홍콩원구가 공식 개원한 것도 2025년 12월이다. 2026년 현재도 데이터 이동체계와 각종 제도적 연결장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허타오는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지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연구가 선전의 기업과 만나고, 선전에서 사업화된 기술이 다시 홍콩의 대학과 연결되며 새로운 연구와 기업을 만들어내는가. 그것이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이다.
선전강의 폭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과 중국 본토의 제도 역시 단기간에 하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반드시 경계를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진 사람들이 그 경계를 반복해서 넘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 허타오에서 진행되는 실험의 의미는 어쩌면 거기에 있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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