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권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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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갑점 시인. |
권갑점 시인. 경남 함양 출생. 2005년 시집 『천년의 숲』으로 작품활동 시작. 산문집 『한숨인 줄 알았더니 꽃숨이더라』 『지리산을 쓰다』 『인도 또 인도』 『상림별곡』 『내 안의 봄날』 등 출간. 2018년 지리산문학제 지역문학상, 제5회 항공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전국농협가족 문예대전 시부문 우수상·수필부문 최우수상, 2026년 제4회 상상인작품상 수상. 지리산문학회장, 함양문인협회장. 함양군의회 의원 역임.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의 문학과 삶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랜 세월 함양의 상림과 지리산을 걸어오신 그 발걸음 속에서 어떤 시들이 태어났는지, 찬찬히 여쭙고 싶습니다.
Q1. 「건장마」로 올해 “상상인 작품상”을 받으셨지요. 당선 소감에서 ‘어머니의 건장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건장마」는 군에 간 남편을 기다리며, 임신한 몸으로 콩밭을 매던 어머니의 고단한 신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장마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생을 건너며 몇 번이고 마주해야 하는 불안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장기간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에게 팔순 넘은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걱정 말아라. 군대 간 너거 아버지 3년 동안 기다렸던 신혼 때도 있었는데… 인생이 늘 장마비는 아니재.” 비가 그치리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긴 장마 속에도 잠시 햇빛이 드는 ‘건장마’가 있다는 것을 삶으로 알아 온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야말로 어머니가 평생 몸으로 써온 가장 단단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삶의 가장 구체적이고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서 끝내 한 줄의 빛을 건져 올리는 일. 저는 그것을 어머니 등 뒤에서 배웠습니다.
건장마
어머니의 건장마가 길었던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신혼의 장마철에 군에 간 신랑이 보내온 편지 속에는 바삭한 달맞이꽃잎이 들어있었다 여름을 뭉개고 앉아 섬부골 콩밭을 매다가 흘린 어머니의 푸른 땀
복숭아나무의 아랫배가 불러오는 계절에 어머니는 배를 곯았다
소나기를 둘러업은 여름이 불어오던 날 새는 바람을 물고 날았다 뻐꾹새가 날아간 모퉁이를 지나 묵정밭으로 간 어머니, 허기증에 호미를 던지고 복숭아나무 아래로 갔다.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단물을 핥았다 벌레 든 복숭아를 먹고 배가 아팠던 어머니의 고단한 그늘에 밭고랑을 뭉개며 몰려들었던 세찬 비
그해는 유독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무명 보자기에 덮인 듯 산골짝은 세상의 기척이라곤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자주 동굴을 열었던 꿈속처럼 비를 피하러 들어간 곳에 뱀과 황소의 환영이 일렁였다 어머니는 꿈속의 꿈을 헤매느라 오랫동안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도 없이 건장마 그늘에서 몸을 풀었다
칡꽃 향기를 따라 물안개의 뒤를 밟던 아침처럼 신랑이 돌아왔고 복숭아 뺨을 베어 물고 단물든 아이가 걸어왔다 최초의 기억은 동쪽 창에 번지던 웃음소리, 유년을 얼비추던 햇살이었다
달맞이꽃 무더기로 피어나던 어머니의 여름은 건장마의 그늘에서 눈물도 꽃이 되었다
Q2. 시집 『천년의 숲』부터 최근 산문집 『지리산을 쓰다』와 『상림 별곡』까지, 작품마다 상림과 지리산이 늘 글의 중심에 있습니다. 선생님께 지리산과 숲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 제게 지리산과 상림은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삶의 풍경입니다. 바라보고 걸으며 살아오는 동안 산과 숲은 제 안 깊이 들어왔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와 오래된 풍경이 글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라고 했습니다. 숲은 인간이 살아온 자리이자, 끝내 돌아가야 할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제 안에 들어온 숲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나무의 숲, 사람의 숲, 그리고 문학의 숲. 상림은 제 문학의 시작이자 삶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준 곳이며, 그곳에서 저는 사람을 헤아리는 연민을 배웠습니다. 연민이란 어쩌면 사라지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일 것입니다. 숲에서는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낙엽이 지고 나무가 쓰러진 자리에 새 생명이 돋지요. 문학도 그러한 것 아닐까요. 사라져 가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 다시 살게 하는 일. 그래서 지리산과 상림은 제게 삶의 터전이면서, 글을 낳은 모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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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상림 사운정 앞에서 남편 정재안 씨(왼쪽)와 함께 |
Q3. 한동안 직장생활과 사회활동으로 시를 멀리했던 시간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직장생활과 결혼, 출산, 의정활동, 늦은 대학원 공부까지 이어지며 한동안 문학은 제 삶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문학은 떠난다고 떠나지는 것이 아니었지요. 지리산문학회의 문길, 강선덕, 김륭, 정태화 선배 시인들께서 오랜 시간 제 손을 놓지 않으셨으니까요.
또 한 사람, 학창 시절 잠시 문학 소년이었던 남편 역시 문학회 행사를 도우며, 지금도 제 글을 격려하고 따끔하게 짚어주는 회초리가 되어 줍니다. 그러니 어느 한순간의 계기라기보다, 가족과 문학회 사람들이 함께한 시간이 저를 시로 이끌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봄이면 진달래 화전놀이를, 여름이면 칠선계곡에서 산수문학 토론회를 열었고, 가을엔 전국시인대회 준비로 뛰어다녔으며, 겨울엔 노고단의 달빛 아래 눈길을 걸으며 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계절 속에서 지리산과 상림은 풍경을 넘어, 삶과 문학이 만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사방으로 튀어 나가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용수철처럼, 시를 향한 갈증이 저를 다시 시가 있는 자리로 데려다 놓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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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림 숲길에서 책을 읽다 |
Q4. 『인도 또 인도』와 『지리산을 쓰다』에서 인도와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자주 함께 등장합니다. 이 두 세계는 선생님 문학 안에서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고 있을까요?
⯈ 『인도 또 인도』는 20여년간 깐냐꾸마리에서 히말라야까지 열 차례 넘게 오가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기록이고, 『지리산을 쓰다』라는 전쟁을 겪은 마천면 사람들의 험한 세월을 취재한 산문집입니다. 인도의 기차 위에서는 낯섦보다 친밀감을, 콜카타의 타고르 하우스에서는 시를 쓰고 랑골리를 그리고 싶은 마음을 얻었지요. 서로 다른 역사 속에서도 두 곳의 사람들은 자연과 삶을 대하는 순정함으로 닮았습니다. 제게 인도와 지리산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만난 자리였습니다.
Q5. 요즘도 최치원 역사공원에서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천연기념물인 상림과 관련된 인문학 강의를 이어가고 계시죠. 천년의 숲 상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인문학적 매력을 조금 들려주시겠어요.
⯈ 1,100여 년 전 천령군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 선생은, 해마다 홍수로 고통받던 백성을 위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오늘의 상림입니다. 당시 이름은 ‘대관림(大館林)’,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큰 집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이 이름에 깃든 최치원 선생의 애민정신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0년 넘게 모아온 상림의 이야기를 『상림별곡』에 담았습니다. 역사 인물과 문화재, 유무형의 유산, 누정과 전설, 축제까지 천년의 숲에 깃든 이야기들입니다. 특히 100년이 넘은 옛 사진들은 숲이 건너온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올해도 최치원 역사공원에서 상림과 고운 선생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강생들이 저마다의 추억 속 상림을 꺼내 놓을 때마다, 숲은 서로의 삶에 깃든 공간으로 되살아나곤 했지요. 그 순간이 늘 경이로웠습니다. 상림은 오래된 숲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애민정신에서 비롯된 솔선수범의 표본이자, 천년을 품어온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는 일이 상림의 가치를 더하고 다음 세대로 잇는 길이라 믿습니다. 천년의 숲이 지난날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오래 숨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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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상림의 꽃무릇 (2026. 10.) |
Q6. 농협 간부와 군의원, 지리산문학회장까지 여러 길을 두루 걸어오셨습니다. 그 경험들이 시를 쓰는 데 어떤 자양분이 되었나요?
⯈ 농협 상무로 일하며 농민들의 삶을 곁에서 보았고, 지리산문학회 회장으로 크고 작은 문학행사를 이끌었습니다. 함양군 최초의 여성 비례대표 군의원으로 일하면서는 지역과 주민들의 살림을 가까이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 애환이 제 글쓰기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특히 학자금을 빌리러 농협을 찾던 농민들의 거친 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손에서 흙과 노동의 의미를 생각했고, 그 경험을 담은 수필 「봄날 아침에」로 농협중앙회 전국 농협가족 문예공모 최우수상을 받으며 문학을 향한 마음도 한층 깊어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며 삶을 배워온 시간이 오늘의 제 글을 빚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 삶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안에 담긴 이야기를 오래 받아 적고 싶습니다.
Q7. 지리산문학회와 40여 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 오셨습니다. 선생님께 지리산 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도 함께 들려주세요.
⯈ 20대부터 60대인 지금까지, 지리산문학회는 제게 문학을 넘어 삶의 한 부분이자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인연입니다. 1991년 제7대 회장을 맡으며 더 깊이 활동하게 되었고, 문학회는 어느덧 창립 47년을 맞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만, 2021년 제16회 지리산전국시인대회는 특별했습니다. 전국의 시인들이 상림에 모여 수상자 오늘 시인의 시를 읊고 노래하며, 밤늦도록 맨발로 숲을 누볐지요. 신라의 처용처럼 춤추고 노래하던 그 밤, 시와 사람과 숲은 하나였습니다.
2025년 제20회 대회에서는 집행위원장을 맡아 회원들과 함께 '스무 살 성년의 푸른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김영건, 정경화, 곽실로, 박철, 정지담 선생님을 비롯한 회원들과 나눈 사랑과 우정은 문학회를 키운 뿌리입니다. 천년을 지나온 상림처럼, 지리산문학회도 47년 동안 사람과 시를 품은 울창한 숲이 되었습니다.
Q8. 아름다운 상림에서 쓰신 시가 있다면 어떤 시일까요?
상림
신라의 이마를 스친 바람이
『계원필경』 한 권 펼쳐놓은 숲
그 옛날 흙 속에 묻어둔 도토리 한 알
뿌리 내리고 가지 뻗어
나무와 새와 풀벌레가 함께 사는
큰집, 대관림(大館林)이어라
초록 책장을 열면
바람 사이로 천 겹의 숨결 심어놓고
비문의 마지막 획에 걸어둔 금호미
다람쥐와 이른 봄비가
제 시집의 글밭처럼 드나드는
숲은 나무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천년을 건너온 한 줄 문장을 따라
숲길을 걷는
사람들 걸음걸음 새로이 움트는
숲은
고운 선생 시문집이어라
* 대관림 (상림숲의 최초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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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최치원역사공원 상림관에서 인문학 강연을 듣는 청중들 |
Q9. 허영자 시인은 향토성을, 강희근 시인은 설화적 상상력을, 선생님 시의 특징으로 짚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문학을 어떤 말로 표현하고 싶으신가요?
⯈ 제게 문학은 고향의 삶과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일입니다. 2005년 『천년의 숲』을 펴냈을 때 허영자 교수님은 향토성을, 강희근 교수님은 설화적 상상력을 짚어 주셨지요. 일부러 입힌 색이라기보다 고향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이 제 시에 스며든 결이라 여깁니다.
돌아보면 고향의 자연과 사람, 대대로 전해 온 이야기는 지나간 기억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삶을 비추는 힘이 되어 줍니다. 그중에서도 천년의 시간을 품은 상림은 각별한 공간이에요. 그 안에 서면 자연과 사람, 과거와 현재가 한 줄기로 이어져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니 제 시에 흐르는 토속적 정서와 설화적 상상력은 고향의 삶과 기억을 오래 들여다보며 생겨난 결입니다. 그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지나간 시간과 오늘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 제가 시를 쓰는 까닭도 거기 있습니다.
Q10. 최근에는 “밖으로 향하던 삶에서 이제는 안으로 조금씩 익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써가고 싶으신가요?
⯈ 밖으로 돌아다닌 세월이 길었습니다. 이제 하던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중인데, 이상하게도 하나를 놓으면 그 자리에 꼭 새 일이 찾아옵니다. 요즘은 오래 품어온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지리산 마을에 살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 하나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남편은 빨치산으로 몰려 희생됩니다. 전쟁은 끝났어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지요. 평생 한 사람의 삶을 부숴놓은 그 전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지리산은 침묵으로 앉아 있는 커다란 범종 같습니다. 범종이 있는 벽송사는 6·25 때 수많은 빨치산이 죽어간 야전병원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지리산을 보며 쓴 시 「종소리」가 실은 산 아래 전쟁을 겪은 이들을 바라보는 지리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어진 침묵 앞에서, 품속의 새 한 마리를 꺼내 날려 보내는 심정으로 쓴 시입니다.
종소리
너무 멀리 가지 말아라
내 마음 따라가기 힘들다
그렇다고 침묵은 말아라
네 마음 따라가기 더욱 힘들다
최근, 놓지 않은 꿈 하나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천년 숲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오래 바라본 숲처럼,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이제 꺼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앞에 모셔두고, 조금은 게으르게 쓰려 합니다. 이제는 밖으로 향하던 삶이 안으로 깊어지듯, 제 글도 천천히 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Q11. 오랫동안 성인문해학교 교사로서 활동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일이 있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제게 성인문해교육은 글자를 가르치는 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들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글로 풀어내며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었지요. 이름 석 자 쓰기도 어려워하시던 분들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낭송하십니다.
2017년에는 우리 반 학생의 시 「장하다 우리 딸!」이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대상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문해교실 이야기를 담은 『한숨인 줄 알았더니 꽃숨이더라』가 협성문화재단 ‘뉴-북 프로젝트’에 선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2019년 MBC 4부작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이 안의중학교 문해교실에서 촬영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제15회 전국문해교사대회’ 사례발표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글을 가르쳤지만, 정작 삶을 대하는 용기와 지혜는 학생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거창한 목표보다 함께 웃고 배우며, 늦게 시작한 배움이 꽃으로 피어나는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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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의 문해학교 학생들, 남해 독일마을로 가을소풍 (2022.10.) |
Q12.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상림의 숲처럼 깊고 오래 남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문학을 꿈꾸는 젊은 시인들과 고향에서 묵묵히 글을 써가는 지역 문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젊은 시인들과 지역 문인들께 ‘가장 자기다운 글을 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토양에서 솟은 싹은 곧 나의 전부가 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믿고, 제 뿌리에서 길어 올린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후배 시인들의 시가 한 그루 나무로 자라 거목이 되기를, 그리하여 훗날 독자들이 무성한 잎 아래서 나뭇잎이 들려주는 시를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천년숲의 한 그루처럼 깊고 오래 남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숲이 자리를 지키듯 문학도 오래 남아야 하겠지요. 고운 선생의 철학이 깃든 함양에서 선후배 문인들과 함께 문학의 길을 이어가는 일, 그것이 지리산과 천년숲에 대한 우리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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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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