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인 미만 사업장 58.2%, 50인 미만 사업장 40.6% '휴게실 미설치'
-사업장 규모 작고, 저임금, 여성 노동자일수록 휴게 여건 매우 열악
-민주노총·한국노총, 규모별 차등 둔 노동부 시행령 입법안 철회 촉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13개 산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휴게 여건 및 복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평균 최고 기온이 30℃이던 2019년 8월,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숨진 청소 노동자가 머물렀던 휴게실은 창문도 하나 없는 지하 공간으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고, 에어컨도 없어 한낮엔 찜통을 방불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청소 노동자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화장실, 계단 아래, 청소 도구함 등 애초 휴식을 목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몸을 뉘었다.
이러한 청소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식 시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사업장 내 휴게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해당 개정안은 오는 8월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과 시행 규칙 등 하위 법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업장 규모와 사업 종류에 따라 제약 조건을 걸었다. 휴게실 설치 의무를 모든 사업장이 아닌 상시 노동자 20명 이상 사업장에 한정하겠다는 내용으로 입법 예고한 것. 2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5.9%에 불과하다(2020년 기준).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해 저임금, 소규모 작업장 노동자일수록 휴게실 이용 빈도수가 많다는 설문조사를 인용하면서 노동부의 시행령 입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3월 21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국 13개 지역 4,021명 산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휴게실 여건과 복지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전체 20인 미만 사업장 중 58.2%가 ‘휴게실이 없다’ 라고 답했다.
민주노총은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사업장 규모가 작고 저임금 노동자, 여성 노동자일수록 휴게 여건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이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열린 '전국 산업단지 노동자 휴게권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업종별, 사업장 규모별 휴게실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
이날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제조업보다는 비제조업에서, 사업장 규모가 큰 사업장보다는 작은 사업장에서 휴게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업종별로 보면 섬유의복(54.8%), 목재종이(59.1%), 건설(67.7%), 부동산(52.9%), 보건복지(59.9%), 음식숙박(55.6%) 분야에서 휴게실이 없었다”라면서 “전통적으로 영세하거나 노동환경이열악한 것으로 평가받는 건설, 섬유의복, 음식숙박업 뿐만 아니라 전문기술, IT, 정보통신 등 신흥 산업에서도 휴게실이 없는 곳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하청·협력업체와 휴게실을 따로 사용한다는 응답 비중은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높게 나타났다. 파견노동자와 사내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원청이 직접 소비하는 만큼 원청이 휴게공간을 제시하고 기존 휴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면서 “휴게시설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게공간 문제도 같이 고려해야 하는데 이 또한 원청이 장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청이 나서야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계점을 지적했다.
휴게실이 있을 때, 비제조업보다는 제조업 노동자가, 대기업보다는 50인 미만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가, 사무판매직보다는 생산직 노동자가, 고임금 노동자가 저임금 노동자가 이용 횟수가 많았다. 예컨대, ‘휴게실을 매일 이용한다’라고 응답한 비중은 300인 이상 사업장, 20인 미만 사업장이 각각 40.6%, 61.2%로 집계됐다.
박 연구원은 “사업장 규모별과 마찬가지로 고임금 노동자가 매일 이용한다는 비중은 48.8%이지만 저임금 노동자는 62.4%였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노동자나, 밖에서는 쉴 곳이 마땅치 않은 노동자들은 모두 작은 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라면서 “휴게실의 필요도나 활용도 모두 저임금,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높고 그들에게 더 절실하다”라고 해석했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와 휴식 구별도 원활하지 않았다. 전국 산단 노동자의 46.2%는 휴게실 유무와 관계없이 실제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곳은 ‘자기 자리’라고 답했다.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위 응답률은 50.0%로 높아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13개 산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휴게 여건 및 복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박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임금 수준에 따라 실제로 쉬는 휴식공간이 상당히 달랐다. 작은 사업장의 휴게공간이 부족한 만큼 저임금 노동자의 휴게 공간이 부족할 텐데, 이를 감안해도 저임금 노동자나 고임금 노동자의 휴게실 사용 비율은 유사하다”라면서 “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휴게실 이용 빈도가 높은 것과 관련 있는데 휴게실이 있기만 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고임금 노동자들은 다른 공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10.2%만 야외, 카페 등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이 비중이 고임금 노동자는 24.0%”라면서 “결과적으로 휴게실이 부족할수록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해가 더 직접적이다. 이들에게 휴게실은 노동에 지친 육체와 정신을 쉬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먹는 공간이기도 하며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들 저임금 노동자들은 휴게실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 고임금 노동자들은 외부 공간, 카페 등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 공간에서 대기할 뿐”이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휴게실 의무화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서는 정작 휴게실 활용도도 높고, 누구보다 휴게실이 절실한 이들 저임금,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 역시 노동부 입법 예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25일 성명을 내고 “휴게 시설 설치 의무 대상을 사업장 규모와 사업의 종류에 따라 여러 제약 조건을 두면서 정작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법 개정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에서 내놓은 하위 법령은 일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와 건강을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안겨 줄 것”이라면서 모든 일터의 휴게실 설치 의무화, 휴게권 보장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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