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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선 칼럼니스트 |
1. 전쟁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가치 평가 체계를 재조정한다
중동에서 확장되고 있는 군사적 충돌은 단순한 지역 분쟁의 범주로 환원하기 어렵다. 그것은 국제 원유 가격의 일시적 급등이나 환율 변동이라는 표면적 지표를 넘어 글로벌 자본이 미래 가치를 할인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를 상회했고 해상 전쟁 위험 보험료 역시 특정 항로에서 세 배 이상 상승했다. 이러한 사례는 지정학적 충격이 단기 가격 신호를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가격 상승은 결과일 뿐이며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시장이 적용하는 discount rate(할인율)의 구조적 상향 조정에서 나타난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팬데믹 직후 1%대에서 최근 4%대를 상회하는 구간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화정책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적용되는 risk premium(위험 프리미엄)이 재평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투자 회수 기간이 긴 산업은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 원전과 LNG 플랜트, 방산 플랫폼, 데이터센터와 통신 인프라 등은 장기간의 자본 투자를 전제로 한다. 할인율이 상승하면 이러한 산업의 투자 구조와 지역 배치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오늘의 가격을 바꾸는 사건이 아니다. 전쟁은 미래 투자 질서의 평가 기준을 바꾸는 사건이다.
특히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에너지 운송 경로의 안정성이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Strait of Hormuz(호르무즈 해협)은 지정학적 긴장이 발생할 때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핵심 변수로 작동해 왔다. 이 해협의 통항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시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원유 가격 자체보다 war risk insurance premium(전쟁 위험 보험료)이다. 보험료 상승은 곧 해상 운송 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에너지 가격을 넘어 제조업 공급망 전반의 비용 구조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중동 분쟁의 확산 가능성은 단순한 유가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산업 구조의 비용 기반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변수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2. 금융 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구조적 차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 내부의 신뢰 붕괴에서 출발했다. 은행 간 자금 거래가 멈추는 상황 속에서도 달러는 강세를 보였으며 미국은 국제 유동성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코로나 팬데믹 역시 물류 체계의 충격을 가져왔지만 대규모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통해 금융 시스템 붕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중동 전쟁은 금융 시스템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기반 질서의 재평가에서 출발한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 활동의 전제 조건이며 전력과 운송 그리고 데이터 인프라와 직접 연결된다. 유럽이 러시아 가스 의존을 줄이기 위해 LNG 수입을 크게 확대했던 사례는 에너지 조달 구조의 변화가 단순한 비용 조정이 아니라 산업 입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충격은 금융 위기라기보다 industrial geography(산업 지리 구조)의 재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기축통화의 기능 분리와 관리 비용의 상승
기축통화 reserve currency(기축통화)는 단일한 지위가 아니라 네 가지 기능이 결합된 구조다.
가치 저장 기능, 결제 수단 기능, 가격 표시 기능, 제재 통제 기능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여전히 약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결제 구조에서는 점진적인 분산이 나타나고 있다. 위안화 결제 확대, 양자 통화 스왑,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South Africa,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 간 결제 협력, 그리고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실험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달러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축통화는 교체되기보다 관리 비용이 상승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기축통화는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공공재 공급 체계 위에서 유지된다. 해상 통로의 안전 확보, 국제 금융 네트워크 안정성 유지, 위기 시 유동성 공급과 같은 기능은 모두 비용을 수반한다.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이러한 공공재 공급 비용 역시 상승하며 이는 기축통화 유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4. 국가별 전략 선택과 산업 구조의 차별화
캐나다는 에너지와 핵심 광물 자원을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우라늄과 니켈 등 자원은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라 장기 계약을 통한 산업 설계권 확보의 협상 자산으로 기능한다. 유럽은 에너지 충격 이후 금리 경쟁보다 산업 시간의 고정을 선택했다.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과 EIB(European Investment Bank, 유럽투자은행)을 통한 장기 투자 정책은 산업 변동성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복원을 통해 공급망 내 핵심 위치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환율 방어보다 기술 생태계 유지가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배터리 산업과 희토류 가공 산업을 중심으로 전략 산업의 수직 통합을 강화하고 있다. BRICS 국가들 역시 단일 통화 도입보다는 결제 다변화와 대체 금융 경로 확보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5. 한국의 전략적 과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5%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은 할인율 상승의 충격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따라서 단기 환율 안정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 기술 표준 확보, 20~30년 장기 계약 구조 확대, Project finance(프로젝트 금융) 기반 산업 투자 확대
기술이 장기 계약 구조와 결합될 경우 그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안정적 현금흐름을 만드는 quasi currency function(준통화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한국이 연결 국가를 넘어 설계 국가로 이동할 수 있는지 여부는 기술가치를 어떻게 구조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을 마치며 중동 전쟁 이후 국제 질서는 통화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통화가 수행해 온 기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재정렬되고 있다. 에너지 계약은 장기화되고 산업 공급망은 블록 단위로 묶이며 금융 결제 구조는 다층화된다. 기축통화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에 대한 신뢰의 구조다. 힘은 통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질서를 유지하는 통화는 책임과 예측 가능성을 요구한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시장은 고정된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편되는 네트워크이며 그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남는 통화는 단순히 강한 통화가 아니라 가치와 책임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통화다.
기축통화는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질서 있는 진화는 책임을 수반할 때만 가능하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단순한 가격 신호에 반응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평가하는 시장이다.
결국 중동 전쟁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경제 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안정성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 금융 네트워크의 신뢰, 그리고 산업 투자 구조의 예측 가능성은 모두 같은 문제로 연결된다. 세계 경제는 단일 사건에 의해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적 불확실성이 누적될 때 자본은 새로운 질서를 찾기 시작한다. 전쟁은 오늘의 가격을 움직이는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투자 질서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시 설계하는 사건이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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