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은 결국 화를 불러왔다’

문화 / 수필가 임덕기 / 2018-04-18 17: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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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깨어나는 4월!] 임덕기, 침묵을 깨뜨리다
▲ 수필가 임덕기
▲ 수필가 임덕기

현대여성 위상 높아졌지만 갈길 멀어


발악하듯 ‘성에 탐닉’ 모습 너무 추해


‘간통죄 폐지’ 기혼자 멍석 깔아준 셈


● 나뭇가지마다 꽃봉오리가 벙글고


아파트 담장 너머 댓잎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으로 짙어간다. 바람에 잎들이 사스락사스락 소리내며 줄기가 휘청거린다. 대나무는 겨우내 맵찬 바람에 부대낀 묵은 잎들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고 서있다. 아침나절 내린 봄비에 겨우내 때 묻고 흐트러진 매무새를 추스른다. 이제 홀가분한 모습이다.


무채색 겨울이 물러가면 절기를 알아차리고 땅 속에서, 나뭇가지에서 새 생명이 움튼다. 여린 꽃 이파리의 매화, 노르스름한 산수유 꽃이 옷 속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을 이겨내며 당당히 피어난다. 봄의 시작이다.


사월엔 출발선에 서있는 온갖 봄꽃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나간다. 개나리, 목련, 벚꽃, 산당화, 조팝꽃, 복사꽃…. 따스한 봄볕과 적절한 온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뭇가지마다 꽃봉오리가 벙글고 있다. 어쩌다 시도 때도 없이 가을에 핀 봄꽃을 마주하면 안쓰럽다. 꽃피는 환경여건이 좋지 않아서일까. 이상기후로 식물이 갈팡질팡한다.


사람도 꽃과 같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맑은 물과 영양분, 햇살,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다. 부모의 헌신과 따뜻한 애정으로 꽃이 피어난다. 길을 걸어가다 꽃을 보면 함부로 꺾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잠시 꽃향기를 맡고 슬그머니 던져 버린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런 행동을 한다. 다친 꽃들은 깊은 상처로 아픔에 시달리거나 때론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꽃은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어느 꽃이라도 나름대로 개성이 있어서 아름답다. 젊음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떠나간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다. 정말 아끼고 사랑하면, 꽃은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한다.


젊은 세대가 짝을 찾기 위해 서로 사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직장이나 일하는 분야에서 기혼남자가 젊은 여성을 함부로 넘보는 일은 여성을 비하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여성의 성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다.


▲ 사람도 꽃과 같다.  다친 꽃들은 깊은 상처로 아픔에 시달리거나 때론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 사람도 꽃과 같다. 다친 꽃들은 깊은 상처로 아픔에 시달리거나 때론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 곪을 대로 곪은 종기가 터졌다.


종기가 곪으면 터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종기가 터졌다. 미투(Mee Too) 운동의 시작은 2006년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작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여배우와 여직원을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한 사실을 미국 뉴욕타임스가 보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스타 여배우들이 성추행 당한 과거를 털어놓으며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스카 레드카펫에 미국 유명 여배우들이 ‘나도 당했다’라는 미투(MeeToo)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미투 운동이 번지고 있다. 법조계를 선두로 문학, 연극, 영화, 정치, 학교, 직장 등에서도 실명이 거론되고 피해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실토한다. 자기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낸다고 한다.


감춰진 음습한 땅 속에서 미투가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적 환경과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어서다. 미투 운동이 앞으로 직장 및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갈 기세다.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미투 운동에 나선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위드유(With You)로 호응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마다 어두운 면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아니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성이 유린당하고 있다. 드러난 피해자 숫자는 사실 빙산의 일각이지 싶다. 물 위로 올라온 부분보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는 부분이 더 클 것이다.


침묵이라는 얼음덩이 속에 갇혀 언젠가 날씨가 풀리면 세상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용기 있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혼탁한 사회가 차츰 맑아지고, 세상이 바뀌어질 수도 있다. 누구도 가해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도로를 질주해 더 많은 여성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오래전 주택에서 살 때였다. 그 당시 서울에서 웬만큼 밥 먹고 사는 집은 여자애를 데려다 식모로 부리곤 했다. 우리 옆집에도 시골에서 올라온 열댓 살 먹은 어린 소녀가 있었다.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그 집에서 함께 살았다. 부모는 살기가 힘들어 입 하나라도 줄이려고 딸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 여자애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남자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집 안주인이 놀라서 병원에 데려가 아이를 낙태시키고, 부모가 있는 시골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어린 여자애는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갔으리라. 일하는 여자애가 있는 집에는 그런 일이 알게 모르게 많았다고 한다. 요즘처럼 바깥으로 떠들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피해자는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았을 것이다.


크고 작은 사업체나 공장에서 일하던 여직원들 중에도 수모를 겪은 이들이 있었으리라. 그들의 고통 역시 침묵의 바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지나간 세대의 희생을 딛고, 현대 여성들의 권익과 위상이 어느 정도 높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 ‘성 개방 물결’ 모든 세대 집어 삼키고


사람들이 도덕재무장을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미투는 다시 생기지 않을까. 어린 여학생들이 친구를 폭행하고 성매매 시킨 뉴스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그 아이들은 새순처럼 여린 마음으로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볼 나이가 아닌가.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듣고 본대로 학습효과가 된 것일까. 당한 만큼 그들이 변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방심한 부모, 무관심한 학교, 나쁜 친구들, 인터넷을 이용해 아이들의 성을 돈으로 사려는 나쁜 남자들의 꼬임 때문일까.


가정에서 부모가 맞벌이하느라 신경을 못 쓰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요즘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다. 학교, 가정, 사회 모두들 손을 놓고 방심하는 사이에 성도덕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수업이 끝난 후, 무리지어 거리에 떠도는 어린 소녀들이 눈에 자주 띈다.


외국에서 물밀 듯이 밀려온 성 개방 물결이 젊은이들뿐 아니라 모든 세대를 집어삼키고 있다. 편안했던 가정들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남성 권위주의와 제일주의로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는 많은 핍박을 받았다. 남편이 첩을 거느리고 외도를 해도 무조건 참고 자식을 위해 살았다.


요즘이라고 남성들의 횡포가 사라졌을까. 오히려 여기저기에서 기혼남자들이 저지른 성폭력이 미투로 터져 나오고 있다. 예전보다 오히려 더 지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부인들은 알고 속고, 모르고 속으며 살지 싶다. 때로는 이혼이라는 칼날을 들이대 악연을 무 토막처럼 잘라내기도 한다.


몇 해 전 호주와 뉴질랜드에 여행 간 적이 있다. 저녁이 어스름해지면 거리가 텅 비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밖에서 즐기는 밤 문화가 없어서다. 여덟 시가 되면 가게마다 문이 닫히고 그들은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단다.


시끌벅적한 서울에서 살다가 사람이 없는 빈 거리는 무척 단조롭고 심심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야말로 흥청거리는 밤 문화 대신, 진정한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밤 문화로 젊은 여성이 음주에 접할 기회가 흔하다. 술이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젊은 남녀는 함께 빠져든다. 술 마시는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술을 즐기는 여성이 많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술로 인한 피해도 점점 더 심해진다. 여성이 술 마실 때 마음을 풀어놓으면 기회를 엿보는 남자들에게 좋은 빌미가 된다.


이제 우리사회도 양성평등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는 기혼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고삐 풀린 말처럼 성의 쾌락을 위해 아내가 있으면서도 딸처럼 어린 여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른다. 나이가 들어 발악하듯이 성에 탐닉하는 모습이 추하게 보인다.


식물은 순리대로 살아간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씨를 맺고 그리고 미련 없이 시들어 대지로 돌아간다. 동물도 대부분 발정기가 따로 있는데 인간은 끝없는 욕심을 부린다. 쇠락의 나이에도 엉뚱한 짓을 하고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깨뜨린다. 욕망의 끝은 결국 화를 불러왔다. 미투 운동이 앞으로도 더욱 번져갈 기세이다.


■ 프로필


국제펜클럽 여성작가 위원.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집 ‘기우뚱한 나무’


시집 ‘꼰드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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