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깨어나는 4월] 조명래 ‘순희와의 스토리’

문화 / 수필가 조명래 / 2018-04-19 10: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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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웃음이 눈물이’ 나올까
▲ 수필가 조명래
▲ 수필가 조명래

순희가 떨어진 풋살구 몇알을 주워 들고


어른 되면 우리 결혼하자고 약속했던 일


나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것


● 풍경 속에서 웃음 짓는 예쁜 소녀


살구꽃 피는 계절이 되면 연례행사로 다가오는 풍경이 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오십여 년, 내 나이 일흔 고개를 넘고 있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 풍경이며, 풍경 속에서 웃음 짓고 있는 예쁜 소녀 순희의 모습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초가 울타리 안에는 늙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살구꽃이 지고나면 이파리 뒤에 살구가 숨어 굵어지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소년의 돌팔매질에 봉창문이 덜컥 열림과 동시에 할머니의 고함이 뒤따라 튀어나오면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을 간다. 한참 후 순희가 떨어진 풋살구 몇 알을 주워 들고 다가왔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순희네 집 울타리를 맴돌던 추억의 시계는 고향마을 어귀에서 멈추지 않고 장면을 바꾸어 철부지 시절을 향해 계속 돌아간다.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고무줄을 끊어 놓고 도망쳤었고, 어떤 때는 뒤로 살며시 다가가 치맛자락을 들추기도 했었다.


도회지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리 결혼하자고 약속했던 일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고무줄 끊어놓고 도망간 죄, 치맛자락 들치며 성희롱을 한 죄, 더구나 우리 다음에 커서 결혼하자며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한 죄까지 지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잘못인 줄 몰랐었다.


● 나를 정화시키는 미투 운동


‘미투(Me Too)’ 열풍이 나라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팔순의 노 시인도 미투의 불길에 쌓여 말년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 바람이 바다 건너 미국에서 불 때는 잠시 타오르다 꺼지려니 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기 시작하면서는 문학, 연극, 영화, 정치, 교육계를 막론하고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번지고 있다. 날마다 언론 보도를 보면서 내일은 또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타오를까를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미투 운동은 결코 특정한 영역이나 특별한 부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고질적인 병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의니 평등이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갈 기세다.


이것을 일부 인사들의 개인적 특성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고, 그것을 용인할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미투 폭로를 정치적 공작이나 정치 투쟁이라며 작위적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우월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희롱하고 추행하며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 동안 뿌리 뽑지 못한 폐단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런 행위들이 단순히 떳떳하지 않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님을 알면서 적당하게 넘어간 면도 없지 않지만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과 삐뚤어진 성관념은 절대로 합리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곧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공감해야 한다.


한번 붙은 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제는 그 내용과 방향에 대하여 참여하고 비판하면서 깊이와 폭을 따지게 된다.


진정성이 사과와 반성인지 확인도 한다. 만화가 누구는 “용서를 구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사과문을 내면서 "알게 모르게 여성들에게 가했던 고통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한 배우의 성추문 사과문도 도마에 올랐다.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다”며 어정쩡한 사과문을 내어 도리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이왕 사과를 한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과드린다.” “기억은 안 나지만 미안하다”는 태도로 변명을 끼워 넣어서는 안된다.


본래의 사과를 진실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변명이라면 효과가 없다.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했던 모욕감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는 물론이고 그것에 대한 성찰도 부족해 보인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그동안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 내가 당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누군가 내 얘기를 공감해 줄 것을 믿기 때문에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곁을 스치고 있는 미투 바람을 보고 들으면서 구경꾼의 입장에서 그들만의 행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첫사랑 그 소녀! 그리워진다.


4월이다. 올해 유난히 살구꽃이 피었던 고향이 생각나고, 풋살구를 전해주던 소녀가 그리워진다. 어른이 되어 바쁘게 살면서도 가끔은 어디로 시집을 갔는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어쩌다 오가는 길에 한번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본 적도 있다.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살구꽃 이파리가 봄바람에 흩어지고, 청보리밭 푸른 물결 일렁거리는 꿈속의 고향이 아닌가.


고향마을이 가까워지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아니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 만은 .....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하는 노래가 저절로 나오지 싶다.


굽이진 산길을 돌고돌아 순희네 집이 가까워지면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 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하며 박목월의 ‘산도화’가 튀어날지도 모르겠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무줄 값은 이자를 포함하여 후하게 계산하여 변상하고 싶다. 또 치맛자락을 들췄던 일은 진정으로 뉘우침의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그러나 보상하고 반성하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다.


도회지 학교로 진학하여 떠나면서 장래를 기약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댓가는 어떻게 치루어야 할까. 멀리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만해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는 했다는 고백 정도로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순희네 집이 있었던 자리에서 코흘리개 시절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용서를 빌고 싶다. 반 세기동안 깊고도 넓은 세월의 강을 건너오면서 하지 못했던 풋풋한 사랑을 고백하면 웃음이 나올까, 눈물이 나올까.


의식이 깨어나는 4월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후 수없는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도 고백한다. 마감일이 임박하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까지 오고 말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는가 하면, 이 원고를 탈고한 이후 또 어떤 영역에서 어떤 모양의 미투 광풍이 몰아치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순희와의 스토리를 고백하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다. 바야흐로 미투의 계절이다.


■ 프로필


‘예술세계’ 수필부문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영남수필문학 회원


수필 ‘그리운 풍경’ ‘감자꽃’


경북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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