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홈리스 텐트촌 원인 불명 화재로 소실...“주거 취약계층 아니라니” [리얼줌]

현장+ / 성지온 기자 / 2022-06-01 14: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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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드래곤시티 호텔 연결 공중 보행교 신설 공사 3월 착수…인근 텐트촌 주민들 ‘난감’
-5월 25일 화재 발생, 텐트 2개 동 소실…20년차 거주민 “입은 옷 이외 전부 탔다”허탈
-용산구청, ‘실거주 확인’ 어렵다며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입주대상자 인정 지연 및 거부 中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산역 텐트촌 화재 관련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왼)가 텐트촌 주민 박재훈 씨(오)에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강제 철거 위협을 받던 용산구 텐트촌 주민들이 하루아침 화재 이재민이 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주민들은 급히 대피하느라 생계 필수품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몸 하나 뉠 거처마저 구하지 못해 난감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주거 관련 의무 및 권한이 있는 용산구청은 이들을 ‘주거 취약계층’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지원사업 대상임에도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용산역 텐트촌 화재와 관련해 긴급구제 신청 및 용산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틀 전 발생한 화재로 거주지를 잃은 텐트촌 주민들을 위해 주거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 용산구청이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을 했다.

앞서 지난 25일 서울 용산역 인근 텐트촌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텐트 2개 동이 소실됐다. 텐트촌은 용산역과 드래곤시티 호텔을 연결하는 ‘공중보행교’ 아래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약 20명의 홈리스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비닐과 천막, 텐트 등으로 집을 짓고 최대 20여 년간 하나의 터를 꾸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7일 화재 사고 피해자이자 텐트촌 주민 등이 용산구청 규탄 기자회견 직후, 국가인권위원회 측에 진정 및 긴급구제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이들의 터전에 균열이 생긴 건 2022년 4월부터다. 용산구청이 기존 공중보행교를 ㄱ자 형태에서 직선으로 바꾸는 공사를 승인하면서 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은 2016년 입안됐으나 토지 손실보상 등을 둘러싼 관계기관 간 갈등으로 일시 중단된 바 있다. 그러다 2021년 권익위 중재로 기관 간 조정이 이뤄지면서 다음 해 3월 착공했다.

이 과정에서 텐트촌 주민들은 배제됐다. 공사 구간 내·외접해 거주하는 주민들은 공중보행교 신설 공사에 중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는커녕 최종 시한을 단 사흘 앞두고 퇴거 명령을 했다. 공사 일정, 철거 동의와 같은 문서 고지도 전무했다.


▲지난 25일 오후 5시경 발생한 화재로 용산역과 드래곤시티 호텔을 잇는 공중 보행교 아래에 위치한 텐트촌이 전소됐다. <사진=홈리스 행동 제공>

이날 텐트촌에서 20여 년 거주한 박재훈 씨는 공중보행교 신설 사업과 관련해 한 차례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용산구청으로부터 보행 철교 놓는다는 소식 못 들었다. 근래에 들었는데 그때 심경은 정말 앞이 깜깜해서 청천벽력같이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라면서 “노숙인 생활도 억울하지만, 용산구청에서 아무 조치 없이 (대책에) 앞장서지 않는 것이 아쉽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금 사는 텐트가 완전히 전소됐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그래서 뭐라고 할 얘기가 딱히 없다”라면서 “지금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불안해한다. 밥은 서울역에서 나눠주는 걸 먹고 있으나 갈아입을 옷이 없다. 갑갑하고, 지금 제 꼴이 진짜 아니다”라며 화재 이재민으로서 암담한 심경도 덧붙였다.  

 

홈리스행동 등은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텐트촌 주민들이 임대주택 입주를 위해 용산구청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 제1361호 훈령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제3조는 거주지 시장·군수·구청장이 주거 사다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사업시행자가 공급하는 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인 시설, 움막, PC방 등 최저주거기준 미달 환경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자이다. 

 

▲지난 25일 오후 5시경 발생한 화재로 용산역과 드래곤시티 호텔을 잇는 공중 보행교 아래에 위치한 텐트촌이 전소됐다. <사진=홈리스 행동 제공>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텐트’도 사회 통념상 최저주거기준 미달에 속하는 ‘비적정 주거’공간이므로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책적 용어로 비적정 주거란,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거처를 의미한다.

그는 “용산구청은 현재 ‘주소지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3개월 실거주 이력 확인이 안 된다.’ 등의 이유로 텐트촌 주민들이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자의적 판단이다. 주소지 등록 여부는 입주 대상자 선정 기준과 무관하다. 3개월 이상 비주택 거주사실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신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해당 지침이 다양한 비주택 유형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대 왔다는 점에서, 주소지 등록을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신청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용산구청의 행보는 대단히 역진적”이라면서 “초기 지침은 주거지원 대상을 쪽방과 비닐하우스 거주자에 한정했으나, 이후 고시원 거주자와 범죄피해자를 지원대상으로 포함했고 지침에 규정되지 아니한 다른 형태의 비주택도 포함하기 위하여 컨테이너, 움막 등 그 대상을 확대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용산구청의 ‘실거주 이력 확인 불가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안 행동가는 “서울시 노숙인 등 정책 주무 부처인 서울시 자활지원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텐트촌 내 거처들에 임의 식별번호와 주민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며 실질적으로 관리해 왔다”라면서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주기적으로 텐트촌을 방문하여 거주민들을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활지원과의 업무지시를 따르는 서울시립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매일 저녁 거주민들과 상담하고 있다”라고 했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용산구청장과 국토교통부장관을 상대로 낸 진정 및 긴급구제신청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 역시 “주거권은 여타 다른 인권과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고 다른 인권을 실현하는 기반이 되는 권리이다. 적정한 주거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하고 정부는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라면서 “특히, 취약한 집단과 적정하지 않은 주거에 거처하는 취약계층의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용산구청의 주거지원 거부 및 지연으로 인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생명·신체의 안전(헌법 제10조, 12조), 거주의 자유(헌법 제14조), 주거의 자유(헌법 제16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을 침해받고 있다”라면서 “피해자들이 화재 등 재난, 강제 철거, 부적정·불안정한 주거환경 등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 생명·신체에 대한 안전, 주거권 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로 조속히 인정할 것을 권고한다”라고 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용산역 텐트촌 화재 관련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왼)가  텐트촌 주민 박재훈 씨(오)에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8조는 조사 대상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피인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의료, 급식, 의복 등의 제공 및 인권침해, 차별행위 중지를 조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등은 “용산구청장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화재로 인하여 주거를 상실한 피해자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의 임시 사용을 위한 긴급한 주거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라면서 “용산역 텐트촌 주민들의 실거주 이력을 확인할 방법이 있음에도 용산구청이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을 거부·지연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계속하여 위험한 주거환경에 방치하는 것이므로 이를 시급하게 구제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했다.


한편, 용산구청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진정 및 긴급 구제신청과 관련해 “국토부에 법령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취지로 답변이 왔고, 구에서는 신속하게 주거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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