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눈] 탄핵정국 마무리, 갈 길이 멀다…국부창출 블루오션 찾아라

칼럼 / 김경훈 편집인 / 2025-04-16 1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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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헌재서 탄핵…헌정사상 두 번째 비극
미 함정 월리 쉬라호 유지보수(MRO), K조선 경제효과
국가 미래·위기 극복 위해 모든 정당·정파 중지 모아야
▲ 김경훈 편집인

[일요주간 = 김경훈 편집인]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다 보면 진실로 둔갑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껄이면 도저히 막기 어렵다는 중구난방(衆口難防)보다 더 심할 때 쓰인다.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횡행하던 최근 4개월간의 계엄과 탄핵 정국을 보며 딱 이 말이 생각났다. 거짓과 해악으로 포장된 무서운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어두운 동굴 같았던 탄핵정국이 마무리되자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전직 대통령 신분이 됐다. 용산 대통령실의 태극기와 국가 원수의 상징인 봉황기가 내려졌다. 자연인 신분이 돼 불소추 특권이 사라졌다. 이제 공천 개입 의혹을 비롯한 각종 수사가 기다리고 있다. 14일 시작된 내란죄 재판부터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강골 검사 이미지로 검찰총장에 올라 승승장구하다 ‘별의 순간’을 잡았으나 임기 3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한 사람의 추락이 아찔하기 그지없다.

헌재의 파면 선고는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까지 8대0 전원일치로 내려졌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를 통합해야 할 책무 위반’이 주요 파면 사유다.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윤 대통령은 불과 8년 만에 정치 흑역사를 다시 남겼다. 정치가 정치 영역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사법에 의해 재단되는 일이 반복됐다. 

 

탄핵정국 마무리, 운석열 대통령 ‘별의 순간’서 추락

헌재는 탄핵 선고문에서 윤 대통령의 과오와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탄핵소추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야당의 권한 행사가 부당하더라도 거부권 등 사법적·제도적 수단으로 대처할 수 있는데 군경을 동원해 국회 권한을 방해하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며,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한 것은 중대한 위헌·위법이라는 것이다. 헌재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야당의 폭주에 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과오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 탄핵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아니다. 헌재가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 감액 예산 단독 의결, 법안 일방 통과 등을 언급했기에 이로 인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는 질타는 야당이 깊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탄핵은 정치권 모두의 패배다. 행여라도 대통령 파면을 입법권 무한확장 면허 획득으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정 안정화도 시급하다.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 등 통상 압박 대처가 시급하지만,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상외교를 복원하고, 해법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과 억지력에 기댈 수 없는 처지고, 대만 위기 시 주한미군 차출설도 나온다. 북·러 밀월에다 한국을 건너뛰고 미·북 소통 채널 가동 얘기도 들린다. 통상과 안보 위기 대응엔 정부와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새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다가왔다. 위기를 헤쳐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하지만, 선거 기간이 짧은 데다 인수위원회 과정도 없어 제대로 준비 안 된 정부를 맞을 수 있어 걱정이 된다. 촉박한 시간에 유권자들이 후보의 수권 역량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단기 승부여서 선거판이 포퓰리즘에 휩싸일 공산도 크다. 이런 저급한 경쟁은 경제와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다급한 과제는 내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극단적 분열을 수습하는 것이다. 화해와 치유가 아니라 진영 대결을 부추겨 표를 얻겠다는 행태를 보인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과거와 싸우다 미래를 희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올 성장률 1.9% 최저치, 통상 압박 대처 시급

다가온 대선을 순조롭게 치르는 것은 물론 국내외에서 몰아닥치는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할 태세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트럼프 발(發)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수출 전선 불안과 안보 불확실성, 내수 부진에 따른 성장률 추락 등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을 위협할 정도로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칫 정치권이 죽기 아니면 살기식 선거전에 함몰돼 현재의 어려움을 더 가중하거나 위기극복의 전기를 놓쳐버리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정치 원로와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이번 계엄·탄핵정국에서 ‘87 헌법체제’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한 만큼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한 ‘개헌·조기 대선 동시 투표’에도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필요가 있다. 나라가 둘로 쪼개질 정도로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실태를 감안할 때 많은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 승패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모든 정당·정파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탄핵정국 이후 대한민국이 갈 길이 멀다. 경제 전망도 극히 어둡다. 한국은행의 올 성장률 전망치는 1.9%고, 민간 연구소와 골드만삭스, 씨티 등 해외 투자은행의 예상치는 이보다 더 낮은 1.6~1.8%다. 그러나 실제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우리의 경제 성장 과정을 보면 1%대 성장률은 가히 최악의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성장률이 2%에 못 미쳤을 때는 6·25전쟁 직후, 1980년 대혼란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정도뿐이다.
 

국리민복 차원에서 ‘개헌·조기 대선 동시투표’ 협의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전방위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상호 관세에 맞선 중국의 보복 관세 등 우리나라의 양대 교역국인 G2가 관세 전쟁을 이어가면 수출 외바퀴로 버텨온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휩싸이게 된다. 정부와 정치권이 서둘러 추경 편성을 확정해 가라앉는 경제에 마중물을 붓고 경제 불안 심리도 누그러뜨려야 한다.


이런 가운데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USNS Wally Schirra)’호가 우리나라에서 지난 달 정비작업을 마치고 출항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유지보수 및 정비(MRO)를 받고 떠나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을 통해 조선업 협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어서 K조선과 협력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한미동맹의 가치를 더 돋보이게 하는 상징적인 사례라는 평가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지난 약 6개월 간 진행된 MRO에서 선체 및 기관 유지보수, 주요 장비 점검 및 교체,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전반적인 정비 작업이 포함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미 해군 보안사항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미 해군이 MRO를 한국에 맡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시 한화가 이 사업을 따냈을 당시 국내에선 반향이 컸다. 극비 군사 작전에 여러 번 투입됐던 함정을 맡길 정도로 미국이 한미 동맹과 우리 조선소의 기술력을 신뢰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 새로 출범한 미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강조하고 있어, 미군 함정이 우리 조선소에서 ‘재탄생’하는 모습은 앞으로 더 이어질 전망이다.

K조선 블루오션 급부상, 국내 조선소에서 미 함정 유지보수

특히 미국은 ‘해양 굴기’에 나선 중국과의 경쟁에 나서느라 마음이 급한 상황이다. 중국은 최근 10여 년간 빠르게 배를 만드는 역량을 강화하며 해군력을 키웠다. 특히 함정 수에서 2020년 350척으로 미국(293척)을 앞질렀다. 기술 수준까지 감안하면 전체 해군력은 미국이 더 앞서고 있지만 물량 공세가 거센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조선소로는 부족하다. 미국은 국내에서 운항하는 민간 선박, 군함은 자국 내에서만 건조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된 일감이 있어 미국 조선소들은 기술 개발이나 투자를 소홀히 해 노후화하고 생산성도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국 조선소에는 MRO를 맡겨도 정비가 지연되기에 동맹국에 물량을 더 많이 넘기기 시작한 상황이다. 특히 중국을 제외하면 조선업 경쟁력을 갖춘 동맹국은 사실상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특히 조선 업계에선 지난 3월 미 상원이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정 건조를 외국 조선소에서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을 발의한 것에도 주목한다. 신규 함정 건조 계약도 따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미 한화오션은 지난해 11월에 수주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USNS YUKON)’호도 수리 중이다. HD현대중공업 등도 MRO 수주를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 수주 사례가 더 이어질 전망이다.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유지보수에서 보듯 블루오션으로 급부상 중인 K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카드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에 단비 같은 소식이기도 하다.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면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에 맞서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한국 조선이 미국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협상력은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전선·전력, 태양광, 원자력 등 거의 모든 제조 분야에 적용된다. 첨단 제조 분야에서 중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혼란기에 K조선 같은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국부창출(國富創出)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의 핵심이다.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국가 중흥의 기회에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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