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공동대표, 노동자 사망 9일 만에 장례식장 조문…합의서 초안도 늦장
-유족, 상경 투쟁 예고…제대로 된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등 입장서 제안
-동국제강, 입장서 전달하는 과정서 또 흙탕물…유족 가로막고 ‘놓고 가’태도 논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고(故) 이동우 씨의 유족들이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사진=성지온 기자> |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동국제강(장세욱ㆍ김연극 대표)이 자사 공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20여 일 넘도록 유족에게 사과는커녕 향후 대책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노동단체 등은 동국제강의 무책임을 규탄하고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유족은 요구안 관철 시까지 본사 앞에서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용균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61개 노동시민사회 연대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동국제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인의 아내, 모친, 장모 등 유가족도 참여했다. 이들은 사측에 ▲공개 사과 ▲재발 방지대책 수립 ▲수사당국의 엄정 수사 및 처벌 ▲적정 수준의 배상 등을 촉구했다.
▲13일 오후 61개 단체가 모인 연대체가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동국제강을 규탄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앞서 지난달 21일 오전, 동국제강 포항공장의 하청노동자 고(故) 이동우씨는 천정크레인 보수작업 중 기계 오작동으로 인해 안전띠에 가슴과 배가 눌려 질식사했다. 향년 38세에 불과했다. 더욱이 당시 고인의 아내가 임신 2개월째였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한 바 있다.
연대에 따르면 사고 당시 동국제강은 도급인으로서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자나 안전 담당자를 입회시키지 않았다. 작업계획 및 안전 작업 허가서에 따라 작업자 배치와 작업 실행 여부와 천정 크레인 전원 차단, 신호수 배치 여부 등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사업장 내 안전 보건 규칙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다.
이날 권영국 변호사는 “현재 동국제강은 고인이 왜 그때 그곳에 안전대 고리를 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의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동대표이사는 사고가 난 지 8일이나 지나서야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등 무성의한 태도까지 보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로부터 일주일 지나서 회사 변호사를 통해 합의서 초안을 보냈다. 무려 16일이 걸렸다. 시간 끌기도 문제지만 초안도 사람 목숨의 가치를 무시하는 내용이었기에 유족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ESG경영이라고 책임경영을 강조하던 기업들은 이러한 불행한 사고 발생 시 앞장서는 대신 대형 로펌 변호사, 하청 업체를 앞에 내세우는 식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뒤로 숨기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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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61개 단체가 모인 연대체가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동국제강을 규탄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이현미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은 “동국제강은 2019년 이후 매년 반복해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중대재해 재발 사업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동국제강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사업장의 안전관리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 지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기보다 대형 로펌을 선임하여 책임을 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라면서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사고를 노동자에 덤탱이 씌우려고 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노동자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일터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라고 요구했다.
이날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심경을 공감하며 연대 발언에 나섰다.
김 대표는 “이동우 씨 유족을 서울에서 만났을 때 아들 용균이를 잃은 뒤 사건 해결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야 했던 제 기억이 겹쳐져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승길에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라면서 “살면서 겪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어느 날 불현듯 내 일이 돼버렸다. 사람보다 경제발전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보며 몸서리치는 분노가 가슴께 일렁이지만 더이상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의 아내는 임신 3개월로 몸과 마음이 여유가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사측은 사과는커녕 고인이 왜 안전대를 거기에 걸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고인을 욕보이려고 했다”라면서 “회사는 바뀌지 않는 산재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며 유족들의 험난한 여정을 생각하니 참담하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고인을 생각하며 끝까지 함께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동국제강이 최근 5년간 5명의 산재 사망사고를 낸 것과 관련해 사고 발생 시 마땅한 법적 처벌이 없었기 산재가 끊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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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61개 단체가 모인 연대체가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동국제강을 규탄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동국제강은 대형 로펌 뒤에 숨어 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만 이곳은 중대재해 상습 발생 사업장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지난해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혼자 위험한 크레인 작동과 포장지 해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식자재 납품업체 노동자는 회사 승강기에 끼어 사망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하청 노동자 사고 사망 비중이 높은 기업 명단에 동국제강 인천공장이 이름을 올렸다”라며 “처음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동국제강이 정신을 차리고 사고 원인을 파악해 안전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겠느냐. 여전히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동국제강이 제대로 된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만큼은 달라야 한다. 법이 만만하고 우습게 느껴지지 않도록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동국제강의 대표이사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이런 죽음에 애도할 수 밖에 없을 것. 노동자의 피로 쌓아 올린 기업의 이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노동자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회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 앞에서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동국제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직후 하청 노동자 고(故) 이동우 씨의 유족이 입장서를 전달하기 위해 본사 입구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성지온 기자> |
고인의 아내인 권금희씨는 기자회견 마지막 발언자로 나섰다. 남편의 영정을 들고 꼼짝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권 씨는 마이크를 건네받고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는 “저희 남편은 그날도 평상시와 같이 ‘다녀올게’라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고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것 자체부터가 현실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문을 틔었다. 이어 “저희 아이는 이제 아빠를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저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권 씨 발언이 마치자 고인의 장모와 모친은 취재진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을 향해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기자회견 직후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고 이동우 씨의 유족들이 입장서 전달식을 막아서는 사측 관계자로 인해 울분을 터트리고 있는 모습. <사진=성지온 기자> |
한편, 이날 기자회견 주최 측은 연대 발언 직후 본사에 유족의 입장문을 전달할 계획이었으나 동국제강의 미협조로 1층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족이 로비에 진입하자 사측 관계자는 이를 가로막으며 본인들에게 문서를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유족 측은 ‘길거리에서 요구안을 주고 싶지 않다’면서 사측이 위치한 건물 층수까지 올라갈 것을 주장하며 맞선 것.
이 과정에서 고인의 아내 권 씨 옆에서 눈물을 흘리던 고인의 모친이 “이 정도도 못하게 가로막느냐”라며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고인의 삼촌 역시 충혈된 눈으로 “조카를 잃고 사측이 제대로 된 사과나 대책을 밝히지 않아 장례도 못 치른 상황이다. (고인을)보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주지 않고 포항에서부터 온 사람들을 이렇게 막아서야 하겠느냐”라고 목소리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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